거래소 지연 처리에 '0원' 된 코인, 법원 "거래소가 물어줘야" 첫 사례

남가언 기자 입력 2024-08-07 09:52 수정 2024-08-07 16:00
  • 잘못 반송된 루나코인 한달 반이나 동결

  • 직후 폭락해 '0원' "모친 병원비 날아가"

  • 업비트 "내부절차 마련해야 했다" 불구

  • 법원 "출금할 수 있도록 해줬어야" 판단

업비트 사옥 사진업비트
업비트 사옥. [사진=업비트]


[아주로앤피] 2022년 루나 코인 폭락 사태 직전 거래소 내부 사정으로 코인을 제때 처분하지 못해 코인이 사실상 0원이 되는 손해를 봤다며 운영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투자자가 승소했다. 이는 루나·테라 폭락 사태와 관련해 거래소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70단독(박재민 판사)은 지난달 26일 이모씨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를 상대로 제기한 1억56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두나무가 이씨에게 1억47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이씨는 2022년 3월24일 업비트 전자지갑에 보유하고 있던 1억5600만원 상당의 루나코인 약 1310개를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의 본인 명의 전자지갑으로 보냈다. 암호화폐를 송금하려면 1차 주소와 2차 주소를 입력해야 하는데 이체 과정에서 A씨는 2차 주소를 입력하지 않는 실수를 했다.

바이낸스는 이씨의 코인을 이튿날 반환했는데 이씨의 전자지갑이 아닌 업비트의 전자지갑으로 오입금했다. 이씨는 오입금된 코인을 복구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업비트는 '트래블룰(Travel Rule) 준수'를 이유로 복구를 미뤘다. 트래블룰은 돈이 오고 갈 때 해당 입출금 거래를 중개하는 중개자가 송금자와 수신자 모두의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다. 마침 이씨가 복구를 요구한 당일 이같은 트래블룰을 담은 자금세탁 방지 규칙이 시행됐다.

이후 5월9일까지 이씨는 10차례 이상 복구를 요청했지만 업비트는 "트래블룰 준수를 위한 절차를 마련해 복구해주겠다"는 답변만 하고 복구를 해주지 않았다. 

다음날인 5월10일 테라·루나 폭락사태가 터졌고 송금 시도 시점에 1억4700여만원이었던 A씨의 루나 코인 가치는 상장폐지 직전인 같은달 18일 560원까지 떨어졌다. 무려 99.99%가 하락해 사실상 '0원'이 된 셈이다. 이에 이씨는 이체 지체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두나무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두나무 측은 "트래블룰 관련 정책을 결정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하기 위해 오입금 복구 중단을 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며 "약관에는 회원이 입출금 과정에서 전자지갑의 주소 등 정보를 잘못 입력함으로써 발생한 사고에 대해 업비트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 일관되게 규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씨의 손을 들어줬다. 회원의 출금청구권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시스템을 사전에 마련해뒀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두나무는 반환에 관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인식했고 복구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았으며 이를 위한 비용과 노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폭락으로 채무가 이행불능이 된 것으로, 이는 채무자의 귀책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전에도 2차 주소 오류로 암호화폐가 반환되는 오입금 사례가 드물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두나무는 복구를 위해 미리 직원을 배치하거나 전산시스템을 마련하는 등의 조치를 할 의무가 있었지만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며 "두나무가 이씨의 지갑에 이 사건 암호화폐를 복구해 출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채무를 부담했지만 이행을 지체했으므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두나무 측의 업비트 약관 주장에 대해서는 "회원이 출금 과정에서 전자지갑 주소를 잘못 기재해 암호화폐(가상자산)가 업비트의 전자지갑으로 그대로 반환된 경우 아무런 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면 이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무효"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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