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검찰총장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불신임’을 받고 인사에서도 배제돼 남은 4개월 임기 동안 수사지휘권을 정상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이 총장은 “원칙대로 수사하겠다”고 말하지만 ‘검찰총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제 확실히 검찰총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할 수 없게 됐다는 뜻이다.
이 총장은 14일 오전 출근길에 김건희 여사 관련 사건 수사 지휘부가 교체된 검찰 인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검찰총장으로서 공직자로서 주어진 소임과 소명을 다할 뿐”이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 고위간부 인사 전 사전 조율이 이뤄졌냐는 물음에는 "어제 단행된 검사장 인사에 대해서는…(5초간 침묵).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했다.
이원석 총장은 전날 고검장‧검사장 인사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청법을 보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제34조). 즉 검찰총장에겐 인사권이 없다.
과거엔 ‘의견을 들어’ 부분을 넓게 해석해 장관과 총장, 또 청와대 민정수석 이렇게 3자가 검찰 인사를 협의했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깨지면서 이번 인사처럼 ‘총장 패싱’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이 총장이 지방 출장 중일 때 법무부에서 인사 발표가 나왔다.
단순한 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박탈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검찰총장은 대검찰청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고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제12조).
그런데 이번 인사처럼 총장이 지휘하는 주요 수사를 맡은 ‘검사'를 교체해버리는 형태로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
전날 법무부는 고검장·검사장급 검사 39명의 신규 보임·전보 인사를 발표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과 1∼4차장이 모두 승진 형태지만 교체됐고, 검찰총장의 손발 역할을 하는 대검찰청 참모진도 대부분 교체됐다.
이 총장이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전담 수사팀 구성을 지시한 지 11일,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임명된 지 엿새 만에 이뤄진 인사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총장이 김건희 여사 사건(디올백‧도이치) 수사를 강화하겠다고 하자 ‘박성재 법무장관-김주현 민정수석’이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을 부산고검장으로 발령내는 등 수사라인을 교체해 ‘김건희 소환’을 막는 식의 수사 변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본다.
결국 검찰총장이 강조한 수사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이원석 총장 입장에서는 인사권과 수사지휘권을 다 잃은, 한 마디로 ‘식물 총장’이 된 것이다.
아직 김건희 여사의 여러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까지만 보면 ‘검찰총장의 종언’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으로 이어지기는커녕 엄정한 수사를 훼손하는 결과를 예고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식물 총장’을 언급한 적이 있다. 2020년 10월 국회법사위에서 ‘한동훈 비호’ 질문을 받자 “저는 (장관에 의해) 채널A 지휘권에서 배제됐다”며 “인사권도 하나도 없는 사람이어서 밖에서 다 식물 총장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했다.
직접 겪어 폐해를 아는 윤 대통령인데 왜 후배 총장을 같은 방식으로 무력화하는 걸까. 검찰 출신 인사는 “결국 윤 대통령의 개인의 욕구가 검찰 중립을 망가뜨릴 위험보다 앞선 것 아니겠느냐”며 “그가 ‘검찰총장일 때’는 이미 과거고, 대통령으로서 현재의 위치에서 판단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갈수록 검찰총장이 명예직에 가까워질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다. 이 총장이 거취 표명을 할 것이란 말도 돌았지만 결국 임기를 채우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장은 "저는 우리 검사들을, 수사팀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사는 인사고, 수사는 수사"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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