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병원서 신체감정 거절해 재판만 2년째"…손배所 공전에 당사자만 '발동동'

남가언 기자 입력 2024-02-28 08:38 수정 2024-02-28 08:3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체감정 지체로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액 등을 산정할 수가 없어 소송 자체가 결론을 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재판만 하염없이 길어져 소송 당자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 재판청구권까지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감정 예규를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신체감정으로 인해 평균 소송기간이 2~4년, 길게는 7년까지 지연되고 있다. 신체감정은 피고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경우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액을 산정할 때 진행한다. 원고의 신체상태를 평가 받아 일실수입, 치료비 등의 액수를 산정할 수 있다. 

민사소송에서 신체감정은 법원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판단한다. 법원은 직권으로 신체감정 명령을 할 수 있고, 원고나 피고가 신체감정 촉탁신청서를 제출하면 법원이 이를 채택해 신체감정 절차가 이뤄질 수도 있다. 손해액 산정 시 이같은 외부 전문가에 의한 객관적 증거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최근 '늑장 신체감정'으로 인해 민사재판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감정의뢰 내용이 불분명하다거나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병원에서 감정을 거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지난 2021년 수행비서 김지은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신체감정 절차 지연으로 1년 간 공전됐다. 

당시 김씨는 신체감정 의뢰 신청을 냈고 재판부가 5차례에 걸쳐 신체감정을 맡길 병원을 지정했으나 병원이 신체감정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신체감정 결과가 나와야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며 1년 가까이 재판을 열지 않았다. 

이처럼 신체감정을 받지 못해 재판이 계속 지연되는 이유는 법원 감정 예규에 신체감정을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감정을 하더라도 마감기한도 정해져 있지 않아 법원에서는 감정인이 결과를 보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서초동의 A 변호사는 "병원에서는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신체감정을 해주지 않으려고 하고 법원에서는 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판결을 내려주지 않고 있다"며 "신체감정을 병원에 강제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보니 손해배상 소송이 재판에서 계속 공전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손해배상 소송에서 감정이 늦어져 국민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감정 예규를 손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A 변호사는 "대법원이 감정 예규를 개정해 감정 마감 기간을 미리 정하는 등 감정이 과도하게 늦어져 재판 자체가 지연되는 일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병원이 감정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의무 규정을 두는 것에 대해서는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법원에서 감정을 해줄 병원과 의사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감정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선언적 의미 외 실질적 구속의 효력이 있을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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