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과 감전사고…'주목'받은 법원의 판단

한석진 기자-성석우 인턴기자  입력 2022-08-10 14:43 수정 2022-08-16 07:28
  • 이번주 내내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

  • 한국전기안전공사 "폭우로 인한 전기사고 예방해야"

  • 폭우 시 지나가다 가로등에 감전됐을 때 지자체 책임

  • 아파트 지하대기실에서 환경미화원 전기사고로 사망

  • 안전장치 없이 점검하던 점검원…40% 책임

수도권 폭우가 계속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사거리 인근에서 퇴근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로 수도권 여러 곳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무더위 속 갑작스러운 폭우에 누전으로 인한 감전 사고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전기안전공사(사장 박지현)는 지난 9일 보도자료를 내 집중호우로 인한 전기사고 예방법을 알렸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침수대비를 위해 평소 집 밖 하수구나 배수시설이 막혀 있지는 않은지 미리 점검하고 물길을 틔워두고 음식점, 상가에서 거리에 비치한 에어간판 등 전기시설물은 건물 안 안전한 장소로 옮겨놓아야 한다.

사전에 옥내시설 점검도 필요한데, 주택 내 설치돼 있는 누전차단기의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집이나 건물 안팎에 노출된 전선의 피복 상태를 확인하는 일도 중요하다. 벗겨지거나 갈라진 전선은 전기공사업체 전문가에게 요청해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고 비가 오거나 침수 중인 상황에서는 함부로 전선에 손을 대거나 접근하면 안 된다.

폭우로 집에 물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누전차단기부터 내리고 고무장갑을 사용해 가전제품 플러그를 뽑아야 한다. 침수된 곳에서 물을 퍼내려고 할 때도 주의해야 한다.

폭우에 쓰러져 방치된 전신주나 가로등을 발견하면 가까이 가선 안 되고 즉시 소방청이나 한국전력 또는 한국전기안전공사로 신고 전화를 해야 한다. 만약 현장에서 감전 사고가 났다면 사고자를 구하려고 신체에 직접 손을 대어선 안 된다. 먼저 차단기부터 내리고 119에 신고한 뒤, 고무장갑이나 목재 등 절연체를 이용해 사고자를 전선이나 도체로부터 떼어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안전수칙이 있음에도 폭우 속 감전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일에도 폭우 속에서 그라인더로 철골 절단 작업을 하던 50대 작업자가 감전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장마와 집중호우가 잦은 6~8월에 일어난 감전사고 사상자(122명)가 전체(408명)의 29.9%에 달한다.
 
아주로앤피는 폭우 속 감전사고에 얽힌 법원의 판단, 재판 결과를 살펴봤다.
 

경산시 남천강 둔치 산책로의 가로등 모습. [사진=김규남 기자]

◆폭우시 가로등 감전은 지자체 책임
집중호우 때 길 걷던 시민이 가로등에 감전됐다면 관리책임을 소홀히 한 지자체 책임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2007년 5월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이영구 판사)는 가로등에 감전돼 다친 이모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시와 서초구는 위자료 등 약 58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지난 2001년 7월 A씨는 서울에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 길을 걷다 가로등 누전으로 감전돼 시력이 손상되는 등 부상을 당했다.
 
법원은 “서초구는 가로등이 누전돼 위험하다는 안전 진단 결과를 여러 차례 통보받았다”며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고 누전차단기를 설치하지도 않아 사고가 났다”며 지자체의 손해 배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이 지역은 원래 감전 사고의 위험이 컸고, 실제로 사고 장소 부근에서 감전돼 숨진 사람이 있었다. 따라서 지자체는 물에 잠긴 도로를 차단해 사고를 막지 않은 책임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로등과 도로의 관리는 서초구가 맡고 있지만, 서울시가 권한을 위임한 것이다”라며 서초구와 서울시 모두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원에서는 다친 A씨도 침수된 도로를 우회하는 등 스스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잘못이 인정된다며 “지자체의 책임을 85%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A씨는 9700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A씨가 이미 산업재해 보상금 등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며 위자료만 인정했다.
 

환경미화원의 모습 [사진=상주시의회]

◆아파트 지하대기실서 환경미화원 감전사…“관리자 책임”
법원은 아파트의 시설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환경미화원을 감전사하게 한 관리자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이성호 판사)은 2013년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된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6일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재판받던 이 아파트 관리업체 전기계장은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주택관리주식회사는 벌금 500만원을 물게 됐다.
 
이들은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하실에서 일어난 환경미화원의 감전사고를 방지하지 못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장은 “근로자들의 위험을 방지하는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가볍지 않다. 사고가 일어날 줄 모르고 방치했기 때문에 그들의 나태함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아파트 관리업체 전기계장은 사고에 대해 “지하실이 비접지식이라 누전차단기가 필요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합리적이지 못한 주장”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법원은 “비가 온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지하실을 용도 변경해 환경미화원에게 사용하게 한 점은 관리자로서 관리해야 했던 부분”이라며 “과실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법원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때 주택관리사 자격이 상실되는 정황을 참작했다”고 말했다.
 
관리소장 B씨 등은 2011년 7월 집중호우가 내릴 당시 환경미화원 대기실이었던 지하실이 침수됐는데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등 관리의무를 소홀히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평소 지하대기실의 경우 비가 오면 바닥에서 물이 차오르는 등 누전 위험이 있었는데도 이들은 누전차단기를 설치하지 않았다.
 
한국주택관리회사 소속 환경미화원인 C씨는 당시 오전 비로 침수된 지하대기실에 들어갔다가 바닥에 있던 콘센트로부터 흘러나온 전기에 감전돼 사망했다.
 
C씨 유가족들은 한국주택관리주식회사와 관리소장 B씨, 전기계장 등을 고소했다.
 

2만5000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차선 [사진=연합뉴스]

◆안전장비 없이 점검 중 감전“작업자도 책임 있어”
모든 감전 피해자가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천시 고압 전류가 흐르는 곳에서 안전장비 없이 점검하다가 감전사고를 당했다면 근로자에게도 40%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2018년 9월 광주지법 민사14부(신신호 판사)는 D씨가 한국전기안전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D씨는 2015년 전남 장성의 한 자동차 부품공장 전기설비 안전 관리자로 일했다.
 
그는 그해 9월 전기안전공사 직원들과 함께 이 공장 내 각종 전기설비가 설치된 수전실에서 정기검사를 했다.
 
비가 오고 있었고 전기 공급이 끊기지 않았다. 수전실에는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었다.
 
공사 직원들의 요청으로 D씨는 절연복을 착용하지 않은 채 수전실로 들어갔다. 그 후 개폐기 부근에서 감전으로 인한 폭발사고가 발생해 D씨는 얼굴, 팔 등에 화상을 입었다.
 
법원은 “안전검사를 하면서 장비도 없이 기상조건을 고려하거나, 일시적으로 전기 공급을 차단하는 등 안전사고를 방지할 의무가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며 “공사 직원들이 이를 소홀히 해 D씨에게 상해를 입혔다"며 공사 측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은 D씨의 책임을 부정하진 않았다. 법원은 ”D씨가 30년간 전기안전관리 업무를 해 감전사고 위험성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안전조치를 요구하거나 스스로 안전장비를 갖추는 등 예방을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며 D씨가 40% 정도의 책임을 지라고 했다.
 
법원은 공사 측에 D씨가 청구한 손해배상금 2억6000만원 가운데 1억1000만원을 위자료와 치료비 등 명목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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