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해지는 '전세사기'…누가 세입자 눈물 닦아주나

  • 최근 전세사기 범죄 기승…사기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져
  • 검찰, 전세사기 '정조준'
  • 윤 대통령, 전세사기 단속 강력지시
info
입력 : 2022-07-25 06:00
수정 : 2022-07-25 17:50
프린트
글자 크기 작게
글자 크기 크게

서울시 빌라 밀집지역 [사진=연합뉴스]

김모(57)씨는 서울시 일대에서 분양대행업체 대표 A씨와 분양팀장 B씨와 짜고 건축주에게 줘야 할 집값(실매매가)에 그들이 나눠 가질 ‘리베이트 금액’을 얹는 방식으로 분양가를 높게 정했다.
 
그런 다음 이들은 분양가를 부풀린 사실을 숨긴 채 임차인을 모집했다. 당연히 실매매가 보다 전세보증금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보증금 중 일부를 분양대행업자가 ‘리베이트 명목’으로 가져가고 남은 대금(실매매가)은 건축주에게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빌라의 소유권을 취득했다. 피해자들의 보증금으로 빌라를 사들인 셈이다. 심지어 136채의 빌라 소유권을 자신의 30대 두 딸 명의로 이전해 주기도 했다.
 
지난 2017년 4월부터 2020년 1월까지 김모씨 모녀는 집값이 전세보증금보다 낮은 이른바 ‘깡통전세’ 구조를 만든 다음 이들과 전세 계약을 체결한 세입자 136명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방식으로 298억여 원을 챙겼다.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2030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였다.
 
현재 김모씨 일당은 사기와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 증가하는 ‘깡통전세’, 늘어나는 ‘전세사기’

뚜렷해지는 집값 하락세 속에 이른바 ‘깡통전세’가 늘어나고, 전세사기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통상적으로 집값 대비 전세가의 비율을 의미하는 전세가율이 80%를 넘을 경우를 깡통전세, 깡통주택이라고 부른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전세반환보증) 사고는 2799건, 사고 총액은 5790억원에 이른다. 전년 대비 각각 391건, 1108억원 늘었다.
 
올해 들어 6월 말까지 발생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는 총 1595건, 사고 금액은 3407억원으로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 유형별로 보면 다세대주택 세입자의 피해가 1961억원(924건)으로 가장 컸다. 이어 아파트 909억원(389건), 오피스텔 413억원(211건), 연립주택 93억원(47건) 등 순이었다.
 
◆교묘해지는 전세사기 범죄 유형

전세사기 수법도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먼저 임대인인 집주인에게 월세 계약만 맺을 수 있는 권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리인이 임의로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맺은 뒤 보증금을 가로채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경기도 안산의 한 중개보조원이 이 수법으로 세입자 120명으로부터 65억원을 가로챈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외에 월세 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며 다른 임차인과 전세 계약을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두 번째 수법은 앞서 본 ‘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과 같이 ‘깡통전세’를 통한 사기다. 주로 빌라 형태의 주택에서 자주 발생한다. 아파트와 달리 빌라는 정확한 시세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부동산업계에서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80%를 넘기 시작하면 깡통전세가 나타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세 번째 수법은 집 한 채를 한 명의 임차인이 아닌 여러 임차인과 계약하는 수법이다. 전세 계약을 하기 전에는 타인의 임대차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해당 주택에 임차인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인 ‘주민등록 전입세대’ 열람도 임대차 계약을 맺은 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임대차 계약 체결 전에는 서류상으로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중개인 없이 임대인과 임차인이 직거래하는 경우 이러한 수법에 당할 위험이 크다.
 
마지막으로는 신탁 사기다. 소유권이 신탁회사에 넘어간 집을 위탁자가 마음대로 전세 계약을 맺고 보증금을 챙기는 수법이다. 위탁자가 세입자와 임대 계약을 맺으려면 신탁회사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약 신탁회사의 동의가 없으면 해당 임대차 계약은 무효가 된다. 그 결과 세입자가 계약금에 잔금까지 다 치렀더라도 세입자의 법적 신분은 불법점유자로 전락하게 된다. 보증금을 전부 날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세입자가 임대차 계약을 맺기 전 임차목적물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더라도 집의 신탁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데다가 집의 신탁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신탁원부 발급이 번거롭고 복잡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전세사기 범죄 뿌리 뽑겠다”는 검찰

그간 검찰의 수사망에 걸려든 전세사기범도 여럿이다.

최근 기소된 ‘세 모녀’를 비롯해 △부동산 등기부상 거래가액을 부풀려 ‘실거래가’보다 높은 전세금을 받은 사기범(인천지검) △허위 임차인 등을 모집해 한국주택금융공사에서 보증하는 서민 전세자금 60억원 상당을 대출받은 조직(수원지검 안산지청) △다가구주택에 대한 ‘대출금’과 ‘다른 임차인들의 임대차보증금’만으로 이미 전체 주택의 시가를 초과했음에도 대출금과 주택 전월세 계약 현황을 속이고 전세계약을 체결한 사례(대전지검 서산지청) △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이 ‘갭투자’ 방법으로 다수의 다세대주택을 취득해 ‘전세금 돌려막기’를 하고 임대차계약서 등을 위조한 사례(대구지검)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사기범에게 형사처벌이 이뤄지는 경우는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임대인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데다가 그간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의 경우 계약 당사자 간 민사 분쟁 대상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또 전세보증금 5억원 이하 사건은 검찰 직접수사 범위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심각해지자 검찰은 전세사기 범죄에 대해 고강도 수사를 벌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대검찰청은 지난 19일 “전세보증금 사기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할 것을 전국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검찰은 전세사기 범죄자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할 방침이다. 또 범죄자가 법원으로부터 받은 형량이 적절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항소하고, 범죄자가 숨긴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피해자들이 빼앗긴 돈도 찾아낸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황병주 대검찰청 형사부장은 “전세사기는 대표적 서민 주거지인 빌라를 대상으로 주로 벌어지고 있고 피해자 대부분이 서민과 청년”이라며 “사실상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과 삶의 터전인 주거지를 상실하는 피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범죄자를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 “전세사기 범죄 일벌백계” 지시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도 전세사기 범죄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목련마을 주공1단지 아파트에서 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 기승을 부리는 전세 사기와 같이 민생을 위협하는 범죄는 강력한 수사를 통해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같은 자리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전세사기의 유형을 상세히 분석하고, 행정안전부와 협의해 경찰에 전세사기 전담반을 구성하는 등 관련 범죄를 강력히 단속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반환한 보증금은 끝까지 회수해 이른바 ‘나쁜 임대인’의 책임을 묻고 조직, 인력 보강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