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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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입력 : 2022-03-26 06:00
수정 : 2022-03-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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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칭기즈 칸, 만약 그에게 열정이 없었다면 그는 한낱 양치기 목동에 불과했을 것이다.”
 
당신은 이 문구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나도 칭기즈 칸처럼 세계를 정복해야겠다는 열정이 솟아오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가? 아니면 ‘나도 칭기즈 칸과 같은 열정을 갖지 않으면, 자칫 한낱 양치기 목동처럼 되겠구나.’하는 움츠러지는 생각이 드는가? 그 외 다른 생각은?
 
법인 스님은 이 문구를 얘기하고 사람들에게 소감과 판단을 구해보았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법인 스님의 질문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침묵했다고 한다. 심지어 몇 사람은 옳은 말이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이 문구는 예전에 어느 증권회사의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던 문구라고 하는데, 법인 스님은 이 광고 한 줄을 보고 모골이 오싹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토록 엄청난 선언이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위와 같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건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인스님의 질문의 의도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럴 것이다. 욕망이 몰아치는 현대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문구가 뭐가 어쨌다고 당혹스러워하느냐고 할 것이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꿈을 키워주는 좋은 문구 아니냐며 어리둥절해 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법인스님의 책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도 책에서 이 문구를 보았을 때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지나쳤다. 그러다가 법인 스님이 모골이 오싹해졌다고 하시는 부분의 글을 보며 나 자신 부끄러워졌다. 칭기즈 칸의 열정이라는 것은 사실 남을 정복하고 남의 피와 눈물 속에 이루어낸 야망이 아닌가? 그리고 한낱 양치기 목동이라니! 양치기 목동은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쓸모 없는 존재란 말인가? 내가 이 광고문구를 보면서 곧바로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나도 이미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 경쟁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에 물들어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었었다. 그 드라마에선 자식을 끊임없이 경쟁으로 내모는 부모, 인성교육은 안중에도 없고 공부에서 학생들을 다그치며 낙오되는 학생들에게는 관심도 없는 선생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마 스카이캐슬의 부모와 선생이 이 광고문구를 알았다면 니들이 한낱 양치기 목동이 될 거냐며 아이들을 몰아쳤을 것 같다.
 
1등만을 - 그 1등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차지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 존중하는 사회, 그리하여 양치기 목동을 ‘한낱 양치기 목동’이라며 멸시하는 사회,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동안 교육이 진정으로 이 사회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성과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만 치중한 것이 생각 없는 사람들만 배출해낸 것 아닌가? 또 이제는 이러한 생각 없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면서 위와 같은 광고 문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고 자극적인 영상만을 좋아하는 것이 더욱 생각 없는 사회를 만들었다고 할 것이고... 책은 읽는 사람이 주로 주체적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이게 하지만, 영상은 생각할 틈을 별로 주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더욱이 요즈음 사람들이 주로 유투브를 통하여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은 더욱 생각없이 그저 수동적, 타율적으로 된다. 법인 스님은 이런 세태가 안타까워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이라는 책을 쓴 것이리라.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검색의 시대에 생각 없이 검색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기에 가짜뉴스도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법인 스님 말처럼 사유를 회복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생각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그럼 어떻게 생각의 근육을 키울까? 이미 너무 들어서 식상된 말이긴 하지만, 교육에선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토론식 교육으로 생각하는 인간을 길러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미디어, 인터넷 등이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의 필터로 걸러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터도 한 번 고정된 것만 계속 사용하면 딱딱해지고 먼지와 불순물이 잔뜩 쌓이게 된다. 이런 필터만 계속 사용하면 편견만 늘어갈 뿐이다. 그러니 끊임없는 사유와 독서로 필터의 탄력성을 회복하여 생명력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계속 만나면 무조건 걸러만 낼 것이 아니라, 왜 이들은 다른 생각을 하는지도 생각을 해봐야 생각의 근육이 강해지고 유연해진다.
 
법인 스님은 검색의 시대를 얘기하지만, 이제는 검색의 시대에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우리가 생각의 근육을 키워 진정한 사유를 회복하지 않으면 장차 우리는 인공지능에 조종당하는 무기력한 로봇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삶을 주체적으로 창의적으로 이끌어가는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아니면 생각 없이 무기력하게 인공지능에 삶을 지배당하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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