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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 인사들의 윤석열 총장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25일 더불어민주당 행사와 공수처 토론회에서 거의 막말에 가까운 표현으로 윤 총장을 비난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관련한 진정 사건 처리를 두고서다. 추 장관은 “검찰총장이 제 지시를 절반 잘라 먹었다” “말을 안 듣는 검찰총장” “지휘랍시고”라고 했다.
◆장관급 검찰총장에게 "말 안 듣는" "지휘랍시고"
검찰총장은 법무부 소속 공무원이지만 법무부 장관의 일개 부하가 아니다. 법무부장관과 같은 장관급으로 법무부 장관처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임기도 2년이 보장돼 있다. 검찰청법에 따라 전국 검찰을 통솔하는 검찰의 최고 지휘권자이다. 그런 검찰총장에게 마치 조롱하고 비아냥대듯 ‘잘라 먹어’ ‘말을 안 듣는’ ‘지휘랍시고’라는 인격모독적인 표현을 썼다. 그것도 공개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그랬다. 검찰총장이 아니라 다른 부하들한테도 함부로 쓸 수 없는 표현이다.
이에 앞서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방송 인터뷰에서 윤 총장 사퇴를 대놓고 주장했다. 설 최고위원은 “윤 총장이 법무부 장관하고 각을 세우고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나? ‘빨리 정리하라’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제가 윤석열이라고 하면, 벌써 그만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나”라고 했다.
민주당의 비례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도 나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총장이) 눈치가 없는 것인지, 불필요한 자존심인지 내겐 뻔한 상황인데, 윤씨는 갈수록 더하다”며 “이런저런 계산하는 정치인들조차 이제는 그만하시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고 했다. 이어 “윤 총장님, 이제 어찌할 것입니까?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에 서십시오”라고 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검찰 역사상 가장 최악의 검찰총장이 될거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여권의 윤 총장 불신은 이미 작년 8월 조국 비리 수사 때 시작됐다. 여권은 이 수사를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했고, 윤 총장은 여권의 눈 밖에 났다. 이후 검찰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정권 비리 수사를 본격화하자 윤 총장을 검찰 개혁에 저항한다, ‘검찰 정치’를 한다고 비난했다. 한동안 뜸하던 윤 총장 공격이 이번에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및 채널 A기자의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계기로 재개된 것이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으로서의 신뢰와 자격을 잃었다면 아무리 2년 임기가 보장됐더라도 물러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 윤 총장은 정말 그런 잘못을 한 것일까.
‘법무장관과 윤 총장의 충돌’ 문제부터 따져 보자. 추 장관과 윤 총장이 충돌한 것은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진정 사건 조사 방식 문제다. 검찰은 2010년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수사할 때 한 사람을 법정 증인으로 내세웠다. 이 사람이 당시 검찰의 강요로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하도록 거짓 증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지난 4월 법무부에 진정서를 넣었다. 법무부는 이 진정 사건을 대검 감찰부로 내려보냈는데 윤 총장이 대검 인권부를 거쳐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재배당했다.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진정 사건 처리, 법무부가 관여할 일인가
추미애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에서 “한 전 총리 관련 진정 사건을 감찰부가 맡았어야 했다”며 “감찰 사안을 마치 인권 문제인 것처럼 변질시켜서 인권감독관실로 이첩한 것은 옳지 않고 관행화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날 설훈 최고 위원이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서로 견해가 달라서 싸우는 듯한 이런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다”며 윤 총장 사퇴를 주장했다.
이 사건을 감찰부가 맡아야 하는지, 인권부가 맡아야 하는지에 대해 법무부와 대검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법무부는 위증 강요는 검사 비리에 관한 문제라 검사 징계를 담당한 감찰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검은 검사 징계 시효(5년)가 지나 감찰부 조사 대상이 아니며 이런 인권 침해 사건은 통상적으로 대검 인권부가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추 장관의 지적에 윤 총장은 이 사건을 감찰부와 인권부가 협력해서 조사하되 인권부가 지휘하도록 조치했다. 그러자 추 장관은 ‘장관 지시를 절반 잘라 먹었다’ '지휘랍시고’ 같은 표현을 써서 윤 총장을 비난한 것이다.
윤 총장의 조치가 장관의 지시를 '잘라 먹은' 것인지부터가 불분명하다. 법무부가 당초 대검 감찰부에서 조사하라고 한 것이 검찰청법에 따른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 행사인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19일 아침까지만 해도 "장관이 총장 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그런데 이날 오부부터 법무부 관계자들이 "어제(18일) 지시는 장관의 총장 지휘권을 명시한 검찰청법 8조가 근거"라는 식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식 지휘권 행사라면 장관이 처음부터 이를 분명히 했다면 사건 배당 과정에서의 혼선이 안 생겼을 수도 있다.
중요한 문제는 법무부가 사건 배당에까지 관여했다는 점이다. 그간의 관행으로 보면 사건을 어느 부서에 배당할지는 대검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왔다. 법무부가 이런 문제에까지 일일이 개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법무부가 이번에 문제 삼고 나섰다. 윤 총장이 이 사건 조사를 유야무야할지 모른다고 불신하지 않는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한명숙 전 총리 수사는 10년 전 일이다. 윤 총장과는 무관하다. 위증 강요가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윤 총장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그런 일에 은폐나 축소로 대응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법무부가 개입하고, 여당 최고위원은 ‘장관과 총장의 충돌’로 비화하며 윤 총장 사퇴 주장의 빌미로 삼고 있다. 진짜 배경은 윤 총장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표출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검찰의 정치 개입인가
그 불신과 불만의 뿌리가 조국 비리 수사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여권 인들은 윤 총장이 작년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며칠 앞두고 전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것은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도전이자 인사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이 수사가 대통령 인사권 침해이고 도전인지에 대해선 양론이 있을 수 있다. 인사 청문회에서 진위 여부를 가리고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최종 임명 여부를 결정하는 게 옳다고 보는 입장에선 인사권 침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기된 의혹이 위장 전입이나 논문 표절 같은 늘 있었던 일이 아니고 자녀 입시를 위한 사문서 위조와 증거 인멸 등 중대한 문제라면 청문회와 무관하게 조속히 수사에 나서는 게 옳다고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조국 비리 수사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점이다. 검찰이 정권의 힘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대통령 임기 초반에, 대통령이 매우 신임하는 인물을 수사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검찰이야말로 국민이 그토록 염원하던 ‘진짜 검찰’의 모습이다. 국민은 정권 핵심 인물을 정권 눈치 보지 않고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는 검찰을 고대해 왔다. 조국 비리 수사는 그런 염원에 부응하는 사실상의 첫 수사였다. 조국 비리 수사가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치더라도 과연 이런 국민 염원에 부응하는 측면을 상쇄할 만큼 더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점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유재수 부산시장의 감찰 중단 의혹 사건 수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 정권 일부 인사들은 이 사건 수사를 검찰의 정치 개입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찰 정치’라고 비난했다. 검찰 정치란 검찰이 수사권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정치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비리와 불법을 엄정히 수사해서 처벌하는 것은 본연의 업무다. 그 대상이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런 검찰에는 박수를 보내야지, 비난하고 공격할 일이 아니다. 검찰 정치라고 비난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윤 총장은 검찰 개혁에 저항했나
여권 인사들은 윤석열 총장이 정권을 곤궁 속으로 몰아 검찰 개혁을 무력화하려고 정권 비리를 수사한다고도 주장한다.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검찰 개혁에 반대한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윤 총장은 작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설치에 대해 “최종 결정은 국민과 국회의 권한”이라며 “공직자로서 국회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는 현 정부가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추진해 왔다. 그런 사안에 윤 총장이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이다. 전임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윤 총장은 총장 취임 뒤 검찰 간부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대외적인 의견을 표명하거나 국회의원들을 만나 로비하던 것을 일절 금지시켰다.
윤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 관행과 방식도 개선할 것을 지시하자 바로 따랐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불러온 수사 브리핑을 중단하고, 피의자 공개 소환 관행도 비공개 소환으로 바꿨다. 피의자를 검찰청사 앞 포토라인에 세우던 관행도 없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개혁 조치의 첫번째 수혜자가 조국 부부였다. 조국 부부는 검찰청사 지하 주차장을 통해 비공개 소환됐다. 당연히 포토라인에도 서지 않았다. 마치 청와대가 조국 부부를 위해 검찰 개혁을 강조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윤 총장이 사퇴할 만큼 중대한 잘못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현 정권 인사들이 윤 총장 사퇴를 주장하고 그를 공격하는 것은 결국 한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이 과거 검찰총장처럼 정권 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권에 알아서 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석열 총장이 우리 정부하고 적대적 관계라고까지 하기는 지나치지만 어쨌든 각을 세우고 있었던 것은 만천하가 아는 사실이다”고 한 설훈 최고위원의 말이 이를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했다. 현 정권 사람들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이른바 전 정권의 적폐와 국정 농단 사건을 거침없이 수사하는 것을 보고 윤석열을 ‘확실한 우리 편’이라고 여기고 총장에 임명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껏 윤 총장을 치켜세운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정권 비리를 수사하고 나서자 ‘우리 편이 아니었구나’하고 뒤늦게 깨닫고 윤 총장 공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전개되는 모양새가 그렇다.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도 비리가 있으면 엄정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지금 정권 인사들이 윤 총장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그건 그저 국민 듣기 좋으라고 한 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마다 '검찰다운 검찰' 외쳤지만 모두 물거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초인 1998년 법무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지금까지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아 왔다”면서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고 했다.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라는 문구는 액자에 담겨 법무부와 전국 검찰청사에 걸리기도 했다. 평생을 야당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정권 시녀 노릇만 하는 검찰에 대한 한이 얼마나 컸고 검찰의 문제점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4년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대표로 발의한 최고위원 결의문에서 “검찰은 정치적 의혹 사건에 대해 권력의 시녀, 주구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강조한 말의 핵심은 검찰이 정권의 도구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검찰이 바로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검찰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물론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실현되지 않았다. 말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외치면서도 실제론 검찰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제 검찰이 바로서려 하고 있다. 모처럼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도 당당히 수사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현 정권 인사들이 그 검찰을 쓰러뜨리려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윤 총장은 쫓겨나거나, 쫓겨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힘을 못 쓰는 식물 총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느 경우든 여권은 바라던 바를 달성하게 된다. 그 대신 '검찰다운 검찰'의 꿈은 이번에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장관급 검찰총장에게 "말 안 듣는" "지휘랍시고"
검찰총장은 법무부 소속 공무원이지만 법무부 장관의 일개 부하가 아니다. 법무부장관과 같은 장관급으로 법무부 장관처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임기도 2년이 보장돼 있다. 검찰청법에 따라 전국 검찰을 통솔하는 검찰의 최고 지휘권자이다. 그런 검찰총장에게 마치 조롱하고 비아냥대듯 ‘잘라 먹어’ ‘말을 안 듣는’ ‘지휘랍시고’라는 인격모독적인 표현을 썼다. 그것도 공개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그랬다. 검찰총장이 아니라 다른 부하들한테도 함부로 쓸 수 없는 표현이다.
이에 앞서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방송 인터뷰에서 윤 총장 사퇴를 대놓고 주장했다. 설 최고위원은 “윤 총장이 법무부 장관하고 각을 세우고 나오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나? ‘빨리 정리하라’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제가 윤석열이라고 하면, 벌써 그만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나”라고 했다.
민주당의 비례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도 나섰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총장이) 눈치가 없는 것인지, 불필요한 자존심인지 내겐 뻔한 상황인데, 윤씨는 갈수록 더하다”며 “이런저런 계산하는 정치인들조차 이제는 그만하시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듯하다”고 했다. 이어 “윤 총장님, 이제 어찌할 것입니까?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에 서십시오”라고 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윤 총장을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검찰 역사상 가장 최악의 검찰총장이 될거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여권의 윤 총장 불신은 이미 작년 8월 조국 비리 수사 때 시작됐다. 여권은 이 수사를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했고, 윤 총장은 여권의 눈 밖에 났다. 이후 검찰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정권 비리 수사를 본격화하자 윤 총장을 검찰 개혁에 저항한다, ‘검찰 정치’를 한다고 비난했다. 한동안 뜸하던 윤 총장 공격이 이번에 한명숙 전 총리 사건 및 채널 A기자의 이른바 ‘검언 유착’ 의혹 사건을 계기로 재개된 것이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으로서의 신뢰와 자격을 잃었다면 아무리 2년 임기가 보장됐더라도 물러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 윤 총장은 정말 그런 잘못을 한 것일까.
‘법무장관과 윤 총장의 충돌’ 문제부터 따져 보자. 추 장관과 윤 총장이 충돌한 것은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진정 사건 조사 방식 문제다. 검찰은 2010년 한 전 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수사할 때 한 사람을 법정 증인으로 내세웠다. 이 사람이 당시 검찰의 강요로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하도록 거짓 증언을 했다고 주장하며 진실을 밝혀 달라고 지난 4월 법무부에 진정서를 넣었다. 법무부는 이 진정 사건을 대검 감찰부로 내려보냈는데 윤 총장이 대검 인권부를 거쳐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재배당했다.
◆한명숙 전 총리 관련 진정 사건 처리, 법무부가 관여할 일인가
추미애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에서 “한 전 총리 관련 진정 사건을 감찰부가 맡았어야 했다”며 “감찰 사안을 마치 인권 문제인 것처럼 변질시켜서 인권감독관실로 이첩한 것은 옳지 않고 관행화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다음날 설훈 최고 위원이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서로 견해가 달라서 싸우는 듯한 이런 모습은 보인 적이 없었다”며 윤 총장 사퇴를 주장했다.
이 사건을 감찰부가 맡아야 하는지, 인권부가 맡아야 하는지에 대해 법무부와 대검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법무부는 위증 강요는 검사 비리에 관한 문제라 검사 징계를 담당한 감찰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검은 검사 징계 시효(5년)가 지나 감찰부 조사 대상이 아니며 이런 인권 침해 사건은 통상적으로 대검 인권부가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추 장관의 지적에 윤 총장은 이 사건을 감찰부와 인권부가 협력해서 조사하되 인권부가 지휘하도록 조치했다. 그러자 추 장관은 ‘장관 지시를 절반 잘라 먹었다’ '지휘랍시고’ 같은 표현을 써서 윤 총장을 비난한 것이다.
윤 총장의 조치가 장관의 지시를 '잘라 먹은' 것인지부터가 불분명하다. 법무부가 당초 대검 감찰부에서 조사하라고 한 것이 검찰청법에 따른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 행사인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19일 아침까지만 해도 "장관이 총장 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그런데 이날 오부부터 법무부 관계자들이 "어제(18일) 지시는 장관의 총장 지휘권을 명시한 검찰청법 8조가 근거"라는 식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식 지휘권 행사라면 장관이 처음부터 이를 분명히 했다면 사건 배당 과정에서의 혼선이 안 생겼을 수도 있다.
중요한 문제는 법무부가 사건 배당에까지 관여했다는 점이다. 그간의 관행으로 보면 사건을 어느 부서에 배당할지는 대검이 독자적으로 판단해 왔다. 법무부가 이런 문제에까지 일일이 개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법무부가 이번에 문제 삼고 나섰다. 윤 총장이 이 사건 조사를 유야무야할지 모른다고 불신하지 않는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할 이유는 찾기 어렵다. 한명숙 전 총리 수사는 10년 전 일이다. 윤 총장과는 무관하다. 위증 강요가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윤 총장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그런 일에 은폐나 축소로 대응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법무부가 개입하고, 여당 최고위원은 ‘장관과 총장의 충돌’로 비화하며 윤 총장 사퇴 주장의 빌미로 삼고 있다. 진짜 배경은 윤 총장에 대한 불신과 불만의 표출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검찰의 정치 개입인가
그 불신과 불만의 뿌리가 조국 비리 수사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여권 인들은 윤 총장이 작년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며칠 앞두고 전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것은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도전이자 인사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이 수사가 대통령 인사권 침해이고 도전인지에 대해선 양론이 있을 수 있다. 인사 청문회에서 진위 여부를 가리고 그 결과에 따라 대통령이 최종 임명 여부를 결정하는 게 옳다고 보는 입장에선 인사권 침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기된 의혹이 위장 전입이나 논문 표절 같은 늘 있었던 일이 아니고 자녀 입시를 위한 사문서 위조와 증거 인멸 등 중대한 문제라면 청문회와 무관하게 조속히 수사에 나서는 게 옳다고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조국 비리 수사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점이다. 검찰이 정권의 힘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대통령 임기 초반에, 대통령이 매우 신임하는 인물을 수사한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검찰이야말로 국민이 그토록 염원하던 ‘진짜 검찰’의 모습이다. 국민은 정권 핵심 인물을 정권 눈치 보지 않고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는 검찰을 고대해 왔다. 조국 비리 수사는 그런 염원에 부응하는 사실상의 첫 수사였다. 조국 비리 수사가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치더라도 과연 이런 국민 염원에 부응하는 측면을 상쇄할 만큼 더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점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유재수 부산시장의 감찰 중단 의혹 사건 수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 정권 일부 인사들은 이 사건 수사를 검찰의 정치 개입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찰 정치’라고 비난했다. 검찰 정치란 검찰이 수사권을 통해 힘을 과시하고 정치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비리와 불법을 엄정히 수사해서 처벌하는 것은 본연의 업무다. 그 대상이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라면 더욱더 그렇다. 그런 검찰에는 박수를 보내야지, 비난하고 공격할 일이 아니다. 검찰 정치라고 비난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윤 총장은 검찰 개혁에 저항했나
여권 인사들은 윤석열 총장이 정권을 곤궁 속으로 몰아 검찰 개혁을 무력화하려고 정권 비리를 수사한다고도 주장한다. 검찰 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검찰 개혁에 반대한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오히려 윤 총장은 작년 7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설치에 대해 “최종 결정은 국민과 국회의 권한”이라며 “공직자로서 국회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는 현 정부가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추진해 왔다. 그런 사안에 윤 총장이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이다. 전임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것과는 다르다. 실제로 윤 총장은 총장 취임 뒤 검찰 간부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대외적인 의견을 표명하거나 국회의원들을 만나 로비하던 것을 일절 금지시켰다.
윤 총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 관행과 방식도 개선할 것을 지시하자 바로 따랐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불러온 수사 브리핑을 중단하고, 피의자 공개 소환 관행도 비공개 소환으로 바꿨다. 피의자를 검찰청사 앞 포토라인에 세우던 관행도 없앴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개혁 조치의 첫번째 수혜자가 조국 부부였다. 조국 부부는 검찰청사 지하 주차장을 통해 비공개 소환됐다. 당연히 포토라인에도 서지 않았다. 마치 청와대가 조국 부부를 위해 검찰 개혁을 강조한 꼴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윤 총장이 사퇴할 만큼 중대한 잘못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럼에도 현 정권 인사들이 윤 총장 사퇴를 주장하고 그를 공격하는 것은 결국 한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이 과거 검찰총장처럼 정권 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권에 알아서 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석열 총장이 우리 정부하고 적대적 관계라고까지 하기는 지나치지만 어쨌든 각을 세우고 있었던 것은 만천하가 아는 사실이다”고 한 설훈 최고위원의 말이 이를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5월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했다. 현 정권 사람들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이른바 전 정권의 적폐와 국정 농단 사건을 거침없이 수사하는 것을 보고 윤석열을 ‘확실한 우리 편’이라고 여기고 총장에 임명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껏 윤 총장을 치켜세운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정권 비리를 수사하고 나서자 ‘우리 편이 아니었구나’하고 뒤늦게 깨닫고 윤 총장 공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전개되는 모양새가 그렇다.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살아 있는 권력에도 비리가 있으면 엄정히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지금 정권 인사들이 윤 총장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그건 그저 국민 듣기 좋으라고 한 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마다 '검찰다운 검찰' 외쳤지만 모두 물거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초인 1998년 법무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지금까지 검찰은 권력의 지배를 받아 왔다”면서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고 했다.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라는 문구는 액자에 담겨 법무부와 전국 검찰청사에 걸리기도 했다. 평생을 야당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정권 시녀 노릇만 하는 검찰에 대한 한이 얼마나 컸고 검찰의 문제점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4년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대표로 발의한 최고위원 결의문에서 “검찰은 정치적 의혹 사건에 대해 권력의 시녀, 주구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강조한 말의 핵심은 검찰이 정권의 도구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검찰이 바로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검찰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물론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실현되지 않았다. 말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을 외치면서도 실제론 검찰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제 검찰이 바로서려 하고 있다. 모처럼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도 당당히 수사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현 정권 인사들이 그 검찰을 쓰러뜨리려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윤 총장은 쫓겨나거나, 쫓겨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힘을 못 쓰는 식물 총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느 경우든 여권은 바라던 바를 달성하게 된다. 그 대신 '검찰다운 검찰'의 꿈은 이번에도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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