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기생충과 사회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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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변호사
입력 : 2022-04-22 11:00
수정 : 2022-04-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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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상민 변호사]

몇 일 전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다. 다양한 논의와 논란이 있었고, 우리나라 배우가 시상자로 나서는 모습도 있었다. 문득 지난 아카데미를 수 놓았던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그 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무려 4관왕을 했다. 어떤 수식어도 아깝지 않은 자랑스러운 작품으로 기억된다. 수상에 대한 성취와 더불어, 이 작품이 지닌 영화적 성취도 가히 놀라웠다. 영화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를 섬뜩하게 그려냈다. 빈자와 부자의 이야기,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이 섞이는 이야기, 그 와중에 알게 되는 또 다른 지하. 끊임없이 오르내리던 그 계단이 낯설지 않은 것은, 지금도 계단 앞에서 망설이는 우리의 현실이 투영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논의는 이미 케케묵은 이야기다. 그에 대항한 공산주의 시스템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획을 그었지만, 공산주의는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자본주의 그 자체는 절묘하게 포착했으나, 공산주의 혁명 이후를 예상하지 못했다. 필자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 가운데 하나가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기심의 현물화가 돈이며, 결국 돈의 역학관계로 움직이는 자본주의는, 인간과 사회의 니즈(needs)를 파고든 차악의 시스템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본주의 이상의 제도를 상상하지 못했다.

부자인 사장의 집과 빈자인 기택의 집은 당연히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는 수 십 개의 계단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과연 빈자들이 숨 쉬지 않고 계단을 오른다고 한들 그들이 원하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영화는 그 미지수를 그리고자 빈자와 부자의 교집합을 만들어 낸다. 물론 그들은 알지 못했다. 빈자 밑에 또 다른 빈자가 있다는 것을. 이 지점에서 영화 기생충은 동 시기의 영화 ‘조커’와 묘하게 크로스오버된다. 시스템에 처절하게 무너진 가난한 자들의 폭발이 있었다. 조커에서는 그 폭발이 폭동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진실인지 허상인지는 알 수 없고, 기생충에서는 그 폭발이 살인으로 나타나는데, 그 이후의 삶을 알 수 없다.
 
기생충에서 인물들은 분명 많은 범죄를 저지른다. 대학 증명서를 위조하는 등 사문서위조 및 행사, 허위 경력 등으로 과외를 하고 돈을 받는 사기죄, 복숭아 가루로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상해죄, 범죄목적으로 부자의 집에 들어가는 주거침입죄, 절도죄, 결국에는 살인죄까지. 한 식구들이 행한 범죄들치고는 그 죄명들이 어마어마하다. 모든 행동과 그들의 인생에는 선이 그어져 있다. 빈자들은 그 선을 넘기 위해 위와 같은 범죄에 이르렀다. 아, 물론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여 슬프다.
 
사회적인 상상력은 우리를 현재에 이르게 했다. 그 상상의 제도들은 어느새 우리를 규정짓는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그 상징이 어느 순간 부조리해 졌다면, 우리는 다시금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부자건 빈자건 우리는 그 상징과 상상 속에 함께 살고 있는 존재들이다. 필자는 사람을 믿는다. 정확하게는 사람의 인지가 낳은 상상을 믿는다. 그리고 그 상상은 마침내 우리를 조금 더 높은 차원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점마저, 믿는다. 아직은.
 
다시금 상상이 필요한 시대다. 분명 그런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