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4조원 규모의 문재인 정부판 '뉴딜(경기부양을 위한 공공 견인사업)'인 예비타당성(예타) 면제 사업이 대통령 측근을 비롯해 여야의 유력 정치인 지역구에 '설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전국 23개 예타 면제 사업으로 선정된 지역의 국회의원과 광역자치단체장들은 "숙원사업을 해결했다"며 속도감 있는 추진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제외한 수도권 지역의 '역차별'과 '측근 챙기기' 논란, 사회간접자본(SOC) 증가에 따른 '재정 부담' 등은 해결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김경수, 예타면제 최대수혜…부·울·경 '5조' 육박
30일 정부에 따르면 24조1000억원 수준인 예타 면제 총사업비는 △광역교통·물류망 구축(5개) 10조9000억원 △지역산업 인프라 확충(7개) 5조7000억원 △지역주민 삶의 질 개선(6개) 4조원 △연구·개발(R&D) 투자 등 지역 전략산업 육성(5개) 3조6000억원 등으로 각각 배분했다.
예타 면제 '단일 사업' 중 가장 큰 규모는 '남북내륙철도'(4조7000억원) 구축이다. 이는 경북 김천에서 경남 거제까지 172㎞ 구간에 고속철도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앞서 2014∼2017년 예타 조사에서는 비용 대비 편익(B/C)에서 0.72로, '낙제점'(1 미만)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문재인 정부판 뉴딜의 최대 수혜자로 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 지사는 지난해 6·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남북내륙철도' 추진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 지사는 예타 면제 발표 후 "한반도평화시대, 남과 북을 잇고 유라시아 대륙과 해양을 관통하는 철도가 될 것"이라며 "문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부·울·경 지역은 '울산 외곽순환도로(1조원)'와 '부산신항∼김해 고속도로(8000억원)' 등 총 6조7000억원 규모의 사업을 따냈다. 송철호 울산시장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한다. 부산시도 "100년 미래를 위한 동력을 얻었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부산의 숙원사업이었던 사상∼해운대 지하고속도로 건설은 예타 면제 대신 '적격성 조사 대상' 사업에 포함됐다. 부산 사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이어 배재정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내년 총선에 도전할 예정인 지역구다.
일각에선 이 지역이 민주당의 '낙동강 벨트'의 요충지라는 점에서 총선용 밀어주기라고 비판한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장·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측근 밀어주기 의혹이 짙다"며 "국정의 사유화"라고 꼬집었다.
◆'이해찬' 열고 '노영민' 끌고…충청권 예타 눈에 띄네
충청권도 3조9000억원 규모의 설 선물을 받았다. 8013억원 규모의 '세종∼청주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광역교통 숙원 사업이자 충청권 상생 발전 측면에서 필요한 사업으로 분류했다.
이 사업은 오는 2030년까지 세종시 연서면~청주시 상당구 남이면(총연장 20㎞) 간 왕복 4차로를 신설하는 안이다. 이로써 세종시는 충남 당진에서 경북 영덕까지 동서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동서 4축 추진에 날개를 달 것으로 보인다.
이어 △충북선 철도 고속화(1조5000억원) △석문산단 인입철도(9000억원) △대전도시철도2호선 트램(7000억원) 등도 예타 면제 사업에 포함됐다. 충북선 철도 고속화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역구(청주) 사업이다. '노영민 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세종시를 지역구로 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역할도 컸다. 이 대표는 예타 면제 사업 발표를 앞두고 "당에서도 최대한 뒷받침하겠다", "예타 면제는 일자리 창출 등 균형발전의 동력이 될 것" 등의 발언을 하면서 당·정을 측면 지원했다.
이 대표는 이날에도 예타 면제 비판에 대해 "지역 중심의 사업을 구체화했다"며 "과거와는 다르다"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 대표가 문재인 정부판 뉴딜 사업을 사실상 열고 노 비서실장이 끈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전 대전시당 위원장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대전도시철도2호선 트램 건설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전북 '새만금' 하늘길 열고…광주 'AI 메카'로
호남 지역은 총사업비 규모에선 부·울·경에 못 미치지만, 알토란 같은 사업권을 획득했다.
우선 전북 사업의 최대 현안인 새만금 국제공항(8000억원)이 예타 면제를 받았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를 비롯해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같은 당 정운천 의원 등 전북 지역 국회의원들은 지난해부터 새만금 국제공항의 예타 면제를 위해 전방위적인 공조에 나섰다.
송 지사는 "새만금 국제공항의 예타 면제는 도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말했다. 정운천 의원도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오는 2023 세계 잼버리 대회의 성공 개최와 함께 새만금을 동북아 물류중심지로 조성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광주시는 철도 등의 SOC 건설 일색인 예타 면제 사업에서 '인공지능(AI)' 메카로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4000억원 규모의 'AI 기반 과학기술창업단지 조성사업'이 예타 면제 사업으로 확정된 것이다.
광주시는 이번에 확정한 5년 사업을 우선 1단계로 조성한 뒤 향후 2단계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1단계에서는 2020∼2024년까지 4061억원을 투입, 데이터센터 등 기반시설을 비롯해 창업보육 프로그램, 산업융합 R&D 등 인공지능 개발·육성에 필요한 자원과 인프라에 AI 기능을 접목한다.
2단계는 2025∼2029년까지 5939억원을 투입해 이미 조성된 연구기반 등을 사회 서비스 분야로 확대, 인공지능 선도도시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경우 2029년까지 인공지능 창업 1000개, 고용효과 2만7500명, 인공지능 전문인력 5150명 등의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이와 관련해 "광주가 인공지능 선도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지역 전략산업인 자동차·에너지·광산업 등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융·복합 신산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경전선 광주 송정∼순천 전철화(1조7000억원) △서남해안 관광도로(1조원) △수산식품 수출단지(1000억원) 등도 예타 면제 대상에 편입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서남해안 관광도로와 수산식품 수출단지 등의 예타 면제와 관련해 "전남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며 "남해안관광 시대를 열고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원은 "예타 면제의 단기적 효과는 있겠지만, SOC의 효과를 높이려면 산업 자체가 활성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예타 면제가 단발성 경기부양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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