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라도 혼인 무효 가능"…대법, 40년만 판례 변경

남가언 기자 입력 2024-05-23 16:14 수정 2024-05-23 16:14
  • 조희대 대법원 첫 전합...전원 일치 판결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미 이혼을 한 사람도 혼인 자체를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종전에 이혼을 한 경우 혼인 상태가 해소됐기 때문에 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는데 40년 만에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A씨가 전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청구소송에서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원심의 각하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B씨와 2001년 12월 결혼했다가 2004년 10월 이혼했다. 이후 A씨는 "혼인신고 당시 결혼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실질적 합의 없이 이혼신고를 했다"고 주장하며 혼인을 무효로 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민법 815조에 따르면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었거나 근친혼일 경우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미혼모 가족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법원은 "신분 관계인 혼인 관계는 이를 전제로 수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된다"며 "그에 관해 일일이 효력의 확인을 구하는 절차를 반복하는 것보다 혼인 관계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편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며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봤다.

이어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요구를 위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혼인 관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며 "(혼인 무효) 확인의 이익을 부정한다면 혼인무효 사유의 존부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구할 방법을 미리 막아버림으로써 국민이 온전히 권리구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앞서 1·2심은 모두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혼인무효와 혼인취소 모두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1984년부터 줄곧 이혼한 부부의 혼인은 사후에 무효로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혼을 통해 이미 혼인관계가 해소돼 혼인무효 확인을 구할 실익이 없다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었다. 

이번 판결은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첫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혼 후 혼인무효 확인 청구를 포괄적 법률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인정해 당사자의 권리 구제 방법을 확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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