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피플] "'전문심리위원' 활용, 진술 모순 입증"…성폭력 무죄 이끈 김종민·차승민 평안 변호사

남가언 기자 입력 2024-03-13 12:09 수정 2024-03-19 10:40
법무법인 평안의 김종민 변호사왼쪽와 차승민 변호사오른쪽가 11일 서울 서초구에 교대역 인근에 있는 평안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법무법인 평안의 김종민 변호사(왼쪽)와 차승민 변호사(오른쪽)가 11일 서울 서초구에 교대역 인근에 있는 평안 사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에서 최근 '성인지 감수성'이 중요해졌지만 이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명확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리학, 의학 분야 등의 전문가 의견서를 통해 변호사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가려내는 데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종민·차승민 법무법인 평안 변호사는 최근 주거침입·준강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 변호를 맡아 유죄를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 받았다. A씨의 무죄를 이끌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전문심리위원 제도'였다. 전문심리위원 제도는 법원이 건축, 의료, 지적재산권, 환경 등 분쟁해결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건을 심리할 때,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법원 외부의 관련 전문가에게 설명이나 의견을 진술하게 하는 제도다. 

차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279조의2에 '전문심리위원의 참여' 규정이 있지만 실제로 이 제도가 있다는 점을 변호사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법정에서 변호사가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말로 주장하는 것보다 전문가 의견을 받는다면 억울한 사람, 무고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사건 맡아…사건 검토 중 진술의 모순점 발견

A씨 사건은 A씨가 항소하면서 김 변호사와 차 변호사가 맡게 됐다. A씨는 지인 B씨의 집에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B씨를 성폭행 한 혐의를 받았다. 1심 법원은 항거불능 상태의 B씨를 성폭행 한 혐의 등을 인정해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기록을 검토하고 여러 차례 법정에서 증인 신문 등을 거치면서 이들은 B씨의 진술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 

차 변호사는 "A씨와 B씨는 평소 친했고 이미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가졌던 사이였는데, A씨가 B씨 집에 들어간 경위를 두고도 B씨가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제가 술에 취했을 때 A씨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생각해보니 다같이 술자리를 가졌을 때 비밀번호를 알려준 것 같다', '비밀번호를 직접 알려줬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A씨가 비밀번호를 훔쳐봤다'고 하는 등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준강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B씨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어야 했는데, 그렇다면 과음으로 인한 기억 상실 현상인 '블랙아웃'이 아니라 블랙아웃에서 더 나아가 의식까지 상실하는 '패싱아웃'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며 "하지만 B씨는 '저항했다', '밀친 기억이 난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잘 난다'는 등 모순되는 진술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진술의 신빙성을 어떻게 주장할까 고민하다가 법관 출신인 김 변호사님이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잘 알고 있어 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했다"며 "법원에 심리학과 의학에 전문적 지식을 가진 전문심리위원을 불러달라고 요청했고, 법원에서 선정한 후보 2명 중 1명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고 말했다.
 
전문심리위원 활용 무죄 입증…방어권 보장 위해 제도 고지 필요
 
차승민 변호사가 전문심리위원 의견서를 바탕으로 PPT 변론을 펼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차승민 변호사가 전문심리위원 의견서를 바탕으로 PPT 변론을 펼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전문심리위원 선정 후 차 변호사는 그 동안의 사건 기록들과 질문하고자 하는 내용, 의견서 등을 담아 법원을 통해 전문심리위원에게 보냈다. 약 한 달 후 받아 본 전문심리위원 의견서는 22쪽에 달했다. 전문심리위원 의견서에는 △알코올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학술적 분석 △B씨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 △B씨의 주량과 음주습관 △B씨 진술의 신빙성 등에 대한 의견과 각주가 상세하게 쓰여 있었다.

 차 변호사는 "전문심리위원으로부터 B씨가 당시 '패싱아웃'이 아닌 '블랙아웃'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 친구들에게서 들은 얘기들로 인해 B씨의 진술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받았고, 무죄라는 결과를 받아내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전문위원이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이 확보돼야 제도를 활용했을 때 실효성이 있을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은 B씨가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당시의 상황, 증인신문에서의 B씨 진술 등이 충분히 많이 확보됐고 사실관계가 상세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제도를 활용했을 때 소득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차 변호사는 제도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법원이 제도에 대한 고지를 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전문심리위원이 소송절차에 참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법원에서 사전에 통지해 신청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소송 당사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원에서 제도를 의무적으로 고지하는 방법 등을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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