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계약서상 매매대금이 달리 기재된 경우의 대응법

남광진 변호사 입력 2021-09-18 06:00 수정 2022-06-01 21:50
  •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원 2021. 9. 1. 선고 2019가단809 판결

[사진=남광진 변호사 제공]

1. 들어가며

부동산 매매계약을 구두로 체결하였고 매매대금을 구두로 합의한 후, 실제 부동산매매계약서의 작성은 타방 당사자(또는 제3자)에게 위임하여 도장까지 건네주어 작성케 하였는데, 계약서 상의 매매대금이 실제로 합의한 금액과 다르게 작성되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2. 사실 관계

가. 원고와 피고는 2019. 8. 28. 경북 의성군 00면 00리 소재 논 650평 상당에 관하여 구두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 당시 매매대금을 평당 10만원에 하기로 구두로 합의하였다.

나. 같은 날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원고가 작성하였는데, 매매계약서에 매매대금은 구두로 합의된 65,000,000원이 아닌 35,000,000원(정확히는 한글로 “삼천오백만원”)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다. 피고는 자기 이름 외에는 한글을 읽고 씀에 서툴고, 지능이 다소 떨어진다.

라. 원고는 계약 체결일에 피고에게 4,000,0000원을 지급하였고, 2019. 9. 30. 피고를 피공탁자로 하여 매매대금 31,000,000원을 공탁하였다. 피고는 2019. 10. 14. 이의를 유보하고 공탁금 31,000,000원을 출급하였다.

마. 피고는 이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원고를 사문서위조등으로 형사고소 하였다. 검찰은 피고 및 참고인들의 진술이 일부 일관적이지 않아 신빙성 없음을 근거로 원고가 문서를 위조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하였다.

바. 원고는 임의로 이 부동산에 들어가 농사를 경작하기 시작했다.

사. 피고가 소유권이전 절차를 이행하지 않자, 원고는 “매매대금을 35,000,000원으로 정한 매매계약을 체결하였고, 계약체결 당일 피고에게 계약금 4,000,000원을 지급하였으며, 피고가 잔금 수령을 거부하여 잔금 31,000,000원을 변제공탁함으로써 매매대금의 지급을 모두 마쳤다. 따라서 피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에 따라 원고에게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매매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아. 피고는 필자를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위 사건을 대리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필자는 피고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원고와 피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구두로 매매대금을 평당 100,000원으로 합의하였으나, 원고는 피고가 문맹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 평당 100,000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아니하는 가격인 “삼천오백만원”으로 매매대금을 기재하였고, 당초 원고와 피고가 합의한 평당 100,000원으로 계산하면 정당한 매매대금은 65,000,000원이므로, 위 금액과 35,000,000원의 차액인 30,000,000원을 지급받을 때까지는 원고의 청구에 응할 수 없다(동시이행항변)“

자.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3. 판결 요지

가. 원고와 피고가 합의한 매매대금 액수에 관한 판단
1) 문서에 날인된 작성명의인의 인영이 그의 인장에 의하여 현출된 것이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인영의 진정성립, 즉 날인행위가 작성명의인의 의사에 기한 것임이 사실상 추정되고, 일단 인영의 진정성립이 추정되면 그 문서 전체의 진정성립이 추정되나, 위와 같은 추정은 날인행위가 작성명의인 이외의 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이 밝혀진 경우에는 깨어지는 것으로, 문서제출자는 그 날인행위가 작성명의인으로부터 위임받은 정당한 권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까지 증명할 책임이 있다(대법원 2011. 12. 8. 선고 2010다91947 판결 참조).
2) 위 법리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살피건대,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 피고의 인감도장이 날인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으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인영은 피고의 의사에 의하여 현출된 것으로 사실상 추정되고, 민사소송법 제329조에 따라 이 사건 매매계약서 전체의 진정성립이 추정된다. 그러나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구두로 매매대금에 관하여 합의를 한 사실, 이후 원고가 매매계약서 양식을 구입해 와 이 사건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사실, 원고는 피고로부터 인감도장을 건네받아 이를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 날인한 사실에 관하여는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다툼이 없고, 위 인정사실에다가 을 제1, 6, 7호증의 각 기재, 을 제8호증의 영상, 증인 홍길동, 임꺽정의 각 증언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할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들을 보태어 보면, 이 사건 매매계약서 중 매매대금 “삼천오백만원”이라고 기재된 부분이 피고의 진정한 의사에 기하여 작성되었다는 추정은 깨어졌다고 봄이 타당하고, 원고로서는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 매매대금을 “삼천오백만원”이라고 기재한 후 피고의 인감도장을 날인한 행위가 피고로부터 위임받은 정당한 권원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책임을 진다고 할 것인데, 피고가 원고에게 위와 같은 권한을 부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결국 이 사건 매매계약서 중 매매대금 “삼천오백만원” 부분은 그 진정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
① 원고와 피고 사이에 성립한 구두 합의의 내용 및 이 사건 매매계약서의 작성 경위에 관하여,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 당시 동석하였던 증인 홍길동, 임꺽정은 일치하여 ‘원고와 피고가 매매대금을 평당 100,000원으로 약정하는 것을 직접 들었고, 이 사건 매매계약서는 원고가 작성해 와 피고에게 교부하였으며, 피고는 문맹이고 지능이 다소 낮아 당시에는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 매매대금이 평당 100,000원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삼천오백만원”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며칠 후에 합의된 평당 가격과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 적힌 매매대금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취지로 각 증언하였다.
② 실제로 피고는 한글을 읽거나 쓰는 것에 서툰 것으로 보이고 지능도 다소 낮은 것으로 보이며, 원고는 오랜 기간 피고와 같은 마을에서 거주하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피고의 위와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③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는 한글로 “삼천오백만원”이라고만 기재되어 있고 아라비아 숫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아 위와 같이 한글을 잘 읽지 못하는 피고로서는 위 기재의 의미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 높고, 원고와 피고의 관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원고가 합의된 내용에 따라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으리라고 쉽게 신뢰하였을 가능성 역시 있어 보인다.
④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 당시 이 사건 토지 주변의 다른 토지들은 평당 100,000원 전후로 거래되고 있었고 이 사건 토지가 그에 비하여 낮은 가격으로 거래될 만한 특별한 사정은 없어 보이는데,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 기재된 매매대금 35,000,000원을 평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위와 같은 주변 시세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⑤ 원고와 피고가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할 당시 통화한 내용이 녹음되어 있는 녹음파일에는, 피고가 ‘형님 땅 좀 살라고 마음 있나?’, ‘한 엿마지기’, ‘1억 있나’, ‘내일 계약하자’, ‘아니 오늘 계약하자’고 말하고, 원고가 ‘1억 있지’, ‘살게’라고 말하는 내용이 녹음되어 있다.
3) 위와 같이 이 사건 매매계약서 중 매매대금 “삼천오백만원” 부분은 진정성립이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매매계약에 관한 증거로 쓸 수 없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증거들만으로는 원고와 피고가 매매대금을 35,000,000원으로 정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앞서 본 사실과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의 주장과 같이 원고와 피고는 매매대금을 평당 100,000원으로 정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나. 청구원인 및 동시이행항변에 관한 판단
원고는 피고에게 30,000,000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피고의 위 소유권이전등기절차 이행의무는 원고의 위 매매대금 지급의무와 동시이행의 관계에 있으므로, 피고의 동시이행항변은 이유 있다.

4. 판결의 의의

이 사건 매매계약서에는 분명히 피고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었다. 즉 문서에 날인된 인영이 피고의 도장이 맞다는 점에 대하여는 다툼이 없었다. 따라서 민사소송법에 따라 매매계약서 내용 전체는 피고의 진정한 의사에 의하여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매매계약서에 기재된 ‘매매대금 삼천오백만원’은 실제 피고의 의사인 것으로 인정된다.

위 추정을 번복시키기란 쉽지 않다. 피고로서는 실제 합의된 65,000,000원에서 30,000,000원이나 못 받고 부동산의 소유권을 넘겨주게 생긴 것이다.

이에 피고는 매매계약서 중 매매대금이 실제와 달리 기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그와 같이 달리 기재된 경위에 관하여 ‘매매계약서 작성을 원고에게 위임하면서 자신의 도장을 건네주었고, 원고가 매매대금을 다르게 기재한 후 피고의 도장을 날인하여 매매계약서를 작성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추정을 복멸시키기 위하여)

그런데 이미 관련 사문서위조등 형사사건이 무혐의 처분됨에 따라 피고에게 불리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형사사건 결과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편, 매매계약 체결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였고, 매매대금이 실제 합의금액과 다르다는 점에 대한 여러 직,간접 증거와 정황, 동기적 유인(가령, 매매계약 교섭 당시 대화 녹음, 피고가 이의를 유보하고 공탁금을 출급한 점, 이 사건 부동산 주변 토지의 시세, 이 사건 부동산의 상태와 가치, 피고가 문맹이고 지능이 낮은 점, 원,피고의 관계 등)을 제시하였다.

결국 법원은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매매계약서 상 피고의 도장은 피고가 아닌 원고에 의하여 날인된 것임이 밝혀졌으므로, 이 경우 매매계약서 중 ‘매매대금 삼천오백만원 부분’은 피고의 진정한 의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없고(즉 앞서의 추정이 깨어졌다!), 반대로 원고가 피고로부터 그와 같은 작성행위(매매대금을 삼천오백만원으로 하는 점)에 대한 정당한 권원을 위임받았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였으므로, 매매계약서 중 ‘매매대금 삼천오백만원 부분’은 인정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처분문서의 진정성립에 관한 법리를 올바르게 적용하였으며, 구체적 타당성과 사실관계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내린 합리적인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5. 나가며

처분문서란, 일정한 법적효과를 발생시키는 행위가 문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우의 문서를 의미한다. 소위 매매계약서, 약정서, 합의서, 확인서, 각서 등 실생활에서도 많이 접하는 문서이다. 이같은 처분문서는 민사소송에서 가장 유력한 증거로 인정된다.

앞서본 바와 같이 처분문서가 한번 작성되어 자신의 도장까지 날인되어 있는 경우, 그 문서에 기재된 내용을 뒤집기란 쉽지 않다.

민사소송법 및 확립된 판례에 따라 ‘문서에 날인된 도장의 인영(또는 서명)이 자신의 것이라고 판단되면, 그 문서 전체가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진정하게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를 ‘처분문서의 진정성립’이라고 하고, 이처럼 처분문서는 그 성립의 진정함이 인정되는 이상 법원은 ‘그 기재 내용을 부인할 만한 분명하고도 수긍할 수 있는 반증이 없는 한 처분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2. 15. 선고 2014다19776, 19783 판결 참조).

그리하여 통상 민사소송에서, “처분문서 인영의 동일성(문서제출자가 증명) → 인영의 진정성립 추정(사실상 추정) → 문서전체의 진정성립 추정(민사소송법 제358조 소정의 증거법칙적 추정) ↔ 추정을 복멸하기 위해, 작성명의자 아닌 자에 의한 날인 주장(작성명의자가 주장,증명) ↔ 반대로, 정당한 작성 권한 주장(문서제출자의 주장,증명)”의 공방구조가 된다.

따라서 처분문서 작성 시에는 대면하여 내용을 확인한 후 직접 도장을 날인하는 것이 옳다. 부득이 본 사건과 같이 상대방을 믿고 도장을 건네주어 계약서 작성을 하게 하는 경우에는, 추후 계약내용이 사실과 다름을 주장함에 있어 ‘문서 진정성립 추정을 번복’해야 하는데, 이는 유능한 변호사라도 쉽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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