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근로자 여부는 계약 형식보다 근로관계 실질이 판단 기준“

  • "위임 계약이라도 회사에 종속돼 업무 지휘 받았다면 근로자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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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18 23:44
수정 : 2020-05-1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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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이 아니라 위임계약을 맺은 채권추심원도 회사의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받고 근로의 대가로 임금을 받았다면 ‘종속적 지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채권추심원이란 은행, 종합금융회사, 카드사, 신용정보기관 등에서 채권자의 위임을 받아 위임채권의 대금을 회수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채권추심원 A씨 등이 신용정보회사 S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지급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고 지난 달 29일 밝혔다.

이번 판결은 “위임계약을 맺은 채권추심원도 회사로부터 구체적인 업무지휘를 받았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지난 2018년 7월 대법원 판결에 이어, “계약의 형식보다 근로관계의 실제 내용에 따라 근로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위임계약은 위임인으로부터 특정한 업무를 위임받은 수임인이 위임인의 간섭 없이 스스로 판단하여 맡은 업무를 처리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받는 계약이다. 때문에 위임인과 수임인은 법적인 지위가 대등하다는 점에서 사용자(회사)의 지휘와 감독을 받아 업무를 처리하는 일반적인 근로계약과 차이가 있다.

또 근로계약의 경우 계약 상대방인 근로자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법의 적용을 받는 반면, 위임계약을 체결한 상대방은 민법의 적용을 받는다. 원칙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라서다. 그 결과 위임인은 수임인에게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계약을 자유로이 해지할 수 있다.

그동안 일부 채권추심회사들은 위와 같은 차이점을 노려 채권추심원과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이들에 대한 퇴직금 지급을 피해왔다.

이번 판결은 업계의 이런 관행에 다시 한 번 제동을 건 것이다.

대법원은 그동안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위임계약인지보다 근로제공 관계의 실질이 근로제공자가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한다”면서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의 근무 시간과 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제공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근로제공자가 스스로 비품·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하게 할 수 있는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 졌고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는지 등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해서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해왔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 하였는지, 사회보장제도에 관하여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등의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아왔다.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뜻대로 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A씨 등은 S신용정보회사에서 채권 추심 업무 등을 해오다 퇴직하면서 회사에 퇴직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임계약이라는 이유로 거부하자, 각각 32,327,385원과 5,099,248원의 퇴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A씨 등이 “종속적인 지위에서 회사에 근로를 제공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S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가 S사와 체결한 계약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계약관계로 봄이 상당하다”며 1·2심과 달리 판단했다.

대법원은 S사가 A씨 등에게 자신이 배정받은 채권추심업무를 수행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내부전산관리 시스템에 입력하도록 하고, 각종 업무상 지시, 관리기준 설정, 실적관리 및 교육 등을 한 점을 근거로 “S사가 A씨 등에게 수행할 업무 내용을 정해주고, 그 업무수행에 관하여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였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 등이 근무시간이나 근무 장소에 대하여 S사의 엄격한 제한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는 잦은 외근이 이루어지는 채권추심업무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법원은 “S사가 A씨 등에게 사무집기를 제공하였으며, A씨 등으로서는 S사가 배정한 채권 추심업무를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할 수도 없었던 사정을 고려하면, A씨가 S사로부터 독립하여 사업을 영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리고 A씨 등이 S사로부터 본인의 채권회수액에 대한 일정률의 수수료를 매달 15일 정기적으로 지급 받았고, 이 외에도 자격증 수당, 장기 활동 수당, 매출 성장 수당 등을 추가로 지급받은 것에 대해 대법원은 “A씨 등이 제공한 근로의 양과 질에 대한 대가로서 임금 성격이 짙다”고 평가했다.

이번 재판에서 S사는 “A씨 등이 취업규칙을 적용받지 않았고,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S사로 부터 받은 수수료 등에 대해 근로소득세가 아닌 사업소득세를 납부하였고, 다른 사회보장제도에서 근로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점을 들어 A씨 등을 근로자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들은 사용자인 S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를 들어 A씨 등의 근로자성을 쉽사리 부정할 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런 점 등을 근거로 “계약 형식은 위임계약처럼 되어 있지만 그 실질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계약 관계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사진=이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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