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재판 지연'을 꼽으면서 법원 내에서 최우선 해결과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취임한 신임 대법관들이 재판 지연 해결방안으로 상고심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해 제도 도입이 재추진될 지 주목된다.
20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고심 사건 접수 수는 2022년 5만2480건으로 처음으로 5만건을 돌파했다.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은 모두 14명인데 이 중 재판 업무는 12명이 맡는점을 감안하면 사건 수가 상당한 편이다.
3심 제도의 취지는 한 사건에 대해 여러 판사들의 판단을 거쳐 혹시라도 간과하거나 오해한 사실이 있다면 상급심에서 이를 바로잡고 사건 당사자도 결과를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원심을 비난하거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의 상고가 줄을 이어 사법 자원이 낭비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실심'인 1·2심과 달리 대법원은 법리를 다투는 '법률심'이다. 원심에 법리를 잘못 해석한 사유 등이 있어야 대법원에서 원심을 뒤집을 수 있는데, 단순히 사실관계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식의 '묻지마 상고'가 상당수다.
'묻지마 상고'로 대법원에 몰리는 사건 수가 방대하다보니 대법원 입장에서도 전원합의체로 넘어가는 일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제외하고는 꼼꼼하게 사건을 검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시환 전 대법관도 '대법원 상고사건 처리의 실제 모습과 문제점' 논문에서 상고심 사건 적체로 인한 대법원 심리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은 바 있다.
박 전 대법관에 따르면 상고심 사건이 소부에 배당되면 재판연구관이 기록을 보고 처리 의견을 결정해 주심 대법관에게 올리는데, 주심 대법관은 대체로 재판연구관의 결론에 따라 처리한다. 주심 대법관이 기록과 자료를 꼼꼼하게 다 살펴볼 시간이 없다는 이유다. 박 전 대법관은 대법관들이 심지어 자신이 주심이 아닌 사건들은 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소부 합의에 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상고심사제'가 재판 지연 문제의 해결책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상고심사제는 법에 정해진 상고사유를 상고이유서에 포함하고 있는지를 고등법원 단계에서 사전 심사해 상고사유가 인정된 경우에 한해 본안 심리를 진행하는 방식을 말한다. 중요한 법적 쟁점이 있는 사건 심리에 대법관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해 1월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민사소송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상고심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입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실제 개정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올해 신임 대법관들이 임명되기 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상고심사제를 다시 언급하면서 제도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지난 2일 취임한 노경필·박영재 대법관은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 수를 고려할 때 대법관들이 모든 사건에 대해 하급심 판결과 같이 상세한 논증을 담은 판결서를 작성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장기적으로는 상고심에서 심리할 실질적인 사건을 선별하는 상고심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취임한 신숙희 대법관도 "실질적인 사건을 선별하는 상고심사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법조계 내부 공방도 재점화했다. 한 변호사는 "'묻지마 3심', '소송왕' 등으로 인해 상고심 사건이 급증하고 정작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가치가 있는 사건들이 묻히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상고심가제 도입 등 상고심 개혁을 통해 정말로 상고심 판단이 필요한 사람들의 재판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인 다른 변호사는 "대법원이 상고 허가를 한 경우에 한해 상고심 심의를 진행하는 방식인 '상고허가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됐다가 1990년 재판청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된 적이 있다"며 "(만일 상고심사제가 도입되고) 상고 사유를 대법원 재량으로 판단하게 되면 상고심사제가 오히려 국민들의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고를 막는 방안보다는 충실한 하급심 심리를 통해 사건 당사자들이 판결을 납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우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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