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최근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주목할 만한 판결이 또 하나 선고됐다. 삼성디스플레이 전·현직 근로자 3850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수원지법은 회사가 고정시간외수당(고정OT)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미지급 법정수당 약 40억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단했다(2020가합34526, 2021가합17689). 소가가 고액이라서 주목을 받은 걸까? 물론 40억 원이라는 액수는 해고나 징계같은 일반 노동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는 하다. 하지만 규모로 따지자면 지난해 11월 선고된 기아자동차 사건 2심(550억 원)이나 2023년 초 조정으로 종결된 현대중공업 사건(6300억 원) 쪽이 훨씬 크다.
이 사건에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대법원이 지난 2021년 같은 삼성 계열사인 삼성SDI 사건에서 고정OT를 통상임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음에도(2020다224739), 이 사건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노동사건을 꾸준히 다뤄 온 입장에서야 ‘사실관계가 달랐나보다’ 하고 말겠지만, 지금도 회사로부터 고정OT를 받고 있을 회사원들이나 기업 인사담당자가 보기에는 알쏭달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고정OT는 통상임금이라는 걸까 아니라는 걸까?
통상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금액’을 말한다(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 대법원은 여기에 ‘고정적으로 지급될 것’을 추가로 요구한다(2012다89399). 그래서 통상임금(소정근로의 대가)의 요건은 보통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의 세 가지로 설명된다. 임금이면 임금이고, 아니면 아닌 거지, 통상임금이라는 개념이 굳이 왜 필요하며 그 요건은 또 왜 이리 복잡할까?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본디 내가 회사로부터 얼마를 받고(임금) 몇 시간 동안 일할 것인지(소정근로시간)는 근로계약 체결 과정에서 반드시 합의돼야 할 필수적인 근로조건이다(근로기준법 제17조). 예컨대 한 달에 100시간을 일하고 1000만 원을 받기로 합의했다면, 나의 시간당 근로의 가치는 10만원이 된다(설명의 편의를 위해 주휴수당 등을 모두 무시한다). 따라서 내가 1시간의 연장근로를 했다면, 이에 대해서는 1.5배인 15만 원의 연장근로수당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다(근로기준법 제56조 제1항).
그런데 만일 위 1000만 원 중 100만 원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직원에게만 지급되는’ 가족수당이라면 어떨까? 이 돈은 부양비를 지원할 목적으로 회사 정책상 지급되는 금원일 뿐, 나의 ‘근로의 가치’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즉, 위 1000만 원은 소정근로의 대가 900만 원과 그렇지 않은 돈 100만 원으로 나누어지고, 나의 시간당 근로의 가치를 따지면 9만 원이 되므로, 1시간의 연장근로 시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는 연장근로수당은 15만 원이 아니라 13.5만 원이 되어야 한다.
사실관계를 조금 바꿔 위 100만원의 이름이 ‘가족수당’이기는 한데, 실제로는 부양가족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모두에게 지급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부양비를 지원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을 더 이상 인정받기 어렵다. 그리고 부양가족이 없는데도 지급되는 돈인 이상, 이는 ‘소정근로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주어지는 금원이라는 것 외에는 딱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이 때는 (가족수당이라는 명목에도 불구하고) 이 역시 나의 시간당 근로의 가치에 포함되고, 연장근로수당은 다시 시간당 15만 원으로 계산돼야 한다. 이처럼 각종 가산수당의 계산을 위해 해당 근로자가 본디 제공하는 근로의 가치, 즉 ‘소정근로의 대가’가 얼마인지를 따질 때 사용되는 개념이 바로 통상임금이다. 통상임금으로 인정받는 액수가 커질수록 각종 가산수당 역시 늘어나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회사와 근로자들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제 통상임금의 3가지 요건인 ① 정기성, ② 일률성, ③ 고정성으로 돌아와 보자. 이는 각각 특정 금원이 ①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정기성), ② 모두에게 지급되거나, 소정근로의 가치평가와 관련된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는 이상 해당자 모두에게 지급되는 것인지(일률성), ③ 임의의 날에 정해진 만큼 일을 하면 당연하고도 확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고정성)를 의미한다. 반대로 말하면, ① 일시적인 보너스처럼 지급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금원이나(정기성 없음), ② 앞서 언급한 가족수당처럼 소정근로의 가치평가와 무관한 조건에 따라 지급 여부가 달라지는 금원(일률성 없음), 혹은 ③ 성과급처럼 근무성적에 따라 지급여부와 지급액이 결정되는 금원(고정성 없음)은 ‘소정근로의 대가’라고 보기 어려워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용어가 낯설긴 하지만 위 기준에 따라 통상임금성 여부를 비교적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리고 가족수당의 예에서 보았듯 금원의 명목(이름)은 중요하지 않으니,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SDI 사건에서 똑같이 ‘고정OT’이라는 이름의 금원이 문제되었음에도 서로 다른 결론이 내려진 것 역시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통상임금성 판단은 그리 녹록치 않은 문제이다. 가령 현대중공업 사건(2016다7975)에서는 심급마다 명절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뒤집는 판단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1심 인정 → 2심 부정 → 3심 인정). 심지어 최근에는 오랜 기간 고정성 부정 요소로 인식되었던 ‘지급일 재직요건’에 대해, 그러한 조건 자체가 무효라거나, 설령 유효하더라도 고정성 인정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며 통상임금성을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여럿 등장했다. 해당 사건들은 모두 상고심 계속 중으로, 대표적인 예가 무려 6년 째 대법원에 계류 중인 세아베스틸 사건(2019다204876)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해에도 어김없이 한화시스템, 포스코 등 새로운 통상임금 분쟁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번 소송전이 벌어진 이상 상고심까지 끌고 가는 것이 마치 기본값처럼 여겨지고 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의 통상임금은 대법원이 일일이 정해주는 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사합의로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하면 될 문제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노사합의보다 근로기준법의 최저기준성이 우선한다는 것이 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2012다89399). 또 ‘설령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에 미달하더라도, 기왕의 합의가 있는 이상 그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한다’는 사용자의 항변 역시 지금은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2016다7975). 결국 근로기준법이 통상임금을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정작 근로기준법은 ‘정기성’, ‘일률성’이라는 요건만을 담은 고작 한 줄짜리 정의규정을(고정성은 조문에도 없다), 그것도 시행령에 맡겨둔 채 침묵하고 있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인 셈이다.
대법원이 나서야 비로소 내가 받을 수당이 얼마인지 알 수 있는 시스템을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나의 소정근로의 가치는 얼마인지, 연장근로를 하면 얼마의 가산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는지 정도는 누구나 쉽게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통상임금의 정의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제시하든, 그것이 어렵다면 기업의 임금체계를 보다 간명한 방향으로 개편하는 정책을 추진하든,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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