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술은 마셨지만 운전 안 해" 법원 판단은

이승재 아주로앤피 편집위원 입력 2023-10-02 06:00 수정 2023-10-04 09:48
  • 차 안에서 잠자다 수 미터 움직여 사고

  • 법원 "변속장치 실수로 건드렸을 가능성"

[아주로앤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술에 취한 채 차 안에서 잠을 자다 기어를 실수로 조작해 차량이 몇 미터 움직여 기물을 파손하는 사고를 냈다.
 
이를 음주운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법원은 이를 “아니다”라고 잇달아 판단해 주목된다.
 
이런 케이스에 해당하는 20대 남성에 대해 1심 법원에 이어 2심 법원도 무죄로 봤다.
 
최근 법조계와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대전지법 형사항소1부(나경선 부장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20대 남성 A씨의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9월 10일 새벽 5시쯤 충청남도 금산군의 한 식당에서 술을 마신 뒤 친구와 함께 식당 앞에 주차된 자신의 차에 올랐다.
 
만취한 A씨와 친구는 이내 차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다 잠을 깬 A씨는 근처에서 소변을 본 뒤 다시 탔다.
 
그런데 이때 차량 브레이크 등이 몇 차례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다 갑자기 꺼지면서 차가 수 미터 전진했다.
 
바로 앞 식당으로 차가 움직였고, 식당 앞에 놓여있던 화분과 에어컨 실외기 등을 들이받았다.
 
이런 영문을 모른 채 사고가 난 뒤에도 A씨는 친구와 계속 차 안에 잠을 잤다.
 
그런데 이날 오전 7시 30분쯤 인근을 지나던 행인이 사고가 난 모습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음주 측정을 한 결과 A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기준(0.08%)을 한참 넘는 0.130%로 나왔다.
 
경찰 수사를 받은 뒤 A씨는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A씨는 재판 내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는 “(새벽 시간이라) 대리운전이 잡히지 않아 차에서 친구와 잤고, 자다가 에어컨을 켜려고 시동을 걸었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운전한 기억은 없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차가 가게 앞 물건을 들이받은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은 음주운전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해당 도로가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이고 ▲실수로 기어 변속장치 등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으며 ▲피고인이 고의로 차량을 운전했다면 사고 이후 파손물을 그대로 방치하고 계속 잠을 잤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재판부는 특히 지난 2004년 4월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의도 없이 자동변속장치를 건드려 차가 움직이거나, 불안전한 주차 상태와 도로 여건 등으로 차가 움직이게 된 경우는 운전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었다.
 
1심 무죄 선고 후 검사는 판결에 사실 오인의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다.
 
그러나 2심도 원심판결이 정당하다고 보고 이를 기각했다.

한 변호사는 "'술을 마셨지만 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말이 들어맞는 경우가 이처럼 간혹 있다. 그러나 음주 후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면 안된다. 이럴 경우 1미터만 움직여도 음주운전에 해당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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