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끼임 사고①]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비극

  • 동료 직원 "안전 펜스 하나만 설치돼 있었어도"
  • SPL 평택 공장, 업무상 재해 중 40.5%가 끼임 사고
  • SPC, 3년간 '일자리으뜸기업'…정기근로감독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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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21 17:26
수정 : 2022-10-2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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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추모 헌화.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최근 20대 근로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경찰이 강제 수사에 나선 가운데 안전 조치만 제대로 됐더라도 막을 수 있었던 사고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 오전 6시 20분께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근로자 A씨(23)가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스 교반기를 가동하던 중 기계 안으로 상반신이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는 A씨를 포함한 다른 직원 1명이 더 있었으나 해당 직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배합기 기계에 몸이 낀 채 발견된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측 안전 불감증이 사고 초래했다
SPL 제빵공장 근로자 사망 사고와 관련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회사 안전 책임자가 형사 입건됐다. 평택 경찰서는 18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평택 SPL 제빵공장 관계자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사고가 난 교반기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다. 업계에 따르면 샌드위치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요네즈(80%)와 물·소금·설탕 등 배합물(20%)을 교반기에 넣어 섞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계의 최대 용량은 100㎏으로 산술적으로 한꺼번에 마요네즈 80㎏과 배합물 20㎏을 넣을 수 있다.
 
근로자는 작업 시 개당 10㎏짜리 봉지로 소분된 마요네즈를 차례로 넣고 배합물을 그릇에 넣어 섞은 뒤 교반기에 투입하는 식으로 작업한다. 이 과정에서 교반기는 위험 상황을 대비해 근로자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다. 하지만 내용물이 제대로 섞이지 않아 근로자가 반죽물을 건져 내야 하는 등 위험한 상황도 나온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근무 방침도 지적 대상이다. 노조 측은 근무는 2인 1조 체계로 이뤄져야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해야 해서 같은 조 근무라고 볼 수 없었고 직원 대상 안전교육도 당사자의 서명만 받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가 난 교반기에 끼임이 감지되면 작동을 멈추는 자동방호장치가 부착돼 있지 않고 안전 펜스조차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해당 공장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도 “안전 펜스 하나만 설치됐어도 동료는 아직 우리 곁에 있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20대 근무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SPL 평택공장 내부. 17일 SPL 평택공장에서 한 직원이 이틀 전 20대 근무자 사망사고 발생한 사고 기계 옆 같은 기종의 소스 교반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끼임방지장치 없어도 ‘안전하다’ 인증
평택 SPC 계열 SPL 제빵공장이 끼임 방지장치를 설치하지 않고도 산업안전공단으로부터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MS) 인증을 올해까지 연장해 받아온 것이 드러났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하 안전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통해 사고가 발생한 SPL 평택공장이 2016년 최초로 안전경영사업장 인증을 받은 후 2019년과 올해 5월 두 차례 연장까지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안전경영사업장 인증 제도는 안전공단이 사업장으로부터 자율적으로 인증 신청을 받아 심사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사업장에 인증서를 수여하는 방식으로 부여된다.
 
문제는 SPL이 각종 사고가 꾸준히 발생했음에도 해당 인증을 받은 것이다. SPL 평택공장의 업무상 재해 중 40.5%가 끼임 사고임에도 안전공단이 끼임사고 방지장치(인터록) 설치 여부를 제대로 심사하지 않고 안전 인증을 내준 것이다.
 
해당 사업장에서는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총 37명의 사고 재해자가 발생했고 그중 가장 많은 15명이 끼임 사고로 인한 부상이었다.
 
이 의원실 측은 이번 사고가 반죽기계에서 발생한 점을 들며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인 산업안전보건 규칙을 위반했을 소지도 크다고 바라봤다.
 
해당 규칙 제87조 9항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분쇄기 등의 개구부로부터 가동 부분에 접촉함으로써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덮개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당시 사고가 발생한 반죽 기계에는 덮개 등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87조(원동기·회전축 등의 위험 방지) 9항. 사업주는 근로자가 분쇄기 등의 개구부로부터 가동 부분에 접촉함으로써 위해(危害)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 덮개 또는 울 등을 설치하여야 한다.

이번 사고로 드러난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장에 대한 지적과 달리 평가도 받았다. SPC계열 SPL평택공장은 2020년 정부의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도 선정돼 최근 3년간 고용노동부의 정기근로감독도 면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자리 으뜸기업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 분위기 조성을 위해 2010년 만들어진 제도다. 선정 기업은 신용 평가·금리 우대, 세무조사 유예, 정기 근로감독 면제 등 212개의 행정·재정적 지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가 발생하면서 근로감독이 면제된 것이 산업재해 예방의 사각지대로 작용됐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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