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년…법으로 본 하이라이트

  • 1992년 8월 24일 노태우 정부 중국과 수교
  • 1983년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 공동 대응으로 '물꼬'
  • 중국, 한국의 마늘 수입 규제에 휴대폰 등 수입 금지 조치
  • 불법 어선문제 해결 위해 한·중 어업협정 체결
  • 한국, THAAD 배치 후 중국의 한한령 조치로 최대 15조원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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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8-23 08:00
수정 : 2022-08-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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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중국 칭다오시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오랜 비정상적인 관계를 청산하고···.”
 
1992년 8월 노태우 대통령은 중국보다는 중공이라는 호칭이 더 친숙한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과 수교한다고 알리며 이렇게 말했다. 8월 24일은 한국이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한 지 정확히 30년 된 날이다.
 
한국은 중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2021년 기준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국으로 전체 수출액 중 25.3%를 차지한다. 2위인 미국이 14.9%임을 고려하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 비중은 매우 크다.
 
중국과 관계를 맺은 30년 동안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늘파동, 동북공정, 불법조업 어선 문제, 한한령 등은 한·중 관계를 벌려 놓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헌법, 항공기운항안전법, 관세법 등 많은 법률적 이슈가 있었다.
 
아주로앤피는 한·중 수교 30년을 맞아 양국 간에 있었던 법적 이슈 다섯 장면을 정리했다.
 

강원도 춘천시 옛 캠프 페이지 [사진=연합뉴스]

◆'물꼬' 1983년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
한국전쟁 이후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외교 접촉을 하게 된 계기는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이다.
 
1983년 5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의 호커 시들리 트라이던트 2E 여객기는 대만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하이재킹)됐다가 강원도 춘천시 근화동 미군 기지인 캠프 페이지에 불시착했다.
 
원래 이 여객기는 랴오닝성 선양 공항을 출발해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으로 가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여객기는 6명에게 납치당했고, 납치범들은 기장에게 중화민국(대만)으로 방향을 돌리라고 강요했다.
 
기장과 승무원들은 당초 납치범들을 속이고 중국 '혈맹국'인 북한 평양에 착륙하려 했지만 납치범들은 이를 알아차렸다. 이후 이들은 서울로 방향을 틀게 했고 중국과 적대국인 대한민국 상공으로 들어온다. 우리 공군의 인도하에 여객기는 강원도 춘천 캠프 페이지에 착륙했다.
 
중국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건 당일 교섭 대표단을 파견할 테니 착륙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하고 약속대로 대표단을 보냈다. 3일간 협상한 끝에 5월 10일 합의안이 도출됐다. 당시 한국 측 대표 공노명 외무부 제1차관보와 중국 대표 선투 민항총국 국장은 ‘승객과 승무원, 항공기를 조속히 송환하며, 당장 이동하기 어려운 부상자는 서울에서 치료를 받은 후 여행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다음 바로 출국시킬 것’에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날은 제61주년 어린이날이었고, 공휴일을 맞아 산책을 나온 많은 춘천 시민들이 놀랐다고 한다.
 
납치범들은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에서 조사를 받았고 승객들은 당시 최고급에 속하는 서울 광진구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 숙박하며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을 구경하기도 했다. 승객들은 출국 때 삼성전자 컬러TV를 선물로 받았다.

납치범들은 한국 법에 따라 처벌받았다. 그들은 항공기운항안전법(현 항공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항공기운항안전법 제8조(항공기 납치죄) 1항 폭력 또는 협박 기타의 방법으로 운항 중인 항공기를 납치한 자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2항 제1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그들은 후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대만으로 강제 추방됐다.
 

1992년 8월 24일 이상옥 외무부 장관(왼쪽)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KBS뉴스]

◆1992년 한·중 정식 수교
1992년 8월 한국 정부는 적대국이었던 중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동안 한국에 중국은 적대국 중 하나였다. 특히 중국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도와 개입했기 때문에 양 국가 간 감정은 좋지 못했다. 한국은 중국을 국가 명칭이 아니라 정당 명칭인 ‘중공(중국공산당)’으로 불렀다는 점에서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났다.
 
그러나 1983년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에 한·중 양국이 공동으로 대응하며 한국과 중국 관계도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열린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이례적으로 중국이 참여하면서 더욱 호전됐다.
 
1989년 12월 미국과 소련이 몰타정상회의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했고, 1989년 5월 소련 최고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중국 방문으로 중·소 관계가 정상화됐다. 또 1990년 9월 한·소 수교가 수립되면서 한·중 수교도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1992년 이상옥 한국 외무장관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베이징 영빈관에서 한·중 선린우호 협력관계에 합의하면서 공식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국회 동의가 있었다. 

헌법 제60조 1항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 [사진=아주경제 DB]

다음은 한·중이 수교하며 서명한 공동성명문이다.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간의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
 
1.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국민의 이익과 염원에 부응하여 1992년 8월 24일부로 상호 승인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결정하였다.
 
2.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유엔헌장의 원칙들과 주권 및 영토보전의 상호존중, 상호 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과 호혜, 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에 합의한다.
 
3. 대한민국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하며,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4.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양국 간의 수교가 한반도 정세의 완화와 안정,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5.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한반도가 조기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이 한민족의 염원임을 존중하고,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
 
6.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61년의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따라 각자의 수도에 상대방의 대사관 개설과 공무수행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고 빠른 시일 내에 대사를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한다.
1992년 8월 24일 북경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여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대표하여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마늘. [사진=연합뉴스]

◆2000년 마늘이 불러온 갈등 
2000년 마늘은 한·중 사이를 갈라놨다.
 
2000년 6월 한국은 중국산 마늘에 대한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올리는 세이프가드(긴급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생산량 중 95% 이상을 한국에 수출하는 중국 산둥성 마늘 재배 농가들에는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세이프가드 조치는 관세법 제68조에 규정돼 있다.

관세법 제68조(농림축산물에 대한 특별긴급관세) 1항 제73조에 따라 국내외 가격차에 상당한 율로 양허한 농림축산물의 수입물량이 급증하거나 수입가격이 하락하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양허한 세율을 초과하여 관세(이하 “특별긴급관세”라 한다)를 부과할 수 있다. 2항 특별긴급관세를 부과하여야 하는 대상 물품, 세율, 적용시한, 수량 등은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한다.
 
한국 정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데에는 당시 마늘 수입 급증으로 국내 마늘 재배 농가들이 어려움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마늘 수입량은 1998년 5400톤에서 1999년 2만2600톤으로 4배 이상 폭증했다. 반면에 1997년 6만톤이었던 농가의 마늘 재고량은 1999년 19만톤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고 보복 조치에 나섰다. 약 5억 달러 규모의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을 중단하는 초강경 조처를 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 중국산 마늘 3만톤을 다시 수입하는 대신 중국 정부의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 중단 조치를 풀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한편 마늘 문제는 2022년 현재에도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SBS 보도에 따르면 국내 마늘 재배 농가들이 올해 초 들여온 중국산 마늘이 수확한 지 1년 넘도록 썩지 않는다며 중국에서 어떤 처리를 한 것인지 정부 조사가 필요하다고 나선 것이다.
 

해경 감시를 피해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 [사진=연합뉴스]

◆"불법 어선 막아라"···2001년 한·중 어업협정
“저 수평선을 넘어오는 중국 어선들을 보면 피가 끓습니다. 이 바다가 누구의 바다인데···.”
 
2011년 12월 이 말을 남긴 이청호 경사가 한국 수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8년 박경조 경위 살해사건 등 중국 어선이 한국 해양경찰을 살해한 일은 과거에도 끊이지 않았다.
 
이렇듯 중국 불법어선 문제는 한·중 간 갈등을 심화시켜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한국과 중국은 어업공동위원회를 개최한다.
 
지난해 11월 19일에도 해양수산부는 제21차 한·중 어업공동위원회 본회담을 열고 어업 협상을 최종 타결했다고 밝혔다.
 
이 협상에 따라 불법 어구 사용 적발 사례가 많았던 중국 유망어선 50척과 이들의 불법 조업을 지원하는 어획물운반선 2척이 감축된다. 또 양국은 동해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에서 불법조업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도 함께 논의했다.
 
1994년 국제연합 해양법협약이 발효된 뒤 1996년 한국·중국·일본 3국이 이를 비준했다. 이에 따라 진행된 일련의 협상 끝에 2000년 8월 정식 서명을 거쳤다.

앞서 언급된 헌법 제60조에 따라 한·중 어업협정은 국회 비준 동의 사안이다. 당시 이를 두고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한나라당 간에 의견이 달랐다.

권오을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가 당연한 권리인 기타 일부 수역의 남쪽한계선을 북위 29도45분으로 확장하는 대가로 양쯔강 하구 동쪽 수역에서 우리 측 조업권 제한을 받아들이려 하는데 이는 절대 안 된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 정장선 의원과 김영진 의원은 "협정 발효 시 우리나라는 현재보다 연간 2만7000t, 3100억원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이라며 빠른 처리를 요청했다.

국회 내 협의 끝에 2001년 4월 한·중 어업협정이 체결됐다.
 
한·중 어업협정에서는 △잠정조치수역 설정 △발효 후 4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편입되는 과도수역 설정 △구조 및 긴급피난 시 상호 협조 △어업공동위원회 설치 등이 채택됐다.
 

지난 12일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인근에서 민주노총 관계자 250여 명이 사드 기지 반대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진행 중'인 2016 사드 배치 논란
2010년대 들어 한국에서 반중 감정이 짙어지게 된 데에는 주한미군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설치 파동의 영향이 크다.
 
한국 국방부는 2016년 7월 그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THAAD’ 배치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당시 “북한의 핵·WMD와 탄도미사일 위협에서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미 동맹의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로서 주한미군에 THAAD 체계를 배치하기로 한·미 동맹 차원에서 결정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중국 정부는 발표 직후 강력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곧바로 “미국과 한국은 중국을 포함한 관계 국가들의 명확한 반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며 “중국은 이에 대해 강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 외교부는 “중국은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 진행을 중단하기를 촉구한다”며 “지역 형세를 복잡하게 하거나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훼손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이후 중국 정부는 경제 보복 조치와 한한령을 내렸다. THAAD 체계의 경상북도 성주군 배치가 확정되자 중국 정부는 한한령을 내려 한국 드라마와 한국 연예인 출연 금지 등 조치를 단행했다. 2017년 2월 THAAD 부지 계약이 체결되자 중국 국민들 사이에서 한국 제품 불매 운동이 퍼지기도 했다.
 
국내 피해는 막심했다. 2017년 5월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중국 정부의 한국 여행 제한 조치가 국내 소비재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보복 조치로 한국은 최대 15조원에 이르는 피해가 발생했다.

한편 2016년 THAAD 배치에 대한 국회 동의 필요성을 두고 여야 간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된 헌법 제60조를 보면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에 관한 조약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당시 국회 입법조사처와 야당은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본 반면 황교안 권한대행과 외교부는 "THAAD 배치는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 아니다"며 팽팽하게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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