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콘텐츠] 무죄를 단죄한 히어로, 아빠…'내 딸의 살인자'

  • 딸의 살인범을 30년간 추적한 아버지의 이야기
  • 진상규명에 미흡했던 법원 등 공권력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자력구제의 정당성을 묻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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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30 06:00
수정 : 2022-08-0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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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내 딸의 살인자' [사진=넷플릭스]

◆‘자경단’의 유혹이 가득한 세상
배트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아이언맨…‘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성하며 극장가는 물론 대중문화 전반을 주름잡는 ‘슈퍼히어로’들은 어떤 존재인가. 다양한 존재 이유와 기원이 있다지만 그들 대부분의 공통분모는 현대 시민사회와 국가 제도의 틀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인류가 쌓아 올린 수천 년 역사에서 비록 불완전하지만 가장 진보된 사회제도 중 하나인 법에 기반을 둔 질서를 가뿐히 뛰어넘는 ‘규격 외’ 존재이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들은 (비록 이것저것 그늘은 있지만) 엄청나게 부유하거나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비범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구구절절한 사법제도와 공권력 발동 절차로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을 일종의 ‘자원봉사’로 담당하는 행위자로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갖춘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에게 위임받은 강제력의 유일 행위자가 되어야 할 정부 기관과는 양립할 수 없는 성격을 근본적으로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개 이들의 활약이 부각되면서 나름의 갈등을 겪고 이후 해소과정을 거치면서 몇 가지 유형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첫 번째는 공권력을 보조하는 좀 ‘특별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정보기관이나 경찰과 핫라인을 갖추고 정부의 요청으로 출동하고 그 한계 범위 내에서 활동한다. 활약은 화려하지만, 현실에서라면 자율방범대 역할을 지역사회에서 혼자 수행하는 셈이다.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해당 지역의 수호자이자 스타로 활약하는 히어로들의 결말이다. 고담 시티의 뒷골목 문제를 해결하는 배트맨이나 생업을 갖고 있으면서 파트타임으로 활동하는 스파이더맨이 대표적이다.

두 번째는 공권력의 일원으로 ‘공무원’이 되는 길이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세계관 안에서 현실의 UN 격인 세계 안전보장이사회 휘하의 국제 안보 기관 ‘쉴드’ 소속 슈퍼히어로들이나 <왓치맨>에서 미국 정부 직속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소수의 왓치맨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부 조직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과거의 동료들과 적대관계가 되기도 한다. 이런 설정에서 대개 국가권력은 히어로들을 불편하게 여기고 통제하려 한다. 히어로들은 입장이 나뉘어 정부 요원이 되거나 무정부주의-반체제적 성격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의 경로를 택한다.

앨런 무어의 <왓치맨>은 우주로 뻗어나가던 히어로 장르를 다시 현실의 곁으로 돌려놓은 기념비적 작품이다. 여기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은 바로 ‘누가 감시자를 감시하는가?’이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미국에선 뿌리 깊은 자경단-민병대의 사적 정의와 실천이 가져올 사회문제를 히어로 장르에서 근본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한편으론 공권력의 히어로 통제를 옹호하는 주장으로 읽히지만 그렇게 정부에 포섭된 히어로들까지 포함할 경우 과연 시민사회가 억압적 정부가 들어설 경우 제어할 수 있는가의 영역까지 나아가는 질문이다. 그저 그들이 초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용인될 성격의 문제는 한참 벗어난 일이다.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내 딸의 살인자' [사진=넷플릭스]

◆30년의 세월 동안 계속된 ‘필사의 추적’
1982년 7월 10일의 일이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국경과 가까운 독일 소도시, 지역사회에서 인망 높은 심장 전문의 디터 크롬바흐의 집에서 재혼한 부인 다니엘 고냉이 데려온 의붓딸인 14살 칼링카가 급사한다. 양부인 디터 크롬바흐는 칼링카가 일사병 증세를 보이다 급사했다고 주장한다. 사망 전후 자신이 양딸에게 주사를 놓았지만, 응급조치의 일환이란 것이다. 의사의 부인이자 사망자의 친모 또한 별다른 반대의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부검 결과와 뒤처리 과정에서 수상한 일들이 속속 발견된다. 의사의 진술과 의료인으로서의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그의 미심쩍은 사건 발생 전후 행적이 드러난다. 하지만 보존되어야 할 증거가 사라지고 부검확인서 내용도 불충분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특별한 문제점이 없다는 식으로 일사천리로 장례가 진행된다.

뒤늦게 딸의 죽음을 접한 소녀의 친부, 프랑스인 회계사 앙드레 밤베르스키는 석연찮은 죽음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 일사병이라 하지만 프랑스 남부의 땡볕에도 씩씩하게 잘 뛰어놀던 한창 나이 청소년이 상대적으로 더 온화한 날씨에서 갑자기 일사병으로 죽었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겨우 전달받은 부검확인서에 부검의들은 서면 소견을 거부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가득했다. 앙드레는 양부의 수상한 행적에 주목하고 그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하지만 명망 높은 의사라는 사회적 신분, 아내 및 다른 자식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등에 업은 크롬바흐에 비해 앙드레는 불리한 점을 안고 있었다. 그가 전처와의 이혼 과정에서 전 부인 다니엘과 법정 다툼을 벌이면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정황 때문이다. 앙드레의 전 부인은 결혼생활 중에 크롬바흐와 불륜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원한을 품은 앙드레가 크롬바흐를 음해한다는 것으로 상대방은 받아쳤다.

앙드레는 결국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고, 독일 법원은 크롬바흐에게 무죄판결을 내린다. 많은 이들이 앙드레의 편집증으로 인해 생사람 잡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디터 크롬바흐와 다니엘 고냉의 변호사들은 그런 정황을 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신랄하게 개진한다.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내 딸의 살인자' [사진=넷플릭스]

앙드레는 재판에 패소했지만, 자신의 심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국경을 넘어 꾸준히 조사와 홍보를 이어가며 작은 증거라도 부지런히 수집한다. 하나둘 미심쩍은 부분이 추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크롬바흐는 칼링카와 비슷한 연령대의 미성년자 성추행 전과로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훗날 의사면허를 정지당한다. 그러나 이미 한번 내려진 판결을 뒤엎는다는 것은 어느 나라 사법제도에서도 어지간히 힘든 법이다. 독일 법원은 결정적으로 상황을 뒤집어놓을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자신들의 판결을 번복할 의사라곤 추호도 없어 보였다.

앙드레는 궁리 끝에 묘책을 찾아낸다. 고인이 된 칼링카는 프랑스 국적을 유지했었기 때문에 프랑스 법원에 해당 사건에 관한 재판 청구가 가능했던 것이다. 관련해서 고소가 진행되지만, 크롬바흐는 대리인으로 선임한 변호사만 보낼 뿐, 프랑스 법정에서 진행되는 재판 출석을 거부한다.

양국 간 외교 문제가 겹치다 보니 프랑스 정부도 크롬바흐 소환에 미온적이다. 독일 정부는 당연히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협조할 턱이 없다. 소송은 정지, 하염없이 시간만 흐른다. 하지만 집념의 사나이 앙드레는 무한동력이라도 장착한 듯 계속 증거 보강에 매진한다. 독일 저널리스트와 접촉해 협력을 받기도 하면서 그는 자택에 온갖 자료를 산처럼 쌓아 올린다. 그러나 당사자 출석 없이는 그의 염원이 이뤄지는 건 요원해 보인다.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내 딸의 살인자' [사진=넷플릭스]

◆현실의 ‘다크 히어로’가 된 아빠와 협객
어느새 딸의 죽음 이후 30년이 흘렀다. 한 세대 순환이 이뤄지는 시간이 흐른 것이다. 프랑스 법원에서도 십여 년째 방치된 상태로 묶여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마침내 앙드레는 자력구제를 기획한다.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서 크롬바흐를 프랑스로 납치해와 사적 복수 대신 법정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프랑스 법정 출두를 거부해온 이력 때문에 크롬바흐에게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라는 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실행에 나선다면 납치행위 때문에 그의 의도가 실행될 수 없다. 누군가가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누가 남의 사정에 그런 모험을 걸 것인가?

하지만 간절한 소망에 응답했는지 그의 ‘작전’을 도울 현대판 ‘협객’이 마침내 앙드레에게 연락한다. 그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대가 없이 그를 돕겠다고 나선다. 결국 그 협객이 고용한 러시아 갱들이 크롬바흐를 납치해 프랑스 법원 앞에 그를 데려다 놓는다. 언론의 비상한 관심과 함께 십여 년간 답보 상태이던 재판이 재개된다. 다시 수년간 법정 공방은 이어진다.

크롬바흐의 변호인들은 사적 구제의 위법성을 지적한다. 범죄사실이 입증되거나 현행범이 아닌 상황에서 공권력이 아닌 개인의 심증만으로 폭력적 수단을 이용한 행위는 당연히 불법이고 그가 프랑스에 억류된 것을 풀어야 한다는 제기다.

변호인들은 반복해서 앙드레의 도착적 복수심에 의해 폭력적 납치범죄가 이뤄진 것이 해당 사건의 본질이라는 프레임을 구성한다. 크롬바흐의 살인을 증명할 증거가 불충분함을 부각하며 무효화시키려는 원고와 추가로 수집한 증거 및 증인들을 대동한 피고 양측은 지루한 대치를 이어간다.

앙드레는 결국 경찰에 체포된 후 납치 교사로 기소당한다. 그의 협력자가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앙드레는 연관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대중의 법 감정은 앙드레의 행동을 ‘의거’로 칭송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소송은 안갯속으로 흐른다.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내 딸의 살인자' [사진=넷플릭스]

하지만 반전 1차, 30년 세월 동안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나 싶은 상황이 발생했다. 독일 언론인들이 회고하듯 사건 발생 당시인 1980년대 초반에는 유럽 사회 전반, 특히 독일에서는 성폭력에 관대하고 엘리트 계층에 대한 신뢰와 봐주기가 당연시되는 ‘그들만의 리그’가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이 제법 변화된 이후 속속 어릴 적 크롬바흐에게 성폭행 피해를 겪은 이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대에 서기 시작한다. 무려 확인된 것만 16명에, 수법도 칼링카가 당했던 주사로 인한 심신 마비 형태로 동일했다는 사실이 추가된다.

여기에서 최대 반전이 일어난다. 한사코 크롬바흐를 신뢰했던 부인 다니엘이 생각을 바꾼 것이다. 자상한 남편으로만 알았던 크롬바흐의 가면 속 모습에 충격에 휩싸여 자신의 당시 상황 진술을 법정에서 번복하기에 이른다.

결국 크롬바흐에게 법정에서 성폭력 의도로 피해자에게 약물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가 적용된다. 그는 폭행에 의한 과실치사 판정을 받아 15년형에 처한다. 이후 건강 악화로 2020년 2월 가석방 후 반년 만에 죽었다.

한편 크롬바흐 납치 관련해 앙드레는 집행유예 1년, 협력자는 실형 1년을 받았다. 협력자가 출소할 때 앙드레가 현장에서 그를 얼싸안고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진다. 협력자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인터뷰한다. 마무리로 카메라는 30년의 세월을 외롭게 정의 구현을 위해 싸웠던 앙드레에게 소회를 묻고 바람을 듣는다.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내 딸의 살인자' [사진=넷플릭스]

◆한국 사회에 던지는 질문, '자력구제'
영화의 전개는 시간 순서에 따른 전형적인 연대기 구조다.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아주 평범한 구성이라 하겠다. 전형적인 범죄수사물 형식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① 사건이 발생한다 ⇒ ② 주변 정황을 해설한다 ⇒ ③ 수사가 진행된다 ⇒ ④ 실마리가 풀리고 사건이 해결된다 ⇒ ⑤ 상황 해설과 후일담으로 마무리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이 영화에서도 동일하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그런 충분히 예측 가능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솜방망이 처벌을 듣고 볼 때마다 사법 불신에 빠지곤 한다. 그런 데에서 오는 분노와 권선징악의 희열을 주인공 앙드레의 집념이 승리하는 과정을 목격함으로써 얻는 카타르시스는 절대 작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눈물겨운 부성애가 결합하니 더할 나위 없는 드라마가 완성된다.

그러나 매사를 이렇게 자력구제에 기댈 순 없는 문제다. 물론 앙드레의 집념이 올바른 결론으로 확인되었지만, 법 집행체계에 몸담은 이들로선 본 작품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측면이 다분하다. 크롬바흐의 변호인들은 일종의 여론 재판이 용납되는 위험성을 개탄한다. ‘형벌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그래서 해당 사안의 감회와는 별개로 본 작품은 형사 정책상 꽤 다양한 쟁점을 드러내고 있다.
 

범죄 실화 다큐멘터리 '내 딸의 살인자' [사진=넷플릭스]

영화에서 분노 유발 포인트라 할 기득권층에 대한 상대적으로 관대한 처벌 사례나 공정하지 못한 수사과정은 한국사회에서도 자주 지적되는 문제이고 반드시 음모론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확인되고 있다. 공권력과 사법제도가 공정성을 사회구성원들에게 신뢰받지 못한다면 언제든 자경단의 그림자가 드리울 여지는 충분하다.

앙드레의 협조자인 오스트리아의 협객이 주장하는 논리는 감성적인 동시에 철저히 ‘복수법’ 적이다. 발칸반도나 카프카스 산악지역 주민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밴데타’ 논리의 전형이다. 근대사법제도가 정착된 상황에서 용인되긴 힘든 구석이다. 그래서 앙드레와 조력자들의 노력에 대한 경외와 별개로 영화는 숱한 숙제를 안긴다.

물론 논리적으로는 우려되는 부분이 한둘이 아닐지언정, 심정적으로는 주인공 앙드레에게 마음이 기울어지는 게 사실이다. 아울러 성폭력 피해자들이 더는 침묵하지 않게 된 시대 변화가 법제도 논쟁과 다른 측면에서 사건 해결 관련 결정타로 작용하는 건 법제도 측면에서도 시사점이 크다.

법 제도의 권위를 신성시하기보단 평범한 시민들의 정서에 안심과 신뢰를 가져다줄 수 있도록 법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눈물을 이해할 때 진정한 법치가 이룩될 때다. ‘법과 원칙’을 강조할 때 늘 따라붙어야 할 과제를 떠올리게 하는 최신 다큐멘터리 영화다.
 
[작품 정보]
 
내 딸의 살인자 My Daughter's Killer, L'assassin de ma fille
2022|프랑스|다큐멘터리·범죄
2022. 07. 12. 공개|83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앙투안 타생
출연 앙드레 밤베르스키, 디터 크롬바흐, 다니엘 고냉
제작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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