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콘텐츠]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김상목 콘텐츠평론가·영화제 프로그래머 입력 2022-06-05 09:00 수정 2022-08-16 08:59
  • 디지털 성범죄라는 위험한 신세계에 맞선 이들의 기록

영화 '사이버 지옥' 웹 포스터 [사진 = '사이버 지옥' 웹 포스터]

[아주로앤피] 

◆함무라비 법전을 다시 보다
기원전 18세기에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은 성문법 초창기의 대표적인 기록이다.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상징되는 엄벌주의 원칙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당대 시대상을 놓고 보자면 상당히 합리적인 내용이 많다. 특히 부족사회에서 도시국가로 진입한 지 오래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남아 있던 ‘사적 제재’를 법에 의한 형벌로 대체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게 왜 대단하냐면 명문화된 법이 없을 때는 상황에 따라 사소한 죄가 과도한 대가를, 그 반대로 중한 죄가 힘이나 권력에 의해 무마되는 경우가 빈번했던 것을 초보적으로나마 바로잡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기준 또한 엄벌보다는 ‘동해보복(同害報復·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수준으로 가해자에게 보복한다는 뜻)의 원칙’이 더 온당한 해석이다. 고대 사회의 한계를 고려하면 과잉 처벌을 금지하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관습법의 폐단을 억제하는 진보성이 엿보인다.
 
이후 인류는 다양한 법철학과 그에 입각한 법률체계를 발전시켰다. 지역별, 국가별 특수성이 없진 않지만 크게는 엄벌주의에서 교정주의로 형법의 방향은 이동해 왔다. 교도소 또한 자유를 구속하는 처벌 측면이 분명 있지만, 그 주된 목적은 교정행위를 통한 ‘재사회화’, 즉 갱생에 맞춰진다. 동해보복의 원칙은 좀 더 가다듬어져 ‘죄형법정주의’로 진화해 정착했다. 이렇게 보면, 함무라비 법전을 포함한 고대 수메르 문명의 법전들에서 성립된 기본은 큰 틀의 변화 없이 그저 수정‧보완되어온 데 가깝다. 고대인들의 당대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사회변화 방향 설계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영화 '사이버 지옥' [사진 = 영화 '사이버 지옥' 스틸컷]

◆영화로 되돌아보는 n번방 사건의 전모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르다. 그에 따라 새롭게 탄생하는 범죄행위도 나날이 다양해지는 중이다. 그 가운데 가상의 공간,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예방하고 발생 시 처벌하는 과정은 창과 방패의 무한 대결처럼 끝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특히 온라인 환경을 악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기하급수적으로 확산 가능해진 ‘위험한 신세계’는 거대한 음지를 형성했고, 여전히 근본적 해결과는 거리가 먼 한국사회 성범죄는 이곳에서 이상적인 배양 환경을 발견해 버렸다.
 
그 대표적인 민낯이 2019년 초부터 관측되던 ‘n번방’으로 통칭되는 일련의 온라인 채팅 방 사이버 성폭력 범죄다. SNS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소문이 나돌았지만 책임 있는 대처는 한없이 굼떴다. 한국사회에서 워낙 음지의 왜곡된 성문화가 만연한지라 그저 새로운 형태로만 간과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채 1년도 안되어 그 가공할 위험성이 수면 위에 떠올랐고 2020년 전반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n번방 성착취물 제작 및 유포 사건'이 터졌다.

넷플릭스가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인디스토리와 협업 제작해 올해 5월 18일, 전 세계로 송출을 시작한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는 그 사건 당시로 돌아가 n번방 운영자들을 추적하던 언론인과 활동가, 수사팀의 행적을 따라가는 범죄추적 스릴러이다.
 
최초로 제도권 언론에서 해당 사건을 기사화한 건 2019년 11월 말 한겨레였다. 그러나 당시엔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워낙 자극적인 사건과 뉴스거리가 넘쳐나던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찻잔 속의 태풍’처럼 잊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해가 바뀌면서 SBS <궁금한 이야기 Y>와 JTBC <스페셜 탐사 스포트라이트>가 후속 탐사보도를 내보내자 국면은 급속도로 전환된다.
 
처음엔 범죄 온상으로 지목된 ‘n번방’, ‘박사방’ 등에서 적반하장 격으로 취재진을 조롱하며 비웃었지만, 여론화가 시작되자 그들의 반응은 급변한다. 언론이 보도하면 더 피해자를 양산할 것이라며 취재기자 신상털이에 나선다. 졸지에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신변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방송이 나가면 자신들이 ‘노예’로 부리는 피해자를 투신시키겠다거나 피해자 동영상에 자신을 고발한 언론사 명을 붙여 용기를 낸 언론인들에게 윤리적 딜레마를 강요했다. 이 사이버 테러의 전모는 영화 속에서 언론인 당사자들이 겪었던 심적 부담과 고통을 본인들이 출연해 생생히 밝힌다.
 

영화 '사이버 지옥' [사진 = 영화 '사이버 지옥' 스틸컷]

그들이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선한 의지’와 ‘연대’의 힘이었다. 언론인 지망생으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은 제도언론보다 일찍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 건 대박’ 기사를 터뜨려 자신들의 경력에 보탬 되는 것보다는 언론인의 사명을 중시했고, 자신들이 오랜 시간 공들여 모은 정보를 기꺼이 공유해 타 매체 취재와 수사에 협조했다. 피해자들은 오히려 언론인들을 격려하며 지옥 같은 범죄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결단을 감행한다. ‘기레기’란 소리 들을 정도로 정론직필보다 선정적 기사에 목맨다는 사회 일각의 차가운 시선을 불식하는 페어 플레이가 이뤄졌던 순간이다.
 
특종 기사를 독차지하기보다 피해자에 공감하고 가해자에 분노하며 그들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리겠다는 시민적 연대의식이 발현된 언론인들의 활약은 고스란히 영화 구성에도 반영되었다. 이 작품에는 철저하게 ‘피해자 중심주의’가 구현되어 있다. 수사 관계자와 언론인들은 실명으로 얼굴을 드러내지만 피해자를 섣불리 인터뷰하거나 실제 동영상을 삽입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화제성에 목맸다면 어려웠을 선택이다.

대신에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OTT 제작의 이점을 살려 애니메이션과 특수효과를 아낌없이 투입해 시청자(관객)에게 사건 당시 분위기를 재연하는 공을 들였다. 선정적 장면 없이도 충분히 긴장과 스릴이 넘친다.
 
결국 일선에서 불철주야 ‘구르던’ 수사팀의 노력이 더해져 주범이라 할 N번방 운영자 '갓갓' 문형욱 34년, 박사방 운영자 '박사' 조주빈이 42년의 실형을 확정선고 받았고, 관련해 총 3757명 검거-245명 구속 사실이 영화 말미에 공개된다. 경찰 발표로만 6만 명으로 추산되는 ‘n번방’ 동영상 배포 및 소지자 규모로 볼 때는 미진한 처벌이란 비판도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온라인 음란물 확산의 온상이라 비판받던 웹하드 업체들의 자정활동이 대폭 강화되는 등 사회여론화를 비롯한 가시적 성과는 작지 않았다.

영화는 다양한 담론과 파생효과를 한 번에 다 담아내려는 욕망을 누르고 철저히 공익적 차원에서 어느새 과거사로 간주되기 시작한 해당 사건에 대한 총 정리에 집중한다.
 

영화 '사이버 지옥' [사진 = 영화 '사이버 지옥' 스틸컷]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n번방’ 사건은 동의되지 않은 성적 촬영물을 온라인에 유포해 이득을 취하는 점에서 종래의 사이버 성폭력과 본질적으로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사건의 범인들에겐 2가지 새로운 무기가 있었다. 바로 '텔레그램'과 '암호화폐'다.
 
텔레그램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추진되던 테러방지법 관련 온라인 사찰 논란이 불거질 때 기존 국내 SNS 대안으로 주목된 메신저 체계였다. 해외 서버를 두고 채팅기록을 삭제할 수 있다는 이점이 n번방과 숱한 유사 채팅방을 운영하는 이들에겐 마치 현실의 조세피난처 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이 수사 초반에 자신만만했던 것도 텔레그램의 시스템 특성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기존 화폐의 대안처럼 각광받던 암호화폐는 범인들에게 동영상 공개와 배포의 대가로 안전한 수익을 보장할 것처럼 보였다. 마치 ‘멋진 신세계’처럼 선전되던 기술들 이면의 파괴적 위험성이 극명하게 확인된 예시다. 도구의 발전은 있었으되 이를 사용할 인간의 지혜와 성찰이 지체되면 언제든 벌어지고 말 일이다.
 
이런 새로운 장치들을 과신한 범인들은 사이버 성폭력을 공모 및 실행하는 ‘범죄조직’ 구성에 이른다. 그들이 (피해자들에겐 턱없이 부족하지만) 상대적으로 중형을 선고받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기존의 사이버 성범죄를 계승(?)했지만 더 죄질이 흉악하다 평가되고 우려가 컸던 이유는 철저히 사이버 공간에 은신해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음란물 배포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성폭력을 모의하고 실행할 뿐더러 자극적 콘텐츠를 위해 가학적/변태적 수위가 강화되는 경향이 뚜렷했던 특성에 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행처럼 확산된 ‘메타버스’ 열풍이 실제로 혁신적인 실체는 빈약했던 것처럼 사이버 범죄 대응 수사 기술 발달과 정부의 전면 대응 앞에는 결국 꼬리를 밟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현실 범죄와 동일한 성격을 갖춰가고 거기에서 이득을 꾀했기에 역설적으로 현실의 공권력 앞에 무력해진 것이다. 기고만장했던 주범과 공범들은 차례로 법의 심판을 받았지만 여전히 해외에 서버를 둔 메신저 플랫폼과 다크웹을 통해 관련 영상이 거래되고 있다. 지키는 10명이 도둑 1명을 못 막는다는 고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나름대로 큰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하면서도 영화 속 관계자들은 몇 달이라도 조기에 사회적 관심과 수사가 이뤄졌다면 확인된 것만도 1,000여 명이 훌쩍 넘는 관련 피해자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며 개탄하고 안타까워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도 해야 한다는 여론에 힘입어 현재까지 7개의 속칭 ‘n번방 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영화 '사이버 지옥' [사진 = 영화 '사이버 지옥' 스틸컷

<‘n번방 방지법’으로 통칭되는 개정 법률안 요약>
 
법안 국회 통과 주요내용 개괄
성폭법 개정 2020.4.29 *자신의 신체를 직접 촬영한 경우에도 그 촬영 대상자 의사에 반해 반포한 자 처벌 명시
*불법 성적 촬영물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 유발 촬영물 이용해
협박/강요한 자는 각각 1년/3년 이상 징역
*특수강도강간 등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음모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형법 개정 2020.4.29 *미성년자에 대한 간음, 추행 조항 신설
*관련 예비, 음모죄 신설(3년 이하 징역)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 2020.4.29 *범죄수익등의 추정 조항 신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2020.5.20 *부가통신사업자에 성폭력범죄 촬영물에 대한 삭제·접속차단 등 유통방지 조치 및 기술적ㆍ 관리적 조치 의무 부과
※ 위반 시 3년이하 징역 또는 1억이하 벌금
아청법 개정 2020.5.20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아동·청소년성착취물’ 용어 변경 및 제작·배포죄 형량 강화
정보통신망법 개정 2020.5.20 *일명 '딥페이크 방지법'
*과기부의 거짓음향/화상 식별기능 보급의무 신설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의 불법촬영물 유통방지
책임자 지정의무 신설
아청법 추가 개정 2021.2.26 *일명 '그루밍 방지법'
*그루밍 행위 처벌조항 신설
*신분 비공개 수사 허용조항 신설

법 제정 초기에는 사회적 시류 탓에 큰 반대가 없었지만 2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는 관련해 상당한 논쟁이 벌어지는 중이다. 주요한 비판지점은 (1) 성적 동영상 출연자의 이후 의사 변화 시 적용여부, (2) 단순/우발적 시청자의 성착취물 범죄행위 고의성 판단, (3) 성착취물 소지/시청 처벌범위 등에 관련해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추상적인 기준으로 오‧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들이다.
 
해당 논쟁에서는 몇 가지의 가치 기준이 충돌하는 중이다. 물론 개정 및 신설된 법률이 시행되면서 문제점이 확인되면 재개정을 진행해야 할 테지만, 자칫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과도하게 검열한다는 식의 논점 이탈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과거 독재시절 경험 때문에 국가 개입에 거부감부터 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국의 성인잡지 발행인 래리 플린트 재판과 해당 사안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성적 표현의 자유 범위에 대한 검열 문제가 아닌, 명백한 성적 착취 폭력행위 예방과 처벌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체가 있는 사회적 위협에 대한 공감대가 우리 사회 전반에 확립되는 방향으로 토론이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그런 취지에서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가 국내에서 지난 5월 18일 공개되자마자 화제에 오른 건 물론, 넷플릭스 발표 ‘글로벌 주간 톱 10’(5.16∼22) 비非영어 영화 부문 8위. 그중 홍콩·베트남 2위, 대만·싱가포르 3위, 인도네시아 5위 등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건 매우 시의적절하고 반가운 일이다. 영화에서 언급했듯 현실 국경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이버 공간을 넘나드는 불법 성착취물에 대항하기 위해선 국제적 관심과 공조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진정성을 갖고 현실에 개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는 국제적 협업이 더욱 권장되어야 할 온당한 이유를 본 작품은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또한 영상매체가 갖는 사회적 파급력을 유의미하게 활용한 예시이기도 하다. 영화 속 녹여낸 주제와 해당 작품의 제작과정이 어긋남 없이 조화를 이룬 ‘웰-메이드’ 다큐멘터리가 국내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상업적 시도와 공공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드문 사례로 본 작품은 제법 오랫동안 회자되지 않을까.
 
[작품 정보]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Cyber Hell: Exposing An Internet Horror
2022|한국|다큐멘터리
2022.05.18. 공개|105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구성 최진성
출연 김완, 오연서(한겨레) 최광일, 장은조(JTBC), 정재원(SBS), 추적단 불꽃,
조승노, 최지훈, 이민상, 전인재, 유영실, 손준호, 김호진, 이수정, 강인욱,
김혜정, 서승희, 박수진, 조은호, 유승희, 강철구, 최한겨레, 조커
PD 김태훈, 김화범
촬영 박홍열
제작 (주)인디스토리
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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