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스톱'된 3조원대 재건축…법으로 살펴본 둔촌주공 사태

한석진 로앤피 기자 입력 2022-04-27 08:00 수정 2022-08-16 09:29
  • 둔춘주공 재건축조합, 계약해지 추진

  • 시공사업단 공사중단 통보 맞대응

  •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양측 모두 손해 불가피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현장 [사진=아주경제 DB]

[아주로앤피]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이 조합과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간 갈등으로 사업이 시작된 지 2년여 만에 공사가 멈췄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5930가구를 철거하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을 짓는 공사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재건축 사업이라는 타이틀까지 붙었다.
 
현재 공정률은 52%로 단지 대다수 동이 12~13층까지 지어졌다. 당초 계획으로는 올해 분양 후 내년 8월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시공사업단은 지난 14일 공사현장에 ‘유치권 행사 중’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곳곳에 걸어두고 공사현장에서 인력과 장비·자재 등을 철수하고 있다.
 
유치권이란 다른 사람의 물건을 점유하고 있는 사람이 그 물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을 변제 받을 때까지 해당 물건을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민법 제320조 제1항, 상법 제58조).
 
조합과 시공사업단이 극심한 갈등을 빚는 배경으로는 지난 2020년 6월 25일 양측이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 때문이다.
 
당시 둔촌주공 전 조합장은 시공사업단과 공사비를 2조6709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늘리는 대신 원래 계획했던 1만1106가구에서 상가를 포함하여 1만2032가구로 변경하기로 하는 계약을 맺은 바 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조합원들은 전 조합장을 해임한 뒤 새로운 집행부를 출범시켰다. 조합원들과의 신뢰 상실, 업무 무능력 등이 전 조합장의 해임 사유였다.
 
그리고 새 집행부는 시공사업단에 ‘이전 조합과 맺은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법적·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29조의2,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제36조 및 정비사업 공사비 검증 기준에 따르면 공사비 증액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선 한국부동산원에 공사비 검증을 신청해 그 결과를 공개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조합 측은 “지난 2019년 12월 7일 열린 관리처분총회에서 공사비 검증 내역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며 “계약의 근간이 되는 총회가 법적·절차적으로 문제 있으니 계약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관리처분총회란 조합이 만들어지기 직전 단계로 조합원들에게 적용할 비례율, 평형 배정 방법, 신축건축물에 대한 배정방법(몇 채를 배정할 것인지 등)에 관한 사항과 그 비용 분담에 관한 사항 등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74조에 규정된 내용을 정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모이는 자리를 말한다.
 
또 조합 측은 “공사비 증액 계약서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공사비 증액 계약 내용에 따르면 계약서에는 연대보증인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사비 증액 계약서에는 이 같은 서명이 없다.
 
그 결과 조합은 “사전 합의에 따라 정해진 방식을 지키지 않은 계약이니 법적·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러한 조합의 주장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계약은 ‘계약의 본질적인 사항에 관한 당사자의 의사의 합치’만으로 성립하고, ‘계약서 날인의 존부’ 혹은 ‘계약서의 존부’는 계약의 요건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51650 판결).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조합은 “절차적 하자가 있는 지난 2020년도에 맺은 계약을 토대로 건축비 계산을 할 수는 없다”며 “공사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임금 인상 등에 따른 공사비 증액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2016년 계약을 토대로 협의를 해야 공사비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시공사업단은 같은 사안을 두고 조합과 전혀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
 
시공사업단 측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에 조합과 맺은 계약과 관련해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증액 검증은 총회 전 신청을 했으며, 법적 의무사항도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계약서 연대보증에 대해서도 시공사업단 측은 “(연대보증은) 조합이 해산 등 착공 전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할 때 받는 것”이라며 “(2020년도 계약을 맺을 당시에는) 이미 공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연대보증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계약서에 연대보증인의 서명이 없더라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위와 같은 점을 근거로 시공사업단 측은 “당시 계약이 적법하게 개최된 관리처분총회를 기반으로 대의원회의 의결을 거쳤고, 이후 강동구청의 관리처분인가까지 받은 만큼 조합 집행부가 바뀌더라도 유효성이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갈등이 고조되자 서울시는 정비사업 코디네이터(중재자)를 배정해 강동구청과 함께 약 10차례 중재에 나선 바 있다. 총괄 코디네이터로는 김용호 제일엔지니어링 부회장이 나섰고, 법률 전문 코디네이터로 전영상 변호사, 시공 전문 코디네이터로 오문규씨가 포함됐다.
 
하지만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코디네이터도 지난달 중재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조합은 지난달 21일 서울동부지법에 “공사비 증액 변경 계약을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내기도 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시공사업단은 입장문을 통해 "2020년 2월 15일 착공 이후 약 1조7000억원의 외상 공사를 진행해왔고, 공사비와는 별개로 시공사업단의 신용공여(연대보증)로 조합 사업비 대출 약 7000억원을 조달하고 있다"면서 "조합은 공사의 근거가 되는 공사 도급 변경 계약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 더는 공사를 지속할 계약적·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조합도 즉시 “시공사업단의 공사중단 기간이 10일 이상 계속되면 계약 해지까지 추진하겠다”고 맞섰다. 지난 13일 조합은 대의원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조건부 계약 해지에 관한 사항을 총회에서 결의하기로 하는 내용의 안건을 통과시킨 바 있다.
 
양측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시공사업단 역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는 “양측이 소송전으로 비화하면 이미 조합이 제기한 공사비 증액 계약의 효력을 따지는 것에 더해 공사대금(1조6800억원) 및 손해배상 청구, 유치권 무효 확인 소송 등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삼양 황귀빈 변호사는 “유사한 사안에서 원고와 피고가 가장 첨예하게 다투는 쟁점은 공사 중단의 원인이 되는 귀책 사유가 누구한테 있는지”라며 “결국 둔촌주공의 경우 이전 조합이 시공사업단과 체결한 변경 계약의 절차·내용상 하자가 있는지가 주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가 다시 중재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서울시가 중재에 나서더라도 양측의 갈등이 원만히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양측이 여전히 각자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협상 테이블을 마련할 예정이니 관련 자료를 준비하라고 해서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불법 계약에 의한 불법 공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은 변화가 없고 앞선 증액 계약을 일단 인정한 뒤 필요하다면 추후 금액 조정을 다시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조합 관계자도 "협상을 위해 필요한 조합의 입장 전달 및 관련 제안은 시공사업단이 공사를 중단하기 전 모두 전달한 상황"이라며 "공사 중단이 10일 이상 이어지면 시공단과 계약 해지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총회를 연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공사중단이 계약 해지로 이어진다면 양측 모두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우선 조합이 금융권으로부터 대여하고 있는 이주비 대출 규모는 1조2800여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7000여억원의 사업비 대출까지 받은 상황이라 빌린 돈만 2조원에 이른다.
 
그 결과 연이자부담만 연간 800여억원 규모다. 조합원 분담금이 계속해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공사가 늦춰지면서 내년 8월로 예정했던 입주일도 미뤄질 전망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게시판에는 둔촌주공 재건축 분쟁 관련 청원이 쏟아지고 있다. 한 조합원은 “4년째 떠돌이 생활을 하는 조합원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위협”이라고 호소했다. 
 

[사진=연합뉴스]

시공사업단이 지게 되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예정보다 입주 시기가 지체되면 시공사업단은 조합에 지체 보상금을 내야 한다. 조합과 맺은 계약 내용에 따르면 지체 보상금은 매일 전체 공사비인 3조2293억원의 0.1%씩 발생하며, 최대 5%까지 늘어날 수 있다.
 
시공사업단 핵심 관계자는 “한번 공사가 중지되면 재개하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6개월은 걸릴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총공사비의 5%인 1615억원의 보상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조합이 지체 보상금을 요구하면 입주 지연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따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기존 투입된 공사비에 대한 금융 부담도 있다.
 
시공사업단은 지난 2020년 4월 일반분양을 시작해 공사에 투입된 비용을 회수한다는 계획하에 2020년 2월 착공했다. 그러나 계획과 달리 일반분양 일정이 늦어지면서 시공사업단이 올해 9월 분양 및 10월 수금을 하더라도 1200여억원의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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