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한 다리 건너도 인정되는 직무관련성

  • 광주지방법원 2021. 4. 29. 선고 2020구합1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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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훈 변호사
입력 : 2022-05-20 11:00
수정 : 2022-06-01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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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안성훈 변호사]

청탁금지법상 금품등 수수 금지 위반의 사안에서, 직접 직무를 담당하는 공직자등이 아니라 그 공직자등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직자등이 금품등을 수수한 경우에도 직무관련성을 인정한 경우는 많았다. 그런데 더 나아가 공직자등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금품등 제공자에게도 직무관련성이 인정된다는 판결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안은 이렇다. 도시계획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A시 소속 공무원 갑은 A시 소재 항만시설 관리 및 운영을 B주식회사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는 C주식회사의 대표 을에게 골프접대를 받았으며, 이것이 청렴의무 위반이라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갑은 자신이 C주식회사나 그 대표와는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등의 취지로 주장하며 소청심사를 거쳐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직무관련성을 인정하였다.
 
(1) 갑의 직무는 적어도 A시 소재 항만시설의 건설·관리·운영 등을 사업목적으로 하는 B주식회사와는 관련이 있고 C주식회사는 B주식회사의 항만시설 관리·운영 업무를 위탁 수행하고 있으므로, C주식회사의 대표인 을은 갑에게 B주식회사에 대한 정보나 의견을 제시하는 등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2) 갑이 소속된 부서는 항만정책 전반, 항만물류 전반 등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데 이것이 C주식회사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음은 분명하고 갑이 그 부서 소속 공무원에게 C주식회사에 관한 정보나 의견을 제시하는 등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업무를 담당하거나 그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공직자등과 금품등을 제공한 상대방이 직접 관련되지 않더라도, 공직자등 측의 방향으로 한 다리를 건너든지 아니면 상대방 측의 방향으로 한 다리를 건너든지 공직자등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라면 직무관련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항만시설에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부서 소속 공무원이 업무와 무관하게 형성된 개인적 교분 등 특별한 사정 없이 항만시설 운영 등을 수행하는 업체의 대표에게 골프접대를 받는 일은 사회일반으로부터 직무집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할 여지가 크므로,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직무관련성의 범위를 ‘공직자등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금품등 제공자’에게까지 넓힌 것은 타당성이 있다고 보인다.
 
이 판결에서처럼 법원의 판단 기준이 개별 사안에 따라 조금씩 정교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별적 기준 제시를 넘어 청탁금지법에서의 직무관련성에 대한 일반적 법리의 형성도 고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의 직무관련성이 뇌물죄의 직무관련성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하였고, 법원도 청탁금지법의 직무관련성이 뇌물죄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기는 어렵다고 하면서도 뇌물죄에서의 법리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왔으며(서울북부지법 2018. 2. 23.자 2017과187 등 참조), 이 판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로 두 개념이 같다고 하기는 어렵다.
 
먼저 뇌물죄는 대가성에 의해 성립이 제한되므로 직무관련성의 판단에도 직무와 이익 수수 사이의 구체적 관계에 집중할 가능성이 큰 반면 청탁금지법에서는 대가성이 명시적으로 배제되므로 직무와 금품등 수수 사이에 일반적 관계를 기준으로 할 수 있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크다. 또한 판례에 따르면 뇌물죄에서는 사회상규 등이 인정되면 직무관련성이 없다고 하는데(대법원 2017. 1. 12. 선고 2016도15470 판결 등), 청탁금지법은 조문 구조상 사회상규가 인정되어 금품등 수수가 허용되는 경우라도 직무관련성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아마도 청탁금지법의 직무관련성 개념은 뇌물죄의 그것과는 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다르게 파악할 수 있으며 청탁금지법의 직무관련성이 뇌물죄에서보다 조금 유연하게 인정되거나 더 넓은 범위의 외연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대법원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과 소속 공무원이 해운회사 대표이사로부터 중국 국적 선박에 대한 운항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금전을 수수한 사안에서 해양정책과는 중국 국적 선박에 관한 업무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적 선박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등의 이유로 직무관련성을 부정한 사례를 보자(대법원 2011. 5. 26. 선고 2009도2453 판결). 생각건대 직무와 이익 수수 사이의 구체적 관계에 더욱 집중한 결론으로 보인다. 이에 비하여 청탁금지법 사안 중에는 5년간 공무원의 소속 기관과 계약 체결 내역이 없고 공무원이 위반 행위 당시 관련 업무를 담당한 것이 아님에도 장래 그 소속 기관과 상대방이 계약을 체결하거나 그 공무원이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직무관련성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수원지방법원 2019. 2. 19.자 2018과100953 결정). 좀 더 일반적 관점에서 직무관련성을 인정한 결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위에서 소개한 판결의 취지나 이 결정의 취지를 두루 살펴보면 위 대법원 판례 사안과 유사한 경우에도 직무관련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청탁금지법 시행이 5년을 넘었다. 국제적 부패지표에서도 큰 개선을 이루었고 청탁금지법에 대한 국민과 공직자의 호응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경계적 상황들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못한 부분도 많은 것 같다. 이제 관련 사례도 다양하게 축적되어가고 있는 만큼 뇌물죄의 법리에만 기대지 않고 청탁금지법 고유의 법리와 기준을 형성하여 많은 생활 영역에서 그 구체적 규범력을 높여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