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3개의 체

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입력 2022-02-26 06:00 수정 2022-02-26 06:00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주일날, 여느 주일처럼 목사님 설교를 듣는데, 설교 중 내 귀에 꽂히는 부분이 있었다. 목사님께서 예화로 드시는 소크라테스의 ‘3개의 체’였다. 오래전에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이야기이지만 그동안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가,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다시 확 꽂히는 것이었다. 3개의 체를 간단히 얘기한다면,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달려와 누구에게 들은 말이라며 말을 전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잠깐 그 사람의 말을 제지하면서 먼저 이렇게 얘기한다. “자네가 말하려는 것이 진실인가?” 그 사람은 진실임을 확인하지는 않고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하려던 것이라 주춤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또 이렇게 묻는다. “얘기하려는 내용이 선한 내용인가?” 어떤 사람들은 남의 험담을 들으면 입이 근질근질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 사람도 그런 험담을 소크라테스에 전하려던 것이었는지 또 주춤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또 이렇게 묻는다. “나에게 알려주려는 것이 유익한 것인가?” 당연히 유익하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그러니 또 주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한다. 진실한 지도 확실치 않고 선한 내용도 아니며 유익한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말하려 하는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이 3가지를 ‘3개의 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남의 말을 하기에 앞서 이 3개의 체로 걸러낸 다음에야 얘기하기를 주문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입에서 입으로 옮기는 말 중에 소크라테스의 기준에 따르면 굳이 옮기지 않아도 될 말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래서 ‘침묵이 금’이라는 격언도 나온 것이리라. 에스앤에스(SNS)가 대세인 요즘 세상에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것보다는 사이버 공간상에서 문자로 전하는 것이 훨씬 많다. 그리고 이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것보다 그 전파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 금방 지구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그러니 사이버 공간상에서의 말은 소크라테스의 ‘3개의 체’로 더 엄격히 걸려져야 할 텐데, 오히려 사람들은 더 무신경하게 전파한다. 직접 대면하지 않고 단지 손가락 몇 번 까닥거려 클릭하기만 하면 되니, 더 무신경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사이버공간 상에 이렇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돌다보면 어느새 확인된 사실(팩트)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로 둔갑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되면 언론에서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하여도, 언론을 믿기는 보다는 그대로 가짜뉴스를 믿는 사람들도 많다.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누군가 이것이 사실이라고 올리고 한 두 사람이 여기에 동조하기 시작하면 확증 편향이 강화되면서 그대로 사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하긴 ‘3개의 체’를 엄격하게 적용하여야 할 언론마저도 가짜뉴스를, 가짜뉴스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향된 뉴스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으니, 도대체 3개의 체로 걸러지지 않은 소식이 횡행하는 이 세상에 진실이 설 땅은 어디인가?
 
그리고 3개의 체로 거르지 않은 이야기를 퍼뜨릴 때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생각해보지 않는가? 아이들은 장난으로 연못에 돌을 던지지만, 거기에 살고 있는 개구리는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동화처럼, 누군가는 재미로 퍼나르지만 누군가는 이로 인한 고통에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사회가 강팍해져 가는지, 단지 퍼나르는 것을 넘어서 고의적, 악의적으로 피해를 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얼마 전 민주당 선대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악의적인 유투버들의 공격에 사임한 조동연 전 여군 소령도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필요 이상으로 프라이버시 영역인 남의 아픈 가정사를 잔인하게 드러내지 않았는가? 또 악의적 댓글로 댓글 당사자에 정신적인 충격을 주고, 심지어는 이로 인하여 댓글 당사자가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계속 나오고 있지 않은가?
 
왜 이렇게 사람들이 남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나 않게 할 수 있을까? 오늘날처럼 소크라테스의 ‘3개의 체’가 절실한 때가 없는 것 같다. 우리 모두 남의 얘기를 전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자. 진실한가? 선한가? 유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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