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제21대 국회에 품격을 요구한다

김상욱 변호사 입력 2020-05-30 09:00 수정 2022-06-04 16:54
  • '태도 보수, 생각 진보'

현 시점 여야를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임에 틀림없는 이낙연 전 총리의 손에서 2012년 연말 처음 탄생한 이 표현은 2017년 대선을 눈앞에 둔 문재인 대통령에 의하여 다시 쓰인다. 이 표현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 논란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진보적인 생각을 신중한 태도로 전달할 수 있어야만 진보 정권의 탄생 및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승리가 가능할 수 있다는 진단이었다.

2012년의 이낙연 전 총리와 2017년의 문재인 대통령이 ‘태도 보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 당시 ‘품격’이라는 용어의 주인이 보수진영이었음을 반증한다. 실제 사회의 진보를 외치는 자들은 불만이 많은 사람, 자신의 주장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마다않는 사람, 지나치게 시끄러운 사람, 선민의식이 있는 사람,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 예의 없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기 일쑤였으며, 이와 반대로 보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합리적이며 안정적인 인물로 보이던 때가 있었다. 태도 보수는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한 이러한 선입견을 극복하고, 수권정당과 정치지도자로서의 ‘품격’을 갖추자는 구호였다. 그리고 2017년 당시 야당은 집권에 성공하였으며 연이은 지방선거, 제21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대승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낙연 전 총리는 ‘품격 있는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보수의 품격은 여전히 유효한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거쳐, 극한의 대립을 거듭했던 제20대 국회에서 보수의 품격은 실종되었다.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제1야당의 전 대표는 특정 종교 지도자와 결합하여 매주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였으며,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극우 세력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로 불러들여 폭력 사태를 유발하기까지 했다. 4선의 야당 원내대표는 손에 ‘빠루’를 쥐고 국회 내 무력 충돌을 유발했다. 역사적, 사법적 평가가 끝나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5월의 광주’를 “그 어떤 사태”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그 어떤 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하였다는 터무니없는 폄훼를 멈추지 않는 인사를 국회로 불러들여 5∙18 공청회를 주최한 것도 보수 야당의 소속 의원들이었다. 걸핏하면 장외로 나와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원내대표들 간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했던 행위는 애교처럼 보일 정도다.

정치적 측면에서의 보수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점진적∙안정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보수의 안정감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상황의 초기에는 감염병 유행 사태가 정권과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하여, 제21대 총선에서 보수 야당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의 보수는 국난극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마저 저버렸다. 전대미문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의견을 나누고 힘을 보태는 대신, 코로나19를 “우한 코로나”라 명명하며, 혐오와 대결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데 여념이 없었다. 총선이 마무리된 이후, 더 이상 “우한 코로나”라는 표현을 들을 수 없었으니 이는 선거용 수사에 불과하였음이 명백하다.

이렇듯 보수의 정치에 품격이 실종된 결과, 모두가 알다시피 제1야당은 제21대 총선에서 103석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보수와 진보 양 날개로 나는 대한민국이 아닌, 보수의 날개가 꺾인 채 한 쪽 날개로만 날아가는 대한민국이 더 나을 수 있다고 판단한 국민의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면 과연 지나친 비약일까?

야당의 전대표가 공천에 개입하여 번복을 거듭한 끝에 공천된 어떤 후보의 끝없는 선거 불복에 환멸을 느끼던 찰나, 5월18일 광주를 찾아 그간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 대한 자당의 과오에 대해 반성의 모습을 보인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의 태도는 박수쳐줄만 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에 감동을 받아야만 하는 이상한 상황에 대한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목격한 ‘품격’있는 ‘보수’의 ‘태도’는 무척이나 반가웠던 것이 사실이다.

제21대 국회는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를 준비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이전과 다른 환경에서 또 다른 삶을 준비해야하는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다가올 경제난을 극복해야하며, 예측할 수 없는 또 다른 문제들에 대비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제20대 국회가 외면한 수많은 민생법안을 처리해야하며, 사법개혁∙권력기관 개혁∙정치개혁 등에 대한 진정한 합의점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중차대한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품격 있는 보수 야당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합리적인 비판과 견제가 실종된 국회는 국민의 불행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다.

제21대 국회의 개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반목보다는 협상을, 장외보다는 원내를, 막말보다는 품격의 정치를 기대한다.

태도만큼은 모두가 보수인 제21대 국회를 요구한다.
 

[사진=김상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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