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대형 화재 참사, '솜방망이 처벌'도 큰 원인

한석진 기자 입력 2020-05-03 13:32 수정 2020-05-03 13:51
지난 달 29일 경기 이천시 물류창고 공사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하청노동자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지하 2층 화물용 엘리베이터 부근에서 우레탄 살포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가 건물 전체로 퍼진 상태에서 불꽃이 닿으면서 발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08년 1월 40명이 사망한 이천시 호법면 냉동 창고 화재 사고가 발생한지 12년 만에 재연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산업안전공단이 수차례 화재 위험성을 경고하고 개선을 요구했으나 공사업체가 이를 무시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참사 역시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달 30일 이천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이 공사업체가 제출한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검토한 결과 화재 등 사고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서류심사 2차례, 현장실사 4차례에 걸쳐 경고했다”며 “그때마다 공사업체 측은 안전성 확보대책 등이 담긴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이를 현장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란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유해물질 등 위험요인에 의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로, 지난 2008년 대형화재 등으로 인한 참사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공단 역시 공사 현장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사 업체의 위험방지계획에 대해 매번 ‘조건부 적정’ 판정을 내렸다. ‘조건부 적정’ 판정이 내려지면 그 내용과 보완사항이 지방고용노동관서에 통지될 뿐 별도의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달 29일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유사한 사고가 반복되어 유감스럽다"며 "과거의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 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또한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 들어 화재안전대책을 강화했는데 왜 현장에선 작동되지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또다시 대형화재가 발생한 만큼 총리께서는 정부의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었는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이런 불상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다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이천 물류창고 화재,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018년 밀양 화재 이후 화재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특별대책을 발표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대형화재가 반복되는 것에 대한 질책성 발언으로 풀이된다.

지난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 2008년 이천 냉동 창고 화재 참사와 관련해 사업주 등 8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담당 재판부는 "안전불감증에 따른 인재여서 피고인들을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사 업체 대표와 현장소장, 방화관리자 등에게 고작 이천만 원의 벌금형과 집행유예만 선고했을 뿐 실형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해자의 유가족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거나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때문에 당시 재판부는 '솜방망이 판결'이라는 여론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 2014년 5월에는 고양종합터미널에서 가스 배관작업을 하다가 튄 불꽃이 우레탄폼으로 옮겨 붙어 불이 났다. 이 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60명이 상해를 입었다. 담당 재판부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는 가스배관 작업반장과 터미널 관리소장 등에 징역 1년을 선고하는 것에 그쳤다.

이전 사건과 달리 2017년도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숨진 사건에서는 형량이 과거보다 대폭 늘어났다. 당시 담당 법원은 제천화재 건물주에게 징역 7년을, 화재 원인을 제공한 건물 관리과장에겐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 2015년 12월 "국민적 염원을 반영 하겠다"며 대형 참사의 양형 기준을 높인데다가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2018년 1월 화재로 159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 사건으로 인해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법인 이사장 손모 씨에게 당시 담당 재판부는 “각자 지위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화재 발생 및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며 손 씨에게 징역 8년에 벌금 천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 화재 참사에서 안전 주의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는 어떤 법이 적용될까?

우선 지난 2018넌 12월 국회를 통과해 올해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적용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이 이뤄진다는 점을 인식했음에도 이러한 근로자 안전조치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의 처벌 하한 형이 도입 되지 않아 ‘경고메시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때문에 안전책임을 소홀히 한 사업주의 형사 처벌 하한선 (징역 1년)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건설업체가 건설업 면허 등 자격을 갖추지 아니한 채 시공을 하거나 무자격 하청업체한테 공사를 하게 했거나 대규모 인명피해와 직결될 수 있는 필수적 안전의무를 위반한 경우라면 그 자체로 업무상 과실이 성립해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죄가 더해져 형량이 더 올라갈 수 있다. 형법은 업무상 과실로 인하여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이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 하고 있다.

한편 지난 2017년도에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 발의했으나 별다른 진척 없이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은 회사가 안전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를 처벌함과 동시에 해당 회사에 벌금 부과하고 사업장이나 공중이용시설 감독 의무가 있는 공무원의 직무 유기로 사상자가 발생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 종료가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아 이대로라면 법안은 자동 폐기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신속히 법을 제정해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노동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다. 이번 화재 참사 역시 사업주가 당국으로부터 화재 경고를 수차례 받고도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데다가 근로자들에게 안전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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