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설리 유산 갈등... 상속법 따져보니

한석진 기자 입력 2020-01-23 23:20 수정 2020-01-23 23:26
  • 자녀 부양 외면한 부모도 자녀 사망하면 그의 재산 상속받을 수 있어

지난 19년 10월 14일 설리가 세상을 안타깝게 떠났지만, 그녀의 유산을 두고 가족 간 갈등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설리의 둘째 오빠 최모씨는 자신의 SNS에 친부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세지로 추정되는 글을 공개했다. 설리의 유산이 사회에 환원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설리 오빠는 “나는 나의 동생으로 인한 것을 혼자 안고 가고 싶은데 어떻게 친부라는 사람이 동생의 슬픔도 아닌 유산으로 인한 문제를 본인의 지인들에게 공유할 수 있냐”며 분노했고 “남남이면 제발 남처럼 살아라.”고 주장 했다. 실제 설리의 친부는 설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이혼한 후 왕래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설리의 친부처럼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도 자식의 유산을 상속할 수 있을까?

민법 제1000조에 의하면 가족이 사망할 경우 직계비속(자녀), 직계존속(부모), 형제자매, 4촌 이내의 방계혈족(조카) 순으로 상속인이 된다. 그리고 앞선 순위에서 상속이 이뤄지면 후순위 상속인은 상속을 받을 수 없다. 한편 배우자는 민법 제1003조에 따라 직계비속과 직계존속이 있는 경우에는 그들과 같은 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되고 직계비속·존속이 없는 때에는 홀로 상속을 받게 된다.

그러나 고의로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나 자신보다 선순위 상속인을 살해하거나 피상속인의 유언을 방해하는 경우 등 민법 제1004조에서 정한 상황에 해당된다면 그 사람은 상속을 받을 수 없다. 다만 자녀 부양을 외면한 부모로부터 상속권을 박탈하는 규정은 없다.

위 규정을 적용하면 설리는 배우자와 자녀가 없다. 때문에 후순위인 친모와 자식을 외면한 친부가 상속인이 된다. 그리고 선순위 상속인인 부모가 있으므로 후순위인 친오빠는 상속인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설리의 친부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자식의 유산을 상속 받는데 있어 어떠한 불이익도 받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제도적 허점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 지난 2011년에는 이혼 후 딸에 대한 양육비도 주지 않던 전 남편이 딸의 사망보험금을 받게 되자 친모가 이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민법은 법정상속 제도로 혈족상속 원칙을 채택하고 형사상 범죄행위와 유언의 자유 침해 등 5가지 상속 결격사유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모(직계존속)가 자녀(피상속인)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도 피상속인에 대한 살인 또는 상해치사 등과 같은 수준의 윤리적·경제적 협동관계를 파괴하는 중대 범법 행위 또는 유언의 자유를 침해하는 부정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린바 있다.

그렇다면 자식의 부양의무를 외면한 부 또는 모의 상속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현행법상 자식이 미리 상속에 관한 유언을 남기는 방법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실효성은 높지 않다. 자녀의 사망은 예기치 않은 사고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상속에 관한 유언을 사전에 남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부모가 자식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유기·학대한 경우에 상속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나쁜 무모 먹튀 방지법’(민법 개정안)이 작년 7월 24일 국회에 발의 되었으나 현재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

부양의무를 게을리 한 부모가 자식의 유산 때문에 갑자기 나타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때문에 민법의 상속권 제도에 대한 정비가 시급한 상황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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