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조국 수사 윤석열이 넘어야 할 두 개의 산

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19-09-04 15:00 수정 2019-09-06 15:47
'사람에게 충성하고 싶은' 유혹 떨쳐내고
집권세력과 지지세력의 압박 이겨내야


여기서 지면 '윤석열'은  허명으로 남고
검찰은 권력 시녀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


정권과 검찰, 사상 초유의 공개 충돌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의혹 수사를 놓고 9월 5일 정권과  검찰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청와대 관계자가 조 후보자 딸의 의혹을 해명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이낙연 국무총리와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각각 "검찰이 정치하겠다고 덤빈다" "압수수색을 사전에 법무부에 보고해야 했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이에 대검은 청와대에 "수사 개입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고 공개 반박했고, 법무부 장관에게도 "장관이 수사 계획을 사전 보고받는다면 검찰 수사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현저히 훼손된다"고 역시 공개 반박했다. 정권과 검찰이 공개 충돌한 것은 검찰 역사 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 후보자 수사로 시험대에 올라 있다. ‘윤석열’이라는 이름 세 글자의 진가(眞價)를 보여주느냐 아니냐의 시험대다. 진가를 보여주지 못하면 그 이름은 국민들 마음속에 영원히 허명(虛名, 실속 없는 헛된 명성)으로 기억되고 말 것이다.

현 정권과 그 지지세력은 조 후보자 사태를 정권의 명운이 걸린 문제로 본다. 조 후보자나 그의 아내의 위법 혐의가 드러나 조 후보자 장관 임명이 무산되면 정권이 곧바로 레임덕에 빠질 것으로 우려한다. 정권과 반대세력 간의 사활을 건 권력 투쟁에서 정권이 패배한 것이고 그 결과 정권의 존립이 위험해질 것으로 여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물론, 그 열성 지지세력이 그토록 무섭게 조 후보자 방어와 사수에 나서는 것도 그런 위기 의식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총장도 이런 분위기를 모르지 않을 것이고, 그만큼  마음의 부담도 클 것이다.  

반면에 조 후보자 일가를 둘러싼 위법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국 사모 펀드에 일부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과 민주당 의원 보좌진들까지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사모 펀드의 핵심 관계자 3명은 검찰 수사 착수 전 외국으로 출국했다. 조 후보자 아내는 딸의 대입용 스펙을 만들기 위해 비합법적 수단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증거 인멸 의혹까지 터져 나온다. 많은 국민들은 조 후보자 일가 주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검찰 수사에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다.

전격적 압수수색·연이은 참고인 조사···겉보기엔 수사 활발

검찰 수사는 지금까지는 거침없이 진행되는 걸로 보인다. 지난 8월 27일 조국 후보자 관련 의혹이 제기된 웅동학원 등 31곳을 압수수색했다. 조국 후보자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과 관련해 세종시에 있는 국토교통부 도시경제과도 수색했다. 검찰은 이곳에서 ‘스마트시티 사업’ 관련 자료 등을 확보했다. 스마트시티 사업은 스마트폰·자동차 등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시민들에게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국토부 도시경제과는 이 사업 관련 예산을 총괄하는 부서다.

검찰은 9월 3일에는 조 후보자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 연구실을 압수 수색했다. 정씨가 딸의 입시를 위해 인턴십 활동, 논문 저자 등재, 봉사활동 경력 등 스펙 만들기에 관여한 의혹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 딸이 고교 시절 봉사 활동을 한 경기 성남의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도 압수 수색했다. 이와 함께 의혹에 관련된  참고인들도 잇달아 불러 조사하고 있다.

압수수색은 범죄 혐의의 단서를 잡고 피의자를 추궁할 자료를 찾아내기 위한 핵심적 수사 절차다. 과거 검찰이나 경찰은 정권 핵심이나 그 주변 인물이 관련된 의혹 사건이 터져 일파만파로 번져도 압수수색을 미루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여론의 압력이 높아져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마지못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피의자들이 증거를 감추고도 남을 시간이 지난 뒤였다. ‘드루킹 사건’이 대표적 예다. 조국 후보자 관련 압수수색은 전격적이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이런 겉모습으로만 보면 검찰이 정말 제대로 수사하려는 것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총장의 스타일이 검찰 수사 의지에 기대를 걸어 보게 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법무부장관이나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윤 총장이 이 말 그대로 오직 ‘법’에만 충성하는 자세로 수사한다면 과거의 검찰 수사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검찰 수사를 미심쩍은 눈으로 본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이 진심이라고 하더라도 윤 총장이 그 원칙과 자세를 지키고 관철시켜 나갈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윤 총장이 청와대와 집권당은 물론 그 열성 지지세력의 억지와 생떼에 가까운 압력과 압박을 끝까지 뚫고 나갈 것인지 의심한다.

집권세력, 전두환 시대 '관계기관 협의'까지 들먹이며  압박

집권세력과 지지세력의 검찰 압박은 압수수색과 동시에 시작됐다.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수사기밀 누설죄로 처벌해야 합니다'란 제목의 페이스북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정무수석이 윤 총장 처벌 주장에 동조하고 나선 셈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검찰이 청와대나 법무부에 알리지도 않고 압수수색을 했다” "관계기관과 협의를 안 하는 전례 없는 행위가 벌어졌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은 하나같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기자가 독자적으로 취재해 보도한 내용을 갖고 검찰이 일부러 수사 기밀을 유출했다고 몰고가는 것부터가 그렇다. 기자는 검찰뿐 아니라 사건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취재한다. 이번과 같은 큰 사건이 터지면 신문사에 제보도 많이 들어온다. 기자는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 과정을 거쳐 보도한다. 기자의 보도는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됐다고 해서 무턱대고 검찰이 수사 기밀을 유출했다고 하는 것은 검찰을 압박하려는 의도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해찬 대표의 ‘관계기관 협의’는 시계를 수십년 전 전두환 정권 시대로 되돌리는 듯하다. 그 당시 검찰은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꼭두각시였다. 시국 사건이 터지면 청와대 지시를 받는 안기부의 주도 아래 검찰, 경찰, 기무사가 모인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검찰 수사를 좌지우지했다. 그때 한 검찰총장은 “검찰이 사건 처리를 잘했다고 안기부장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고 검찰 간부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검사들은 끼리끼리 모여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검찰총장이 안기부장 칭찬 받은 걸 자랑이라고 떠벌리다니, 도대체 제정신이 박힌 검찰총장이냐”고 수군거렸다.

이해찬 대표는 그 당시 운동권 핵심이었다. 독재 정권이 정권 유지의 도구로 운영했던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 사람이다. 그런데도 검찰이 청와대와 법무부에 사전 보고해서 협의하지 않고 조국 후보자를 압수수색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아직도 검찰 수사에 ‘관계기관 협의’를 들먹이니 할 말을 잊게 한다. 검찰의 존립 기반은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이다. ‘독립’의 핵심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이다. 관계기관 협의는 검찰 수사의 독립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다.

이낙연 총리의 검찰 비판 발언도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이 총리는  "검찰이 정치하겠다고 덤비는 것은 검찰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며 "광범위한 압수수색에 들어가 국회 인사 청문회 절차에 영향을 준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조 후보자 청문회가 우왕좌왕한 게 검찰 수사 때문이었나?  검찰이 범죄 혐의를 수사하는 것이 어떻게 '정치하겠다고 덤비는 것'인가? 지금까지 검찰은  이해찬 대표 말처럼  주요 사건 수사는 청와대에 사전 보고하고   청와대  지시를 받고  했다. 이낙연 총리 말처럼 정치권 눈치 보며 알아서 기는 식으로 해왔다. 그래서 검찰은 권력의 시녀라는 더러운 이름을 벗지 못했고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런 검찰을 뜯어고치자는 것이  바로 검찰 개혁이다. 

현 정권 사람들은  검찰 개혁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정작 검찰이  과거처럼 정치적 고려 하지 않고, 정치권 눈치 보지 않고 법대로 하겠다고 하자 검찰에 집단 공격과 압박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말로는 검찰 개혁 운운하면서 실제로는 과거처럼 정권 시녀 노릇을 계속 하라고 검찰을 몰아치는 것이다. 현 정권이 말하는 검찰 개혁이라는 게 얼마나 가식적인 것인지 보여준다. 이러니 검찰 개혁이 될 리가 있겠는가.

◆임명권자에 대한 고마움 평생 잊기 어렵다는데···

이제 윤 총장이 돌파해야 할 장애물은 분명해졌다. 첫째는 윤 총장의 초심(初心, 처음에 먹은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도 있는 유혹이다. 윤 총장의 초심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 말 속에 담겨 있다. 과거 법조계의 신망을 한몸에 받은 한 검찰총장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총장이라는 자리는 참 어려운 자리입니다. 임명권자(대통령) 눈치도 봐야 하고 국민 눈치도 봐야 하고요.” 법조계의 신망을 받았던 검찰총장마저 이럴 정도다.

누구든 자신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대통령에 대한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윤 총장도 사람이다. 그래서 초심이 흔들릴 수 있다. 윤 총장은 이 초심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초심을 잃고 임명권자 눈치를 보면 ‘법대로’ 수사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초심을 끝까지 지켜 국민 눈치를 보면 법대로 수사는 불가피하다.

또 하나  장애물은 집권세력과 그 지지세력의 압박이다.  이것이 더 큰 장애물이다. 현 정권 열성 지지자들은 자기 편을 비판하면 그게 누구든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저질’ ‘적폐’ ‘악당’에 ‘인질범’ ‘청산 대상’ 등 끝이 없다.  윤 총장에게 엿을 우편으로 보내 '엿 먹어라' 하며 조롱하기도 한다.  청와대 관계자의 입에선 '20~30군데 압수수색은 내란 음모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집권세력과 지지세력은 앞으로 수사 상황에 따라 더 집요하고 노골적으로 윤 총장을 압박하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윤 총장이 청와대와 법무부장관에게 공개 반박한 것은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윤 총장이 끝까지 그런 결기를 지켜 정권의  압박을  이겨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조국 후보자는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압수수색을 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은 아직 수사 대상에 오르지 않았음을 강조한 말이다. 실제로 검찰은 조 후보자의 집과 사무실, 휴대전화는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 (조 후보자에게) 아무런 피의 사실이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검찰 수사에서 조 후보자의 위법 사실이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국민, '국정 농단' '사법 농단' 수사 때의 집요함 보여줄지 주시

검찰 수사 결과가 이들의 말처럼 조 후보자에게 위법 사실이 없는 것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우에 검찰은 국민을 납득시켜야 할 무겁고 어려운 부담을 지게 된다. 검찰은 '국정 농단' '사법 농단' 수사 때 전 정권 핵심 인물이나 대법원장과 판사들을 직권남용, 비밀 누설죄로 수사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들에게 직권 남용, 비밀 누설죄를 적용한 것은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과잉 수사, 별건 수사, 포괄 수사라는 등의  비판도 쏟아졌다. 그럼에도 검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결국 관련자들을 법정에 세웠다. 그런 집요함이 조국 후보자 수사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면 국민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가 무거운 혐의는 다 빠지고 형식적으로 가벼운 혐의 몇 가지만으로 조 후보자를 기소하는 것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 경우에도 검찰이 무거운 혐의를 끝까지 입증해 보려고 얼마나 치열하고 집요하게 수사했는지에 따라 국민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어떤 수사 결과가 나오든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면 검찰이 뭐라고 변명해도 검찰은 실패한 것이다. 국민들은 윤 총장이 자기 초심을 지키지 않았거나 집권 세력 압박에 굴복했다고 여길 것이다. 지금 윤 총장은  정권이 아니라 국민이 심판관인 시험대에 올라 있는 것이다. 윤석열 이름 세 글자가 헛이름으로 기억되고 말 것인지 아닌지는 윤 총장 자신에게 달려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검찰이 권력의 시녀에서  벗어날지, 영영 벗어나지 못할지도 윤 총장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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