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징벌적 손해배상법(안)의 입법 배경
가습기 살균제 사태나 디젤 차량 배출가스 조작을 저지른 폭스바겐 사태 등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위법행위를 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불법행위에 대한 억제,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배상이 이루어지도록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인정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다시 말해 현행 손해배상제도는 현실적으로 발생한 구체적 손해를 금전배상의 방법으로 전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위와 같이 산업사회의 진전에 따라 공동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대규모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에서 일부 특정 유형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 있지만 적용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며 외국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고 하기에는 매우 빈약한 실정이다.
이에 「민법」 및 「민사소송법」에 대한 특례로서 불법행위 중 타인의 권리나 이익을 침해할 의도를 가지고 결과 발생을 용인하거나 그 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징벌적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징벌적 배상제도를 도입
하고자 하는 입법안이 제시되고 있다.
즉, 박영선의원이 징벌적 배상법안(2000283)을 2016년 6월 16일에 발의하였으며, 금태섭의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법률안(2003400)을 2016년 11월 8일에 발의하였고, 박주민의원이 징벌적 배상에 관한 법률안(2006302)을 2017년 3월 21일에 발의하였다. 이 세 법안 모두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어, 제안설명과 검토보고를 듣고 대체토론을 마친 다음 소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 법률안들은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사항이 유사하나, 박주민의원안은 징벌적 배상액을 전보배상액의 2배로 하고 타인의 생명ㆍ신체에 피해를 준 경우 가중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등 일부 다른 점이 있다.
우리 법원은 하급심 판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보통법(Common Law)상 인정되는 구제방법으로 우리의 민사법 체계에서 인정되지 아니하는 형벌적 배상 형태라고 하였다.
한편 2004년 말에 구성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여부를 검토하였지만, 연구부족, 공론화 미비 등을 이유로 도입하지 못하였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지 않았지만, 2011년 「하도급 거래 공정에 관한 법률」개정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이 최초로 도입된 후 현재 특정분야에 한하여 개별 법률에 징벌적 배상제도가 제한적으로 도입되어 있다.
가. 법원행정처
법원행정처는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나, 해당 제도의 장ㆍ단점을 면밀히 살피고, 우리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여건 및 국민의 법 의식에 맞는 것인지 충분히 논의하여 입법과정에서 결정될 문제로 보고 있으며, 다음 사항에 대한 추가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첫째, 민사 및 형사 절차가 엄격히 분리되어 있고, 배심제도가 없는 대륙법계 국가에서 징벌적 배상을 전면적으로 도입한 사례가 없으므로, 현행 손해배상 법제와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둘째, 징벌적 배상에 따른 피해자의 횡재 소득(Windfall Gain)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셋째, 행정적 규제와의 중첩 여부를 확인하여 기업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민사상 손해배상 법제, 형사적 처벌, 행정 규제 시스템이 합리적으로 함께 정비될 필요가 있다.
나. 법무부
법무부는 징벌적 배상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데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중검토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우발 이익의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우리 민법의 손해배상에 관한 근본원칙 및 제도들과 조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 민법 등 일반법에서 징벌적 배상을 인정하지 않고, 분야별로 필요성 등을 검토하여 개별법을 통해 징벌적 배상을 제한적으로 도입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현행 입법태도와 조화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한다. 셋째, 엄격한 증거능력을 요하는 형사절차와 달리 실질적인 처벌의 의미를 갖는 징벌적 배상책임이 민사소송의 완화된 절차에 따라 인정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 현행 민ㆍ형사 소송 체계와 조화되기 어렵다고 한다.
다. 한국소비자원
한국소비자원은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은 소비자 피해구제의 실효성 제고 및 법 위반 억지 측면에서 기업의 불법행위를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전보배상의 원칙, 민ㆍ형사책임 분리, 과잉배상금지의 원칙 등 우리 법체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징벌적 배상을 손해배상의 원칙 중 하나로 전면 도입하는 것은 위헌적 소지 및 우리나라 법체계와 부조화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부적절하다고 한다. 즉, 징벌적 배상제도의 전면적 도입은 이중처벌금지의 원칙, 헌법상 과잉처벌금지의 원칙 등을 위반할 소지가 있고, 영비법계와 다른 법체계로 성립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법체계ㆍ법질서의 정합성을 해칠 우려가 있으며, 피해자에 대하여 부당이익을 부여하므로 남소의 우려가 있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4. 징벌적 배상법(안) 도입 관련 SWOT 분석
가. Strength
우리나라의 경우 위자료가 지나치게 적고, 소비자 피해 사건에서 정신적 손해가 입증되기 어려워 손해배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손해배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바, 징벌적 배상제도가 일반적으로 도입되면 완전한 손해보전이 가능할 수 있다. 아울러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업자 등에 대하여 실손해배상 외에 징벌배상을 부과할 수 있어 사업자 등의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제재 및 억제할 수 있다. 나아가 고의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형사책임의 입증요건이 엄격하여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나, 형벌을 부과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한 영역에서 징벌적 배상이 효과적이면서도 적절한 제재수단이 될 수 있다.
나. Weak
징벌적 배상제도는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보다 더욱 많은 이익(우발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는데, 우리 민법
은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할 뿐 우발이익의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징벌적 배상제도는 우리 민법의 손해배상에 관한 근본원칙 및 제도와 조화되기 어렵다. 비교법적 측면에서 대륙법계 국가에서 징벌적 배상제도를 전면 도입한 사례가 없다. 즉, 징벌적 배상제도는 영미법계의 보통법에 따라 인정되어 왔으나,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법체계상 이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인 나라가 없으며, 영미법계인 영국은 공무원의 억압적 행위 등 세가지 영역
에서만 징벌적 배상을 인정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최근 입법 및 판례를 통하여 그 적용을 제한하고 있는 추세이다.
다. Opportunity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업자 등에 대하여 징벌적 배상을 부과함에 따라, 공정하고 양심적으로 기업 활동을 수행하는 사업자를 간접적으로 보호할 수 있으며, 이들 사업자들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울러 사업자 스스로도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받지 않기 위하여 위법ㆍ부당한 행위를 제재 및 억제할 수 있다.
라. Threat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일반법으로 규정하는 경우 우발이익 기대에 따른 남소 발생 가능성으로 기업활동이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 가능성에 대비한 보험 등 관련 비용의 증가가 예상되며 이러한 비용이 제품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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