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경자년의 작은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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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입력 : 2020-01-01 09:00
수정 : 202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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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와 지리를 좋아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땅의 모습과 그 땅의 생성의 역사, 그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가 내 관심을 끄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렸을 때부터 지도책을 펼쳐놓고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세계지도를 보면서 ‘저 나라의 지형은 왜 저렇게 생겼을까? 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펼치곤 하였다. 그러던 나의 눈에 아프리카 지도는 좀 이상하게 보였다. 아프리카 나라들 중에는 국경선이 다른 대륙의 나라들과는 달리 직선으로 그어져 있는 곳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도 그렇지만... 경계라는 것이 산맥이나 강 같은 자연적인 경계에 의하거나, 오랜 세월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면, 이렇게 일직선으로 경계가 그어진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커가며 세계 역사를 배우면서, 아프리카의 일직선의 경계는 아프리카를 분할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그곳에 살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들의 이해타산과 정략적 협상만으로 지도상에서 그냥 일직선의 경계를 그은 것이다. 그 결과 한 부족이 두 나라에 쪼개져 살게 되거나, 전혀 이질적인 부족들이 하나의 나라에 살면서 서로 주도권을 놓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아프리카의 비극은 이렇게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기 멋대로 뿌려놓은 오만과 탐욕의 씨앗에서 배태된 것이다.

아프리카에만 이런 비극의 선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이런 비극의 선이 있었다. 짐작하듯이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대국들의 의사에 의해 그어진 38선이 바로 그 비극의 선이다. 이 38선을 경계로 전혀 이질적인 정치체제가 들어선 것이 6.25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을 몰고 왔고, 지금까지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이 대치하면서 우리 민족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극의 앞날을 예견하셨던 것일까? 백범 김구는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하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애통해하는 마음이 더 컸다. 심혈을 기울여 육성한 광복군이 한반도에 상륙하여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않고 일본이 빨리 항복한 것에 애통해하셨던 것이다. 광복군이 활약할 수만 있었던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우리도 전후 협상에서 떳떳하게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백범은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여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해 우리는 아무 발언권도 없이 강대국들에 의해 우리 운명이 결정될 것을 걱정하고 애통해하셨던 것이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지 벌써 66년이 지났다. 그렇지만 지금도 우리 민족은 비극의 38선이 몰고 온 이데올로기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남북은 물론 남한 내에서도 서로 상대를 전혀 이해하려들지 않고 이쪽은 저쪽을 향하여 종북세력이니 빨갱이니 하며 적개심을 감추지 않고, 또 저쪽은 이쪽을 향하여 수구꼴통이라며 혐오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아마 우리 민족이 하나 되기를 원치 않는 주변국들에서는 남북이 서로 적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남쪽에서도 좌우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속으로 즐기고 있을 둣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어진 38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이런 38선이 그어지게 한 일본 제국주의에 그 원인이 있다. 일제 36년의 지배는 단순히 그 36년의 식민생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이 하나 되지 못하고 이렇게 서로 대립하는 것에 계속 물을 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배는 이렇게 우리가 이데올로기의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에만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식민지 청산을 제대로 못하여 반일 종족주의니, 토착왜구니 하면서 우리끼리 다투고 있는 것이, 일제가 남긴 치욕스런 식민지 잔재다.

그러나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강대국들이 38선을 그었느니, 일제 식민지배의 독소가 지금도 해악을 끼치고 있니 하는 등 우리 외부의 원인만 비난하고 있으면 뭐하는가? 이 모든 것이 결국 우리가 힘이 약하여 일어난 것이 아닌가? 결국 모든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극에서 벗어나는 것도 결국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제3자들이 우리 자신이 이렇게 갈라져 싸우는 모습을 즐기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일본은 우리 보고 원래 반도인들은 그 모양이라며 조롱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반도는 대양으로 뻗어나가고 대륙으로 뻗치는 그런 웅혼한 꿈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좁은 반도 안에서 이리 저리 나뉘어 우리끼리 다투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면 좌우로 나뉜 우리 사회가 하나가 되고, 남북이 하나 되어 한반도의 기상을 대륙과 대양으로 뻗쳐나갈 것인가? 선택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2020 경자년에는 이런 미래의 한반도에 대한 꿈이 헛된 망상이 아니라, 실낱같더라도 그런 가능성이 조금은 비춰지는 그런 해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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