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불기소 결정문 공개, 검찰 통제냐 여론 재판이냐

  • 검찰개혁위원회 권고에 '기대 반 우려 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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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10 14:28
수정 : 2019-12-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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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이하 위원회)는 12월9일 검찰이 국회의원, 판·검사, 장·차관 등이 관련된 중요 사건을 수사한 뒤 이들을 불기소할 경우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할 것을  권고했다. 불기소 결정문이란 사건의 개요, 기소하지 않은 이유 등을 기록한 문서를 말한다. 위원회는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면 검찰의 불기소 이유가  타당한지를 외부에서 감시할 수 있어 검찰권의 자의적 행사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수단이라는 것이다.

불기소 결정문 공개 대상은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 등 국가의 정무직 공무원 ▶지방자치단체의 장, 지방의회의원 등 지방자치단체의 정무직 공무원 ▶법관·검사 ▶4급 또는 4급상당 이상 국가공무원 및 지방공무원 관련 사건▶기타 언론에 보도되어 사회적 이목을 끈 중대한 사건이다. 위원회는 불기소 결정문을 검찰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검색이나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검찰이 사건을 수사한 뒤 기소하면 재판에서 유무죄를 가리게 된다. 검찰이 유죄 증거를 확보해서 기소했는지 심증으로만 기소했는지, 수사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켰는지 등 검찰권의 적정한 행사 여부를 재판을 통해 검증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불기소한 경우에는 재판 절차가 없어  검찰권이 적정하게 행사됐는지를 법원을 통해서는 검증할 수 없다. 불기소 결정문은 외부에 공개되지도 않는다. 고소·고발인이나 피고소·피고발인 등 사건에 직접 관련된 사람만 검찰에 불기소 결정문 열람 신청을 해서 볼 수 있다.

따라서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면 일반인들도 불기소 이유를 알 수 있고 불기소 결정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검증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해져 검찰권 행사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다. 위원회는 특히 불기소 결정문에 공개 대상 피의자의 변호인을 기재하도록 했다.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가 불기소 결정이 나오도록 부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할 경우 위원회가 주장하는 민주적 통제와 투명성 강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우선 불기소 결정문만 보고 불기소가 타당한지 아닌지를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불기소 결정할 경우 그 이유는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가 없는 경우다. 또 하나는 법률적으로 볼 때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다. 그런데 증거가 있는지, 범죄가 성립하는지는 수사 기록 전부를 모두 살펴봐야 판단할 수 있다. 불기소 결정문만 보고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기소 결정문을 공개하면 상식과 법리보다 여론으로 불기소의 타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여론 재판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당장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불기소 결정이 잘못됐다'는 청원이 오를 것이다. 그 청원에 동참할 것을 유도하는 여론전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청원 참여자가 많을수록 불기소 결정이 잘못됐다는 식의 주장이 난무할 것이다.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도 크다. 우리사회는 매사에 좌우, 보수와 진보, 현 정권과 전 정권 식의 진영 논리로 나뉘어져 싸우고 있다. 똑같은 불기소를 놓고 우리 편에 대해선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상대 편에 대해선 부당하다고 주장할 게 뻔하다.  불기소 된 사람이 현 정권 인사라면 전 정권 지지자 측에서, 전 정권 인사라면 현 정권 지지자 측에서 불기소 결정이 잘못됐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사회가 특정인의 불기소 결정을 놓고 진영 싸움판으로 변하고 말 것이다

현재 법에도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통제하는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소인은 자기가 고소한 사건이 불기소되면 법원에 재정 신청을 할 수 있다. 법원은 불기소가 부당하다고 인정하면 검찰에 기소 명령을 내리게 된다. 고소인이 헌법재판소에 불기소 결정을 취소해 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낼 수도 있다. 고발인의 경우엔 공무원의 직권남용 범죄,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나 폭행 범죄, 부패방지법에 따른 매수 및 이해유도죄 등 일부 선거 범죄에 한해서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면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불기소 결정문 공개 대상이 되는 고위 공직자 범죄 고발 사건을 모두 재정신청 대상에 포함시키면 이들에 대한 불기소 통제를 좀 더 강력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적 통제’에서 ‘민주적’은 ‘다수 국민의 뜻에 의한’이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현재의 검찰시민위원회를 더 강화하고 활성화시키는 방법도 있다. 시민위원회는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일종의 배심원 제도로, 검사는 필요 시 위원회를 소집해 불기소 처분의 적정성 여부를 심사하게 할 수 있다. 시민위원회가 기소 의견을 내도 검사가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이 제도를 크게 보완해서 시민위원회 심사를 활성화하고 일정한 경우 검사가 반드시 시민위원회 의견을 따르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위원회 제도는 불기소 결정문을 외부에 공개하는 경우 벌어질 여론 재판과 진영 싸움을 피할 수 있다. 동시에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통해 검찰권 행사를 통제할 수 있다. 시민위원회가 검사의 불기소 결정을 무조건 승인하는 '고무 도장'이 되지 않도록 제도를 잘 만들고 운영을 잘 하면 민주적 통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민주와 여론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일을 민주와 여론으로 할 수는 없다. 유무죄를 다루는 형사 사법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무죄는 증거와 적법절차에 따라 판단할 일이지 여론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불기소 결정문 공개를 ‘기대 반 우려 반’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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