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의 법률이야기] 건물주와 세입자 간 ‘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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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명한 식당의 사장님이 가게를 정리하고 싶다며 법률상담을 요청했다.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라 식사시간에는 항상 고객들로 붐비는 곳이기에 폐업을 준비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장님에게 고객이 많아 수익이 많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돌아온 답변은 전혀 달랐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월세 때문에 수익은 점점 줄고 팔아도 남는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식당 사장님은 임대료 상승을 견디다 못한 영세상인이 자신이 발전시킨 상권에서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겪고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2000년대에 들어서 뉴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단어 중 하나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사실 도시의 발전과정을 설명하는 사회학 용어로서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용어는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 단어를 주로 월세 상승으로 세입자가 쫓겨나는 부정적인 상황을 가리킬 때 사용하고 있다.

세입자가 장사를 잘해서 상권이 발전하고 거리가 붐비기 시작하면 건물주가 세입자에게 높은 폭의 월세인상을 요구하게 되고,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세입자는 결국 다른 골목으로 떠나게 된다. 언론에서는 주로 이와 같은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표현한다.

상가에 관련된 소송을 많이 하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상가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얼마 전 일본을 다녀온 친구는 “일본에는 유명한 초밥집의 경우 100년을 넘게 장사를 하는 곳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대를 이어 오랫동안 장사를 하는 가게가 없는지 모르겠다”며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일본과 같은 가게가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법이 세입자가 장기간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대를 이어 장기간 가게가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국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요구권을 최초임대차계약을 한 날로부터 5년까지만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세입자가 아무리 가게에 공을 들이고, 영업을 열심히 해 상권을 발전시켰어도, 건물주가 5년이 지나 나가달라고 하면 나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 법에 의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에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대부분은 장기간의 임대차를 유도하는 법제를 운영하고 있다. 상가임대차의 경우 9~15년 동안 내지는 무기한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제도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방지된다.
그렇다고 선진국에서 세입자만을 무턱대고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입자가 장기간 안심하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영업기간을 보호를 해 준 후, 장기임대차로 인해서 건물주에게 발생하는 불이익은 임대료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제도를 통해 건물주의 소유권행사를 통한 투자이익 확보와 세입자의 영업권 사이의 균형을 맞춰주고 있는 것이다.

OECD 국가들의 상가 임대차 관련 입법례는 근래 들어 자주 회자되는 ‘상생(相生)’의 원리를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 ‘상생’이란 서로가 서로를 살린다는 의미다. 서로가 살지 않으면 경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보이는 쪽도 결국 살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웠다.

미래학자들은 상생의 원리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져다 줄 것이며, 21세기 인류를 이끌 지침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세입자와 건물주 간의 상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국회도 충분히 인식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5월에는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호해주는 입법을 진행해 세입자와 건물주 간의 상생을 도모한 바 있다.

개정되기 이전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가 투자한 비용이나 영업활동의 결과로 형성된 지명도, 신용 등의 경제적 이익이 임대인의 계약갱신거절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고 침해되는 것을 그대로 방치했다.

그 결과 건물주는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세입자로부터 직접 권리금을 받거나, 기존 세입자가 형성한 영업적 가치를 아무런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었다.

반면, 세입자는 장사를 계속하기 위해 새로운 곳을 구해서 권리금을 지급하고 시설비를 다시 투자하고 지명도 형성을 위해 상당한 기간 동안 영업 손실 입었다.

근로자에 비유하자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한 푼의 퇴직금도 없이 거리로 쫓겨난 후 다시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권리금이란 돈을 누군가에게 지불하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세입자가 건물주에게 권리금을 주장할 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회는 2015년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을 개정했다. 아직은 세입자보호에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그 입법취지는 환영할만하다.

건물주가 임대기간 만료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쫓고 세입자가 했던 영업과 같은 영업을 하거나, 다른 세입자를 구해서 건물주가 권리금을 받는 등의 ‘권리금약탈행위’는 근절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건물주가 얻을 수 있는 임대료수익도 줄게 된다. 세입자가 살지 않으면 고액의 월세를 내 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나서 서로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관계로 가야 한다.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다 보니 한국에는 ‘생계형 창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하루 평균 120곳이 개업하고, 이 중 60곳이 문을 닫는다는 통계는 생계형 창업이 생존을 건 모험이라는 것과 골목상권의 현실이 얼마나 살벌한 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자영업이 한참 불황인 가운데 ‘갓물주’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매년 임대료 인상을 요구할 수 있고, 계약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이렇게 건물주의 임대수익이 증가하면 해당 상가의 매매가격은 상승하고 결국 상가투자의 성공사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가투자의 성공을 자세히 살펴보면, 임대인의 수익증가는 임차인의 부담에 상당 부분을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투자의 성공이 상대방의 노력 위에서 실현되고 있고, 그 과정에 시장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면 최소한의 통제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이 필요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웠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공약’이 실제로 입법돼 건물주와 세입자간에 상생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하연 변호사(법무법인 명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