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님재판된 소액재판...판결에 이유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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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2-10 10:37
수정 : 2020-12-1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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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는 2019년 1월 B회사에 약정금 소송을 당했다. 재판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9단독에서 진행되었다. 1년여의 소송 끝에 해당 소송을 지휘한 판사는 강제조정결정을 내렸다. 강제조정내용은 A씨는 B회사에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강제조정이란 재판부가 직권으로 내리는 결정을 말한다. 당사자는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판사는 변론을 종결하고,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A씨가 B회사에 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강제조정 때와 마찬가지로 판결의 이유는 없었다.

현행 소액사건심판법은 소액사건의 범위를 대법원 규칙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근거한 소액사건심판규칙은 소송가액 3000만원 이하의 제1심 민사 사건을 소액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사 사건의 경우에 소송가액이 3000만원 이하의 1심 민사 사건을 소액사건, 3000만원 초과 2억원까지는 단독사건, 2억원 초과는 합의부 사건으로 분류한다.

소액사건으로 분류되면 간이절차에 따라 진행되는데 소액사건심판법 제11조의2 제3항은 판결문에 이유를 기재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소액사건심판규정은 소액사건에서 판결 이유 없는 판결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더하여 대개의 소액재판 판결문은 사실이나 쌍방 주장을 나열하지 않고 원고 승·패소에 대한 주문 한 줄만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이유로 패소한 당사자는 왜 패소했는지 몰라 억울해하는 경우가 많다.

소송 가액이 작다고 하여 억울함이 덜한 건 아니다. 금액이 많지 않은데도 소송비용을 감수하면서 소를 제기했다면 그만큼 절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판사가 어떠한 이유 설명 없이 판결을 내린다면 사법 서비스를 받는 국민의 처지에서는 보통 억울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소액사건 처리 실무는 높은 상소율로 돌아오거나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낳게 한다. 현재와 같은 소액사건 처리 방식은 분쟁 해결이라는 재판의 본질적인 역할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있다.

◇ 법관 수를 늘리고 소액사건의 범위를 줄여야

사법부는 법관들의 부담을 줄여준다며 소액사건 적용 범위를 늘리고 판결서도 간략하게 쓰거나 안 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소액사건의 범위를 3000만원까지로 넓혔다.

그러나 재판을 받는 국민 입장에서는 대충 한 재판을 받은 느낌인 데다 판결 이유가 없거나 한두 줄짜리로 상당히 부실한 판결서를 손에 쥐게 된 경우에 소송이 무용하다는 느낌과 함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된다.

패소한 사람이 적어도 자신이 왜 패소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하고, 잘 쓴 판결문을 통해 소송 당사자 스스로 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상소를 줄인다. 소송경제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현행 소액재판 제도에 대하여 이은성 변호사는 “현재 법원 재판의 70%가 소액사건인데 그 이유는 선진국들이 보통 500만~600만원을 소액사건이라 생각하는 데 반하여 우리는 3000만원까지 소액사건으로 취급한다”면서 “1심에 충실하고, 항소심을 사후심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1심 판결문이 더욱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하여 “사법자원이 부족하면 법관을 더 충원해서 내실을 다질 생각을 해야지 ‘효율적 운영’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에 소속된 판사는 약 400명에 이르지만 민·형사 단독재판을 맡은 판사의 수는 각각 62명, 20명에 불과하다. 특히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민사사건의 경우에 30만건이 넘는 가운데 민사 단독 판사 한 명에 접수된 사건이 연평균 5000여건을 상회한다. 즉 민사단독 판사의 경우 하루 20건 꼴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심리를 충실히 하고, 당사자가 승복할 수 있는 판결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판사의 수를 증원하여 업무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지적한다.

2019년 3월 1일 기준 우리나라 판사의 수는 2918명으로 독일(2만여명), 미국(3만여명), 프랑스(6000여명) 등 사법 선진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다.

결국, 사법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법관의 수를 증원해야 한다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주장한다.

더하여, 법조계 일각에서는 소액사건의 범위를 줄여 누구나 재판에 이르렀을 때 이해할 수 있는 충실한 판결문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양승우 변호사는 “현행 소액 민사소송은 시일도 오래 걸리고, 판결 이유도 알 수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사법에 대한 신뢰도는 OECD 34개국 중 30위에 이를 정도로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가운데,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격언과 같이, 국민이 판결서를 받을 때 그 판결 이유를 알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어 국민에 신뢰받는 사법부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이유 없는 판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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