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신뢰받는 사회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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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입력 : 2020-10-17 09:00
수정 : 2020-10-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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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인간 관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서로에 대한 믿음, 신뢰일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사랑을 얘기하고 불교에서는 자비를 얘기하는데, 사랑과 자비도 그 밑바탕에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기업을 비롯한 여러 조직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역시 신뢰다. 언뜻 생각하면 조직 관계에 있어서는 신뢰보다는 능력이나 정보, 기술 등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신뢰의 속도(The Speed of Trust)>의 저자 스티븐 M. R. 코비는 조직에 있어서도 신뢰가 제일 중요하다고 한다. 코비는 신뢰가 낮은 조직에서는 사람을 믿지 못하기에 이를 규제하기 위한 번거로운 규칙, 절차를 마련하고 복잡한 결재 과정을 거치며 이중 삼중으로 불필요한 중복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서로를 믿지 못하기에 조직 내부에 갈등이 생기고 업무에 태만하며 속임수와 부정도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뢰가 높은 조직에서는 수월한 의사 소통으로 효과적인 협력과 실행이 있고, 그러다보니 창의력이 발휘되고 혁신이 활성화하며 성장이 가속화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신뢰가 있으면 업무의 속도는 빨라지면서도 비용은 오히려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비는 책 제목을 <신뢰의 속도>라고 하였다.

코비는 이러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투명하게 행동하라, 책임 있게 행동하라 등 13가지의 행동원칙을 제시하는데, 그중에서 제일 먼저 드는 것이 ‘솔직하게 말하라’이다. 진부하게 들리는 격언일지 모르지만 정직이 최상의 정책이니, 코비도 ‘솔직하게 말하라’를 제일 앞에 둔 것이 아닐까 한다. 무릇 신뢰를 높이려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솔직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 내 눈에 먼저 들어오는 원칙이 ‘잘못은 즉시 시정하라’이다. 이 역시 솔직함과 연결되는 것이리라. 오프라 윈프리가 자신이 진행하던 쇼 프로에서 추천하는 책은 금방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한번은 오프라가 제임스 프레이(James Frey)의 책 <100만 개의 작은 조각>을 추천하여, 이 책 역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그런데 나중에 논픽션으로만 알았던 이 책의 내용이 프레이가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오프라는 프레이를 자신의 쇼에 출연시켜 잘못을 인정하게 했고, 자신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소개한 것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깊이 사과를 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미국의 핵잠수함이 하와이 해안 근처에서 일본 어선과 충돌해 9명의 어부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조사 결과 지휘 계통에 여러 사람이 있었고 젊은 장교와 승무원이 저지른 많은 실수들이 함장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함장 스콧 워들(Scott Waddle)은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법률고문이 만류함에도 자신이 지휘관으로서 모든 책임을 졌다. 그 때문에 워들은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전역할 수밖에 없었는데, 전역 후 워들은 일본으로 가서 희생자 가족에게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솔직한 사과와 책임 있는 행동으로 오프라나 워들에 대한 신뢰는 상승하였고, 사람들로부터 더욱 존경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솔직함과 책임질 줄 아는 행동으로 오히려 신뢰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학 스펙 쌓기와 추미애 현 장관이 아들의 휴가 특혜 논란이 생각난다. 조 전 장관으로서는 딸의 스펙 쌓기에 대해 또 추 장관으로서는 아들의 휴가 특혜에 대해 아무런 법적 잘못이 없다고 생각됨에도, 이렇게 온통 야단법석을 떠는 것에 억울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진영논리에 휘말려 이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비난만 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우스갯소리로 일반 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말이 있다. 실정법 위반의 문제를 떠나서 국민정서법의 눈으로 볼 때에도, 과연 사람들이 진실을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을 비난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녀들이 좋은 대학 들어가기를 소망하는 것은 보통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조 전장관 부부도 그런 부모 심정이기에 가능하면 아빠 챤스, 엄마 챤스를 이용하여 딸이 유리한 스펙을 쌓을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다. 설사 본인들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그런 위치에 있었기에 딸이 평범한 학생들보다는 스펙 쌓기에 훨씬 유리하지 않았겠는가? 생각해보라! 고등학생 자식이 의학 논문의 공동 제1 저자로 올라가는 기회를 줄 수 있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보통의 부모들은 자식에게 그런 챤스를 줄 수 없다. 그러니 그런 챤스를 줄 수 없었던 부모나 그런 챤스를 쓸 수 없었던 젊은이들은 조 장관 부부의 그런 행동에 분노하고 좌절한 것이다. 더욱이 조 전 장관은 그 전에 깨끗한 진보 지식인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었었고, 또한 본인 자신이 그런 기회의 불공정함에 대해 비판을 하여 왔기에 더욱 실망감이 큰 것이다. 추 장관 아들의 경우에도 군대를 다녀온 대한민국의 많은 남성들, 그리고 현재 군 복무중이거나 곧 군대를 가야 할 젊은이들의 눈에는 아무리 병 때문이라지만 추 장관 아들이 휴가를 그렇게 한꺼번에 많이 쓸 수 있고, 또 휴가가 끝나도 복귀하지 않고 전화로만 휴가를 연장한다는 것이 반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비록 규정상으로는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일반 병사가 휴가가 끝났는데 부대에 복귀하지 않은 채 전화로만 휴가 연장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니 일반 대한민국 남자들의 정서에는 이것이 추 장관의 엄마 챤스에 힘입은 것으로 비치는 것이다.

처음 이런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이들이 ‘내가 무슨 잘못을 하였단 말이냐?’ 하며 뻗대지만 말고, 빨리 아빠 챤스, 엄마 챤스를 사용한 것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였으면 어떠했을까? 마음이 따뜻한 우리 민족은 쉽게 분노하기도 하지만 쉽게 아픈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줄도 알지 않는가? 이들이 솔직한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용서를 구하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의 부모 마음에 감정 이입되어 논란이 이렇게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의 그런 솔직한 행동으로, 그들도 오프라 윈프리나 스콧 워들처럼 이전보다 더 사람들의 신뢰를 받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런 문제는 조 전장관이나 추 장관만 탓할 것도 아니다. 도대체 논란이 된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 중에 진솔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요즈음 우리는 너무 믿음이 실종되고,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사사건건 대립하고, 다툼을 상호 조금씩 양보하여 화해로 끝내기보다는 걸핏하면 고소, 고발을 하고 다툼을 법정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법원, 검찰뿐만 아니라 이해가 걸려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살벌한 구호를 적은 펼침막이 걸려있는 것을 보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또한 정부의 코로나 방역도 믿지 못하겠다며 검사도 거부하고 확진되어도 자신의 동선(動線) 공개를 거부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코로나 피해를 입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하여 이런 사회적 불신 때문에 지출하지 않았어도 될 사회적 비용 지출이 너무 많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사회적 불신으로 인한 비용을 다른 생산적인 곳으로 돌렸다면 우리나라 경제 발전 수치가 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스티븐 M. R. 코비가 쓴 책 <신뢰의 속도>를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불신의 시대를 마감하고 신뢰의 속도가 점점 높아져 가는 그런 사회가 빨리 오기를 소망해본다.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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