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윤석열 총장과 닮은꼴 '감사원장의 고군분투'

  • 중립성·독립성 지키키며 살아 있는 권력 감사하겠다는 최재형 원장
  • 여권은 "사퇴·탄핵" 공세… "본분 충실한 것이 개혁" 대통령 말 무색
  •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 험한 길, 윤석열 검찰총장에 이어 또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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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24 16:20
수정 : 2020-09-24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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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때 온 국민의 주목을 받으며 정국의 중심 인물이 됐었다. 요즘 그 정도로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윤 총장과 비슷한 이유로 주목을 끄는 인물이 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다. 최 원장은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내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여권 인사들은 최 원장의 자진 사퇴와 탄핵을 거론하며 압박하고 있다. 돌아가는 모습이 윤 총장의 경우와 비슷하다.

윤 총장과 최 원장 사례를 보면 국가 기관이 제 기능을 다하는 데 그 책임자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자세를 갖느냐가 얼마나 중요힌지를 느끼게 된다. 검찰과 감사원처럼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의 독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관일수록 더 그렇다. 검찰과 감사원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은 제도나 법 규정 탓이 아니라 결국 ‘사람’ 때문임을 윤 총장과 최 원장 사례는 보여준다.

최재형 감사원장, 15년 만에 '청와대 기관운영감사' 부활 

최재형 감사원장은 감사 업무에서 법과 원칙을 지키고 있다. 우선 사각지대에 있었던 청와대 부속 기관들을 기관운영 감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2003년 이후 청와대 부속 기관들은 감사원 기관운영 감사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최고 권력에 대해 감사원 스스로 몸을 사렸던 것이다. 그러나 최 원장은 ‘권력기관에 대한 감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대통령 비서실 ·경호처·국가안보실을 2018년부터 감사 대상으로 부활시켰다. 올해부터는 정책기획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국가균형발전위원회·일자리위원회 등 4개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까지 감사 대상에 올렸다.

감사원은 9월 17일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대통령경호처와 4개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를 대상으로 기관 정기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은 올해 어린이날 대통령 영상 메시지를 제작하면서 정식으로 계약을 맺기도 전에 업체에 5000만원짜리 용역을 주고 영상을 납품받은 뒤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감사원은 사후 계약 체결은 국가계약법 위반이라며 주의하라고 통보했다. 다른 곳도 아닌 대통령 비서실에서 법을 위반한 것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은 법령과 다르게 위원장이나 부위원장에게 돈을 지급했다. 균형발전위원회는 작년 1월부터 올 1월까지 비상임인 위원장에게 월 400만원씩 5200만원을 전문가 자문료 명목으로 줬다. 법령에는 균형발전위원회 비상임 위원장에게 자문료를 월급처럼 고정적으로 줘선 안 된다고 돼 있다. 일자리위원회는 2017년 6월부터 올 2월까지 각각 부위원장을 맡았던 2명에게 월 628만원과 641만원씩 총 5500만원과 1억4,000만원을 줬다. 법령에는 부위원장은 자료 수집이나 현지 조사 등을 했을 때만 사례금을 줄 수 있게 돼 있다. 사례금을 월급처럼 정기적으로 주면 안 되는 것이다. 돈을 받은 위원장이나 부위원장은 공교롭게도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일한 문 대통령 측근들이다.

최 원장은 공석중인 감사위원 제청 과정에서도 법과 원칙을 지키려 했다. 청와대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감사위원으로 낙점하고 최 원장에게 제청을 요구하자 최 원장은 ‘친여 인사’라는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차관은 작년 9월 검찰이 조국 장관을 수사할 때 윤석열 총장을 수사 지휘 라인에서 빼고 별도 수사팀을 만드는 방안을 대검에 제안했던 사람이다. 청와대는 최 원장이 판사 시절 함께 근무한 현직 판사를 감사위원으로 제청했지만 다주택 문제 등을 이유로 부적합 판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은 여권의 압박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월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감사원장이 추천한 분은 부동산 문제로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아는데 한 명이 떨어졌으면 나머지 한 명은 인사권자의 의사를 존중해서 제청하는 게 마땅하지 않으냐”고 최 원장을 추궁했다. 최 원장은 “감사위원에 정치적으로 중립성과 직무상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이 제청되고 임명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감사원장의 제청에 의해서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돼 있는 헌법의 조항은 감사원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을 제청하라는 감사원장에게 주어진 헌법상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게 맡겨진 책무를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감사위원 제청·탈원전 감사도 '법과 원칙'대로

청와대가 감사위원을 낙점하면 감사원장이 형식적으로 제청하는 게 그간의 관행이었다. 법 원칙에 맞지 않는 관행이었지만 대부분 이를 당연시했다. 최 원장은 잘못된 관행을 따르지 않고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고 한 것이다.

최 원장은 자진 사퇴를 요구받는 등 여권의 압박을 받고 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월성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감사다. 더불어민주당에선 “감사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에 흠집을 내려고 한다” “결과를 정해 놓고 감사한다”며 최 원장의 탄핵을 요구하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최 원장은 탈원전 감사 문제에서도 법과 원칙을 분명히 했다. 최 원장은 지난 6월 5일 입장문을 내고 “외압에 의해 또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감사 결과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를 비롯한 감사원 구성원들은 언론의 이러한 보도들이 직무상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고히 지키며 법과 원칙에 따라 감사를 수행하여 헌법과 법률에 의해 주어진 감사원의 사명을 다하라는 국민의 기대와 우려를 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조사하여 빠른 시일 내에 월성1호기 감사를 종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정치권 외압 의혹을 부인하면서 동시에 그런 외압이 있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국민 앞에 밝힌 것이다.

이런 최 원장에 대해 여권 의원들이 가만 있지 않았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월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 원장이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탈원전 정책을 의미)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대통령이 시킨다고 다 하느냐’는 등 국정과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최 원장을 질타했다. 신동근 의원은 “대선에 불복하는 반헌법적 발언”이라며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이 불편하고 맞지 않으면 사퇴하고 재야로 나가서 비판하든지 하라”고 주장했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최 원장의 친인척이 보수 언론사와 국책 원자력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는 사실을 거론하며 “국민이 탄핵에 이를 사안인지 판단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했다.

감사원법은 ‘감사원은 대통령에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면(任免)에 있어서는 감사원의 독립성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최 원장이 탈원전 조기 결정의 타당성을 법과 원칙에 따라 감사하고, 감사위원을 정치적 중립성을 가진 인물로 제청하려는 것은 감사원법에 따른 독립성을 지키려는 것이다. 이는 감사원 최고 책임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여권 인사들, 윤석열 이어 최 원장 흔들기 나서

정권 사람들은 최재형 원장 인사 청문회 때 그를 “미담 제조기”라고 칭찬했다. 윤석열 총장 임명 때 “우리 총장님”이라고 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윤 총장이든 최 원장이든 법과 원칙대로 하려 하자 찍어누른다. 법과 원칙대로 하는 것을 ‘정권에 대드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검찰과 감사원은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의 독립성을 존재 이유이자 생명으로 하는 기관이다. 중립성과 독립성 여부의 핵심은 지나간 권력이 아닌 현재 권력, 죽은 권력이 아닌 살아 있는 권력을 법과 원칙대로 대할 수 있느냐다. 지금까지 여러 명의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있었지만 윤 총장이나 최 원장처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고 감사한 사람은 없었다. 윤 총장 덕분에 한때나마 검찰이 정말 바로 서는 듯했다. 감사원이 잠시라도 바로 선다면 최 원장 덕분일 것이다.

현 정권 사람들은 검찰의 조국 장관 수사 등을 ‘정치적 수사’라고 비난한다. 설사 그런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이 되라는 국민 요구에 비하면 지엽적 문제다. 최재형 원장 역시 권력기관부터 제대로 감사하라는 국민 요구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1일 제2차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 권력기관 개혁에 대해 “조직을 책임지는 수장부터 일선 현장에서 땀 흘리는 담당자까지 자기 본분에만 충실할 수 있게 하는 게 권력기관 개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어려운 일이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본분에 충실한 것이 개혁’이라는 말은 더하고 뺄 게 없이 핵심을 찌른 말이다. 본분에 충실하다는 말은 법과 원칙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본분에 충실한 것이 개혁이 되려면 법과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 대접받고 평가받아야 한다. 누구보다도 최고 권력이 앞서서 그런 문화와 풍토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법과 원칙에 충실한 검찰총장은 식물총장이 됐고, 감사원장은 여권의 압박과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본분에 충실하면 어떻게 된다는 본보기를 권력이 보여주고 있다. 이래서는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 나올 수 없고, 권력기관 개혁이 이뤄질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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