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막가는 미국 공권력·무기력한 한국 공권력,그 원인은?

범죄를 개인 탓으로 보는 미국, 강경한 대응

범죄를 사회 탓으로 보는 한국, 미온적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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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AP=연합뉴스]]


‘경찰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요즘 미국 경찰의 흑인 범죄 용의자 과잉 제압 장면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한국 공권력의 무기력한 모습에 속이 터져서인지, 미국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 장면을 보면 부러울 때가 많았다. 공권력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았다. 그러나 요즘 미국 경찰의 모습은 ‘엄정함’을 넘어 ‘막가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경찰의 폭력 제압은 ‘법과 질서’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사회 질서 유지에 강력한 법 집행이 갖는 효용성과 함께 그 한계에 관한 문제다.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위조 지폐 사용이 의심된다는 한 가게 주인의 신고가 들어왔다. 긴급 출동한 경찰은 가게 인근에서 46세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를 현행범으로 붙잡았다. 경찰은 플로이드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무릎으로 목을 눌렀다. 플로이드는 “제발 (제압을 풀어달라)”을 연발하며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다. 모여든 시민들이 과잉 제압하지 말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10분 가까이 플로이드의 목을 눌렀다. 결국 플로이드는 의식을 잃었고 그날 밤 숨졌다.

플로이드는 경찰에 총을 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저항도 하지 않았다. 플로이드는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이미 제압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무릎으로 목을 눌렀다. 숨이 막혀 ‘제발 풀어 달라’고 호소할 정도면 곧바로 제압 행위를 풀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게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그러지 않았다.

미국 경찰, 달아나는 용의자에 20발 총 쏴

이 정도면 엄정한 법 집행이 아니라 불법 폭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경찰 당국 역시 폭력임을 부정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당국은 플로이드를 제압한 경찰관을 해고하고 ‘3급 살인’을 포함한 두 가지 혐의로 입건했다. 그 경찰관과 함께 있던 동료 3명도 해고했다. ‘3급 살인’은 우리로 치면 과실 치사에 해당하는 범죄다. 살해 의도는 없었으나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 적용된다.

이 사건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아주 어쩌다 일어난 일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비슷한 사건이 계속 터져 나왔다. 지난 8월 23일에는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29세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가 경찰의 총격을 받았다. 경찰은 블레이크가 한 주점에서 다른 손님에게 권총을 겨눈 뒤 차를 타고 떠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었다.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블레이크가 주차된 차량 쪽으로 걸어가고 그 뒤를 경찰관 2명이 총을 겨눈 채 따라갔다. 블레이크가 운전석 차량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하자 경찰관은 그의 민소매 셔츠를 잡아당기다가 등 뒤에서 총을 발사했다. 총성은 7발이 울렸다.

블레이크 역시 경찰에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그의 등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블레이크를 제압한 것이나 같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경찰은 7발이나 쐈다. 블레이크의 변호인은 “차량 뒷 좌석에는 블레이크의 세 살, 다섯 살, 여덟 살 아들이 타고 있었다. 블레이크는 아이들이 괜찮은지 보려고 차량으로 갔다”며 “세 아들이 아버지가 총에 맞는 장면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블레이크는 총알이 허리를 관통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밖에 도주하는 흑인 남성에게 20여 발의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사건, 체포 시 용의자의 침이나 혈액으로부터 경찰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얼굴 덮개를 용의자에게 씌우고 무릎으로 목을 눌러 질식사하게 한 사건도 드러났다.

이런 사건들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에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는 구호를 외치며 인종 차별과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단순한 시위를 넘어 공공기물 파손, 상점 약탈과 방화 등 폭동으로 번졌다. 백악관은 항의 시위대가 몰려들자 백악관 주변에 높이 3m의 울타리를 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찰만으로 시위대를 막지 못하자 주(州) 방위군까지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섰다. 민주주의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시위를 막으려고 군까지 동원한 것이다.

트럼프, ‘법과 질서’ 내세워 경찰 과잉 진압 정당화

야당인 민주당 소속의 일부 시장들은 시위대의 요구에 따라 경찰 예산을 대폭 삭감해 복지 예산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플로이드 사건이 벌어진 미니애폴리스 시의회는 아예 경찰서를 폐쇄하고 완전히 다른 치안 기구를 만들자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경찰 폭력에 대해 면책특권을 제한하고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며 목조르기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경찰 개혁 법안을 공개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썩은 사과는 어디에나 있다”며 이번 일을 경찰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몇몇 경찰관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했다. "경찰은 우리가 평화롭게 살도록 해 왔다. 99%의 경찰은 훌륭한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경찰의 안전한 보호를 받기를 원한다”며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스스로를 ‘법과 질서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그는 법 집행관들과 간담회를 열어 "경찰 예산 삭감과 경찰서 해체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럼 트럼프의 ‘법과 질서’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 질서 유지에 엄정한 법 집행은 필수적이다. ‘법과 질서’라는 말이 하나의 단어처럼 사용될 정도로 법은 곧 질서를 의미한다. 법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사람이 경찰이다. 경찰의 법 집행은 질서 유지의 생명과 같다.

미국 경찰은 법 집행의 엄정함에서 교과서 같았다. 경찰은 2011년 워싱턴 D.C. 시장을 집회 현장에서 체포해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연행했다. 불법 집회로 도로를 막은 혐의였다. 미국 수도 워싱턴의 시장을 기껏 도로를 불법으로 막았다고 수갑까지 채워 연행한 것이다. 지난 3월에는 민주당 하원의원을 수갑을 채워 체포했다. 하원 이민특위 위원장인 이 의원은 지역구인 시카고의 이민당국 사무실에서 불법 이민자 강제 추방에 반대하는 회의를 열었다. 회의가 끝나자 경찰은 참석자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이 의원은 거부했다. 그러자 경찰은 곧바로 수갑을 채워 끌고 간 것이다. 이런 엄정한 법 집행 사례는 무척 많다.

한국은 법보다 정의 강조, 경찰 무기력 불러와

한국 경찰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 경찰은 술 취한 사람에게 뺨을 맞으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삼단봉과 권총을 갖고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노조의 불법 현장을 진압하러 갔다가 오히려 끌려 나오고 폭행까지 당했다. 경찰관 폭행 혐의로 조사받으러 온 노조원들이 경찰서에서 자기들끼리 인증 샷을 찍으며 활개치고 다닐 정도였다. 노조원들이 법원의 철수 명령에도 불구하고 회사 주주총회장을 닷새나 점거해도 경찰은 지켜보기만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15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 확산을 불러왔다는 논란과 관련해 "공권력이 살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총리는 일부 단체의 개천절 집회 추진에 대해 "공권력을 총동원해 8·15집회 재판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방역은 중요하지만 '엄정한 공권력'이라는 말은 이런 데 사용하는 게 아니다. 경찰이 무기력하게 당하는 상황에 써야 할 말이다. 한국은 미국 경찰로부터 엄정한 법 집행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마땅하다.

다만 미국 경찰의 과잉 제압은 법 집행을 통한 질서 유지의 한계도 보여준다. 질서를 유지하려면 강력한 법 집행만으론 안 되고 법과 질서를 깰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들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의 사건들로 본다면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함부로 대하는 인종 차별과 경찰의 무제한에 가까운 면책특권이 구조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번에 경찰의 과잉 제압으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은 모두 흑인들이다. 반면에 경찰관은 모두 백인이다. 만약 범죄 용의자가 백인이었더라도 경찰이 그렇게 심하게 다뤘을지 의문이다. 경찰의 지나친 면책특권도 논란이 되고 있다. 경찰은 총격이나 폭력을 가하고도 공무집행이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누려왔다.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없었다. 이때문에 경찰은 목 조르기 같은 위험한 진압 방식이나 치명적 무기를 거리낌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인종 차별 금지와 면책특권 개선 없이는 경찰의 과잉 진압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인종차별을 막고 지나친 면책특권을 적절히 고치는 것은 다른 면에서 보면 정의의 실현이다. 인종 차별이나 무제한적인 면책특권은 상식적 정의에 어긋난다. 정의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정의의 회복’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게 된다. 법을 어기고 질서를 깨게 된다. 폭동을 동반한 미국 항의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 항의 시위대는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고 외쳤다. 이럴 때 강력한 법 집행만으로 법과 질서를 바로세우기는 어렵다. 강력한 법 집행과 동시에 상식적 정의를 세워나가야 한다. 부당한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게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엄정한 법 집행과 사회 문제 개혁 병행돼야

진보주의자들은 범죄나 불법을 사회 탓으로 돌린다. 보수주의자들이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과 대비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법과 질서’를 내세워 경찰의 강경 진압을 정당화하는 것도 이런 보수주의적 시각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사회 구조적 문제의 개선 없이 법과 질서만 강조하는 것은 기득권자들의 기존 질서를 옹호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현 정권과 그 지지 세력 중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엄정한 법 집행을 ‘국가 폭력’이라고 비난한다. 경찰은 정권 눈치를 살핀다. 그러니 엄정한 법 집행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미국 경찰의 폭력 제압이 ‘법을 통한 질서’를 강조하는 법 만능주의 때문이라면, 한국 경찰의 무기력은 ‘정의를 통한 질서’를 외치는 정권의 분위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 실현만을 내세워서는 법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법 집행을 보류한다면 불법과 무질서가 판칠 수밖에 없다. 불법과 범죄를 엄벌하는 것만으로 법과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진보주의자들처럼 범죄 자체는 놔두고 범죄 원인만 문제 삼아서도, 보수주의들처럼 범죄 원인은 놔두고 범죄 자체만 문제 삼아서도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법을 통한 질서’와 ‘정의를 통한 질서’의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다. 한편으론 불법을 엄정한 법 집행으로 다루되, 다른 한편으론 불법을 불러온 구조적 문제를 고쳐나가는 일이다. 이것이 미국 경찰의 폭력 제압과 그로 인한 폭동 시위가 법과 질서 문제에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