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북한은 왜 실패하였는가

​착취적 체제 vs 포용적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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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나라는 잘 사는데, 어떤 나라는 못 살까? 왜 어떤 나라는 가난에서 탈출하였는데, 어떤 나라들은 계속 가난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와 제임스 A. 로빈슨(James A. Robinson)이 이에 대해 연구하고 같이 펴 낸 책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이다. 국가 간에 이런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 지리적 위치 때문이라느니, 문화적 요인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니 또는 그 나라 국민이나 통치자가 잘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등 여러 가설이 있지만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그 나라가 착취적 체제이냐, 포용적 체제이냐에서 이를 찾고 있다. 이들이 자기 주장의 근거로 들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남한과 북한의 사례이다.

남한과 북한은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나의 정치체제, 하나의 경제체제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 다른 체제로 갈리면서 지금은 엄청난 경제적 격차로 벌어져 있다. 남한과 북한은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차지하고 서로 마주 보고 있기에 지리적 위치 때문에 이런 차이가 났다고는 설명하기 곤란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같은 배달겨레로서 하나의 말을 사용하고 같은 문화를 누리며 살았기에 문화적 요인 때문에 이렇게 격차가 벌어졌다고 설명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 북한 공산당이 어떤 경제정책이 인민들을 잘 살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를까? 북한 공산당은 잘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인민을 가난하게 하여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얼마든지 지킬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자기들에게 득이 되지 않는 그런 경제정책을 쓰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기존의 가설로는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설명하기 힘들 때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착취적 체제이냐, 포용적 체제이냐에서 그 해답을 찾은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남한은 포용적 체제를 택하여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고, 그렇기에 전세계 1위 교육열을 자랑할 만큼 부모들은 자녀들 교육에 투자하여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공산당 1당 독재로서 사유재산제를 부정하고 도대체 한 개인이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성취동기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니 당이 시키는 대로만 할 뿐인데, 거기서 무슨 창의력과 열정이 나오겠는가?

물론 북한도 김일성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어느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7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남한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착취적 체제로 사람들을 강제로 몰아갈 수 있지만, 한계는 오고 만다. 소련도 결국 90년대에 그런 한계에 봉착하면서 제국이 분열되고 말았지 않은가? 중국의 경우에도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중국이 경제체제에는 포용적 제도를 실시하여 번영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 억압이 계속되는 한 언젠가 그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런데 남한도 오랜 군사독재 시절에는 북한과 마찬가지로 억압적 체제가 아니었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억압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경제적으로는 개인의 창의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오랜 기간 군사독재를 하였지만 국가는 어찌 되든 개인의 사욕만 챙기는 여러 저개발국가의 독재자들과 달리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리고 경제발전에 따라 성장한 중산층이 지속적인 군사독재를 더 이상 허용치 않음으로서 지금은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서 남한은 정치적으로도 포용성이 발휘되고 있다. 그리하여 남한은 2차 대전 이후 신생독립국에서 민주화와 경제발전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유일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밤에 인공위성이 찍은 한반도 사진이다. 휴전선을 경계로 남한은 농담의 차이만 있지 거의 전국에서 불빛이 보이는 반면, 북한은 평양 일대를 제외하면 거의 전국이 어둠 속이지 않은가?

1945년 같이 출발한 남북한이 작년에는 경제력이 53배 차이 날 정도로 벌어진 것은 충분히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 만하다. 그 동안 우리는 단순히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하였지만,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그 나라 체제가 착취적이냐 포용적이냐에서 해답을 찾았다. 이 말은 포용적인 나라도 착취적인 나라로 돌아가면 언제든지 그 나라의 발전은 정체되고 퇴보한다는 것이다. 우린 역사에서 그런 사례를 얼마든지 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렇기에 별다른 제약이 없다면 남의 것을 착취하여서라도 더 갖고 싶어 하고, 또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남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진입장벽을 만들고 싶어 한다. 자본주의도 그대로 두면 노동자를 착취하여 더 많은 이윤을 얻고 싶어 하고,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독점을 하면서 신생기업의 싹을 자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포용적 체제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원적 정치제도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견제와 균형을 이룸으로써 독점하고 싶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북한 역시 공산당이 완전히 정치를 독점하지 못했다면 소수 공산 엘리트층의 배를 불리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민을 배곯게 하는 경제체제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한편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다원적 정치제도를 얘기하면서도 중앙집권체계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소말리아의 예를 들면서 중앙집권체계를 강조하는데, 소말리아는 사회 전체가 반목이 심한 부족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어느 부족도 절대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면서 시민의 기본적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사실 우리나라도 4.19 후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하면서 5.16이라는 반동을 겪었고, 요즈음도 가히 사회적 관계망(SNS)의 홍수 시대라고 할 만큼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리하여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주장이 횡행하고, 가짜뉴스까지 아무 거리낌 없이 유포되는 것을 보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중앙집권체계를 말하지만 나는 시스템으로 말하고 싶다. 포용성이 보장되고, 이를 침해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법에 의해 엄격히 처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고, 누구도 감히 이런 시스템을 건드리려는 엄두도 못 낸다면 이러한 탐욕적인 인간의 이기심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좋아한다. 물은 흘러야 한다. 흐르던 물이 어디선가 막히면 물은 썩기 마련이다. 착취적 체제에서는 물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고 곳곳에서 막혀 정체되고 썩는다. 북한이 물이 막혀 썩고 있을 때, 남한은 물이 흐르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요즈음 남한도 흐르던 물이 자꾸 고이는 징후가 보이고 있다. 경제가 집중되면서 독점적 폐해가 나타나며, 창의를 활짝 꽃 피어야 할 스타트업 기업이 설 자리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공교육의 붕괴와 비싼 사교육비로 계층 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걷어차여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한이 북한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든 다 받아들이는 물과 같은 포용성이었다. 그런데 이게 얼음처럼 굳어지면 남한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다. 그러기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점차 굳어지고 뒤뚱거리는 몸을 유연하게 하여 다시금 물처럼 흘러야 한다.
 

[사진=양승국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