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차별받는 해기사 실습생...관리제도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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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7 11:22
수정 : 2020-06-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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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10일 한국해양대생이 해외에서 승선 실습을 하던 중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한 해기사 실습생 정모(21)씨는 현행법상 선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원보다 턱없이 적은 보상금을 받았다. 정씨 같은 실습생들은 실습 선원으로 근무하면서 최저 임금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차별받은 것이다.

과거에도 실습생이 산업현장의 위험에 노출되어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사고, LG유플러스 여고생 자살, 제주 음료회사 실습생 사망 사건 등이 그 사례이다.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 과정에서 연달아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지만, 현재에도 산업현장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에 발생한 해기사 실습생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미래 해양강국을 이끌어갈 해기사 실습생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점을 짚어 본다.

선원법상 선원은 선원법이 적용되는 선박에서 근로를 제공하기 위하여 고용된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해기사 실습생의 경우에 대통령령인 선원법 시행령 제2조 제5호에서 “선원이 될 목적으로 실습을 위하여 선박에 승선하는 사람”은 선원이 아닌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결국, 선원법에 따라 해기사 실습생은 선원법상 선원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기사 실습생의 경우에 선원이 아니어서 많은 부분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현행 선원법상 선원이 아닌 해기사 실습생은 재해보상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는 것에서부터 차별을 받는다.

해기사 실습생은 선원법 제94조부터 제106조 및 제106조의2에 따라 실습을 마치고 종사하게 될 직급 선원의 통상임금 및 승선평균임금의 100분의 70을 기준으로 재해보상을 받는다. 통상임금의 70%를 기준으로 선원법 제99조에 따라 1300일분에 상당하는 유족보상금을 선박소유자로부터 받게 되는데 보상금부터 선원과 큰 차별이 있다.

실습생은 통상 졸업 뒤 3등 항해사 직급을 갖게 되는데 숨진 정씨는 ‘3등 항해사 임금의 70%’를 기준으로 ‘3등항해사 임금 X 70% X 1300일’의 보상을 받는다. 반면에 선원은 통상임금의 100%를 적용받는다.

이러한 차별에 해기사 실습생들의 반발이 거세다. 선박실습이라 하여도 다른 선원과 비슷한 노동강도의 근무를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 이유다. 실습생은 경험과 숙련도에서 선원과 그 정도가 달라 차별 대우는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박 내에서 실제 노동강도는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차별은 너무나 과도하여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은 최저임금 강제 대상도 아니다. 정부는 “실습 목적으로 선박에 승선한 해기사 실습생은 선원법 규정상 선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승선 실습 기간은 최저임금 강제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통상 해양대 학생들은 선원의 교육, 자격증명 및 당직근무의 기준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on Standards of Training, Certification and Watchkeeping for Seafarers)에 따라 졸업을 앞두고 1년간 실습 항해에 참여한다. 6개월은 대학 실습선을 타고, 나머지 6개월은 외항선을 타고 현장 경험을 터득한다. 이 기간 동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품위 유지비 명목으로 한 달에 30만 원 남짓한 돈을 받으면서 상당한 노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기사 실습생들은 최저임금보다 더 적은 ‘열정 페이’를 받는 것이다.

또한, 해기사 실습생은 선원법상 선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선원근로감독제도에 따른 근로감독관의 감독 권한 또한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원근로감독제도는 현장의 선원의 근로실태가 선원법이나 관계법령에서 정하는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선박과 그 밖의 사업장에 대한 검사와 선원의 근로감독을 위한 것이다. 선원근로감독제도가 선원의 근로기준 및 생활기준에 대한 제도이므로 선원이 아닌 해기사 실습생에 대하여는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 핵심영역에서 선원근로감독관의 권한이 미치지 않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해기사 실습생의 법적 지위와 관리제도를 개선하기 위하여 △ 승선실습생 보호를 위한 관리감독 시스템을 마련 △ 적절한 휴식시간을 보장△ 선사 승선실습생 관리 프로그램 확립 △ 승선실습비의 정부지원 △ 체계적인 승선 실습 협약체제 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정부는 앞으로 선원 임금을 체불할 경우 지연이자 20%를 부과하고, 해기사 실습생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장관 문성혁)는 내달 17일까지 선원들에 대한 임금체불 예방, 실습 선원 보호 등을 담은 선원법 하위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에는 △ 선원 임금 체불에 대한 연 20%의 지연이자 부과 △ 선원 임금 체불한 선주 명단 공개 △ 실습선원 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개정으로 선원법이 적용되는 상선과 20t 이상 어선 등 선원의 경우에 체벌임금에 대한 지연이자, 명단 공표 등의 수단이 없어 임금 체불 등에 대응하기에 한계가 있었으나, 이번 개정을 통해 임금 등 체불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정안에 대하여 의견이 있는 경우에 내달 17일까지 해수부 선원정책과나 통합입법예고센터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의 개선을 통하여 얼마나 해기사 실습생의 법적 지위를 확립하고 인권보호 및 학습권 보장이 이루어질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해양수산부[사진 = 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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