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法治(법치), 人治(인치)에 피를 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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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기 강의준비를 위해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최근 판례를 숙지하다 보면 늘 다른 나라 최고법원에서는 어떤 사건들이 문제되었는지 궁금해진다. 그래서 가끔 미국 연방대법원,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나 연방행정법원의 판결 중 흥미로운 것을 읽어보는데,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지루해 하면 풀어 놓을 보따리 속 장사밑천을 마련한다는 일종의 저축인 셈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2019년 미국연방대법원 판결 중 한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오늘날 행정국가에서 정부의 업무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영역에 해당하는 경우 행정청의 결정을 존중하고 사법심사를 좀 느슨하게 하는 판례를 20세기 중반부터 확립해 왔다. 연방대법원은 작년에도 유사한 사건에서 대법관 5대4 의견으로 이러한 판례를 간신히 유지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사법부의 독립과 권력분립을 내세우는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면서 행정청 존중 독트린은 언제 파기될지 모르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방대법원의 소수의견은 미국이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는 독립혁명의 시발점을 영국의 조지3세가 식민지 법관들에게 인사 등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당시 식민지의회는 오로지 자신들의 분파적 이익에만 매몰되어 국가의 장래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헌법의 아버지들은 사법부가 권력자나 정치인들로부터 독립하지 않는 한 시민의 자유는 보장될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권력자가 사법부 위에 군림하고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무시한다면 이제 “법치가 인치에 피를 흘리기 시작한다”(The rule of law begins to bleed into the rule of men)는 판결문 문구가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법치가 흘리는 피는 결국 국민의 피가 아닐까.

그런데 권력자가 사법과 입법 위에 군림하는 현상은 비단 200 여년 전 미국에서만 있던 일인가? 혹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법치가 인치에 피를 흘리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른바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사건으로 검찰이 시도하려던 청와대 압수수색이 중단된 지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청와대 압수수색영장은 누가 발부한 것인가? 우리나라 헌법과 형사소송법에 따라서 검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이 이유 있다고 판단하여 법원이 발부한 것 아닌가? 청와대는 형사소송법상 군사보호시설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 청와대는 영장에 적시된 압수물을 통상 임의제출 형식으로 검찰에 넘긴다. 임의제출도 거부하려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한다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사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청와대는 임의제출도, 사유서 제출도 거부하고 있다. 명백히 공무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했는데, 청와대 공무원들은 우리 국민이 아니거나 엄청난 특권을 가진 모양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법률과 사법부 위에 군림하고 계신가요?”

새로 취임한 법무부장관도 연일 경이로운 법률해석으로 몽테스키외 이후 삼권분립에 대한 새로운 경지를 열어가고 있다. 그  분의 별칭이 왜 '추다르크'인지 잘 모르겠으나 이제는 '추애스키외'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법무부장관의 공소장 비공개결정은 그 신비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국회로부터 국가기관이 서류 등의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 그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 다만,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명백하고 주무부장관 5일 이내에 소명하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법무부장관은 무죄추정, 인권 등을 공소장 공개거부의 사유로 내세우고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이것은 정당한 소명이 아니다. 인권 등의 사유로 공소장을 비공개 하는 것은 당연히 국회가 법률을 개정하는 경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시 “내 명에 거역한다”는 말을 서슴치 않는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말이나 의견이 대한민국의 법치라고 믿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국민의 알권리를 “조금 있다 알아도 될 권리”로 이해하는 대목에서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먼저 보았는데 별것 아니니 국민들은 나중에 보던가 하세요”라는 국민의 후견인 역할을 법무부장관이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는 법무부장관이 국민들에게 선물한 것이 아니라 헌법이 국민의 권리로서 보장한 것이다. 물론 헌법상 알권리도 만능은 아니며 법률로서 그 내용과 방법을 제한할 수 있지만 법무부장관이 할 일은 아니며 입법기관의 몫이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도처에서 법치가 인치에 피를 흘리고 있다.
 

[사진 = 김성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