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 배상 대법 판결 비난하면 친일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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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석, 판결 비난은 친일파이고 무도한 짓"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7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부정, 비난, 왜곡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라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썼다. 그는 다음 날에는 대법원 판결 비난 행위를 “무도(無道,도리에 어긋남)”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대법원 판결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대법관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고 놀라게 될 정도다. 대법관에 따라 똑같은 내용과 자료에 관한 해석이 다르고, 똑같은 사실에 부여하는 비중이나 중요성도 달랐다. 이 판결과 관련 있는 여러가지 역사적 기록과 문서가 존재하는데 대법관마다 자기 주장에 들어맞는 자료는 인용하고 그렇지 않은 자료는 언급하지 않거나 평가절하 하기도 했다. 대법관들마저 이렇게 보는 눈이 다른데 일반 국민들이야 더 말할 게 없을 것이다. 그런 대법원 판결에 대해 이런저런 이견이나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판결에는 대법관 14명 중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고 김명수 대법원장 등 13명이 참여했다. 사건의 핵심은 일제 때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의 식민지 불법 지배에 따른 위자료 손해배상 청구권이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느냐 아니냐이다 .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에는 “대한민국과 일본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한다”고 돼 있다. 위자료 청구권이 이 협정 제2조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돼 피해자들은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보면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따라서 소송을 낼 수 있게 된다.

대법관 13명 가운데 11명은 소송을 낼 수 있다는 의견을 냈고, 2명은 낼 수 없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그러나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한 11명이라고 의견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11명 중 결론과 이유 모두에서 한목소리를 낸 대법관은 5명뿐이다. 이 5명은 위자료 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따라서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다른 3명은 위자료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개인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당연히 소멸된다고 할 수는 없다며 따라서 소송은 낼 수 있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또 다른 2명은 앞의 5명이 근거로 든 이유 외에 추가로 이유를 제시한 ‘보충 의견’을 냈다. 마지막 1명은 소송 절차에 따른 법리를 이유로 들어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중요 쟁점 놓고 대법관들도 다양한 의견 쏟아내

대법관들 사이에 의견이 다양하게 갈린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대일(對日) 청구 8개 항목 중 제5항에 위자료 청구권이 포함되는가

한일청구권 협정과 같은 날 체결된 합의의사록에는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에서 말하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는 청구권에는 대일(對日) 청구 8개 항목에 속하는 모든 청구권이 포함되며, 따라서 8개 항목에 대해선 어떤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대일 청구 8개 항목이란 한국 측이 협상 과정에서 일본에 제출한 것이다. 그중 제5항에는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이 들어 있다. 합의의사록에 따라 제5항에 대해서도 일본 측에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제5항에 위자료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는가 여부였다. 위자료 청구권이 제5항에 포함된다면 합의의사록 규정에 따라 자동적으로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도 포함되게 된다. 그래서 이 문제는 대법관들이 각자 어떤 결론에 이를지는 가르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다수 의견을 낸 11명 중 결론과 이유 모두 한목소리를 낸 5명은 제5항에 위자료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보충 의견을 낸 2명도 같은 입장이었다. 반면 별개 의견을 낸 대법관 3명은 제5항 ‘피징용 청구권’에는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도 포함된 것이라고 했다. 반대 의견을 낸 2명 대법관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②한일협상 과정에서 ‘보상’과 ‘배상’이 구별됐는가

제5항에 위자료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는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이 나뉜 이유는 한일 협상 과정을 보는 눈이 달랐기 때문이다. 결론과 이유 모두 한목소리를 낸 5명 대법관은 협상 과정에서 일본 측이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 동원 피해자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고 했다. 또 8개 항목의 다른 부분 어디에도 일본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는 내용은 없으므로, 제5항 부분도 일본 측의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보인다고 했다. 따라서 제5항에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보충 의견을 낸 3명은 더 나아가 제5항은 ‘보상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징용이 적법하다는 전제에서 사용한 용어로서 불법성을 전제로 한 위자료가 포함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했다. 당시 대한민국과 일본의 법제는 ‘보상’은 적법한 행위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는 것이고 ‘배상’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보전하는 것으로 명확하게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별개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정반대 주장을 폈다. 이들은 제5항은 피징용 청구권과 관련하여 ‘보상금’이라는 용어만 사용하고 ‘배상금’이란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그 ‘보상’이 ‘식민지배의 적법성을 전제로 하는 보상’만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협상 과정에서 양측이 보인 태도만 보더라도 양국 정부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보상’과 ‘배상’을 구분하고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양국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배상’도 당연히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상호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인다고 했다. 반대 의견을 낸 2명도 한일 양국 정부가 불법을 전제로 한 배상인지, 적법을 전제로 한 보상인지를 엄격히 구별하지 않고 둘을 혼용한 것으로 보았다.

③청구권 자금 3억달러에 손해 배상금이 포함되는가

2005년 노무현 정부 시절 ‘‘한일회담 문서 공개 후속 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가 구성됐다. 위원회는 한일회담 문서를 정밀 검토한 뒤 “한국정부가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5억 달러 중 무상(無償) 3억 달러에는 강제 동원 피해 보상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고 봐야 할 것임”이라고 발표했다.

반대 의견과 별개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이 발표 내용을 중시했다. 특히 별개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이와 같이 대한민국은 청구권협정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여, 청구권협정 체결 이래 장기간 그에 따른 보상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까지 했다.

그러나 결론과 이유 한목소리를 낸 5명 대법관은 이 발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위원회가 ‘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 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한 발표를 들어 3억 달러에 배상금이 들어 있지 않다고 보았다.

④한일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됐는가

우리 정부가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2주일 뒤 발간한 한일협정해설에는 ‘대일 청구권은 모두 소멸됐고 따라서 8개 항목의 하나인 제5항 피징용자의 청구권도 소멸됐다’고 돼 있다.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 2명은 이 해설을 근거로 들어 개인 피해자의 청구권이 소멸된 것으로 봤다.

그러나 별개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이 해설 규정에도 불구하고 개인 피해자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들은 “해설 규정을 보면 당시 대한민국 입장이 개인 청구권까지도 소멸되는 것이었다고 볼 여지도 없는 것은 아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청구권협정에서 개인 청구권까지 포기되는 것에 대한 한일 정부 간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들이 위자료 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면서도 위자료 청구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한 것은 이때문이다. 
 
⑤한일회담 백서 ‘배상 청구는 불포함’ 규정에 대해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3개월 전 한국정부는 한일회담백서를 발간했다. 이 백서는 “한일간 청구권 문제에는 배상 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고 했다. 한목소리를 낸 5명 대법관과 보충 의견을 낸 2명은 이 백서 규정을 위자료 손해배상 청구권이 한일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낸 2명은 물론이고, 이 5명과 결론을 함께 한 별개 의견을 낸 대법관들도 이 백서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 백서 규정이 한일 협상에 대한 국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용도로 보고 중요성을 두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쟁점별 대법관들  이견 줄였다면 논란 덜 했을 것

이상에서 보듯 이번 판결에서 중요 쟁점들을 두고 대법관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판결은 법관 개개인의 양심에 따른 합리적 판단과 해석을 전제로 한다. 그 양심과 합리라는 것은 궁극적으론 주관적인 것이다. 따라서 법관마다 해석과 관점이 다른 것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조약을 포함한 법령 해석의 최종 권한은 대법원에 있다. 어느 모로 보든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법관들 사이에 판단 근거가 되는 똑같은 자료와 사실을 두고 견해 차가 크면 그 판결의 신뢰와 권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똑같은 자료와 사실에 대한 다른 해석과 판단으로 기존 판결이 잘못됐다는 반론이나 비판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우리 사회 일부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법관들이 좀 더 시간을 갖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협정 관련 문서나 협상 과정 상의 발언들 중 서로 모순되는 듯한 대목의 해석에 대해 광범위한 합의를 이뤄낸 뒤 판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더라면 판결의 합리성을 둘러싼 논란이 지금보다 덜했을 것이다. 이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 해석에 기준을 제시하는 것임은 물론, 국제적으로 큰 파문을 몰고올 것이 뻔히 예상됐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지적마저 ‘부정, 비난, 왜곡’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난이고 왜곡일 것이다.

김낭기 고문[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