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아베, 민주주의 대원칙 잊었나

‘오쓰 사건’...일본 법원의 판결 되새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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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총리가 한일 관계의 신뢰가 현저히 훼손되었다는 이유로 스마트폰과 TV에 사용되는 반도체에 들어가는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에 대해 배상 판결을 한 것에 대해 그 동안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대해 시정 요구를 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보복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 달 29일 막을 내린 G20 정상회의 주최국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선 ‘자유 ∙ 공평 ∙ 무차별’ 3대 원칙이 공동성명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네가 주최한 정상회의에서 이런 공동성명을 채택하고도, 일본은 불과 며칠 만에 한국에 대해 이런 무역 보복조치를 취한 것이다.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해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 나는 사법권 독립과 관련하여 한 마디 얘기하고 싶다. 일본은 스스로 민주주의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나라이다. 민주주의 대원칙중 하나가 3권 분립이다. 즉 입법, 사법, 행정이 독립하여 서로 간섭하고 지배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행정이 입법과 사법을 지배함으로서 오는 여러 가지 폐해를 겪어왔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행정이 입법과 사법을 지배할 수 없도록 아예 헌법적으로 제도 보장을 해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면 아무리 사법부의 판결에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판결이 최종적으로 확정이 되면 이를 존중해주는 것이며, 만약 이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조치를 하는 것이다.

지금 전직 대법원장이 재판거래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법권의 독립이 훼손될 위험한 거래를 하였다는 점이 크게 비난받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는 일본의 총리가 어찌 독립된 사법부가 판결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보복 조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베 총리가 진정 민주주의 대원칙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일단 존중하고, 이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여러 가지 다른 대안을 놓고 우리 정부와 협상을 벌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아예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요구를 하다가 이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기야는 무역 보복 조치까지 단행한 것이다. 그 며칠 전 G20 정상회의에선 문재인 대통령과는 아예 회담도 거부하고 말이다.

여기서 이른바 ‘오쓰 사건’이라고 불리는 1891년 러시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일본 대심원이 내린 판결이 생각난다. 1891. 5. 11. 일본 경찰관 쓰다 산조(津田三藏)가 일본을 방문 중이던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를 암살하려고 칼을 휘두르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당시 일본은 아직 러시아에 대항할 만큼 국력이 신장하지 않아, 러시아의 보복이 두려웠던 일본 정부는 범인 쓰다 산조를 극형에 처하기를 원하였다. 당시 러시아에 사죄한다고 호들갑을 떨던 일본에서는 학교는 휴교를 하고 신사나 절에서는 러시아 황태자의 회복을 비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야마가타현 모가미군의 가네야마라는 마을에서는 범인의 이름과 같은 ‘쓰다’와 ‘산조’라는 이름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고 하며, 심지어 하타케야마 유코(畠山勇子)라는 여성은 니콜라이 황태자에게 사죄한다고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 열도가 호들갑을 떠는 분위기에서 일본 대심원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당시 일본 형법은 황족에게 위해를 입힌 범죄에 대해서는 대역죄로 규정하여 사형까지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에 근거하여 쓰다 산조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을 대심원에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일본 형법에서 말하는 황족은 일본 황족만을 말하는 것이지 외국의 황족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일본 정부의 요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 대심원의 원장 고지마 고레카타(兒島惟謙)는 끝내 일본 정부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법대로 판결을 하였다. 이후 일본은 이 판결을 자신들이 사법권의 독립을 지켜낸 소중한 판결로 국내외에 자랑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로서는 자기네 나라의 판결을 소중히 여기듯이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도 존중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무쪼록 일본 정부가 세계를 이끄는 대국답게 치졸한 복수를 중단하고,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진지하게 대안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