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턱수염 기른 조종사, 용모규정 위반?

  • 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7두38560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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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진 변호사(법무법인 성진)
입력 : 2018-12-06 06:00
수정 : 2022-06-0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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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개요

A항공사 취업규칙인 「임직원 근무복장 및 용모규정」 은, 남자 직원의 경우 “안면은 항시 면도가 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수염을 길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관습상 콧수염이 일반화된 외국인의 경우에는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B씨(피고보조참가인)는 1997년부터 A항공사(원고)에서 근무하여 온 기장입니다. A회사는 턱수염을 기르고 근무하던 B씨에게 취업규칙 소정의 용모규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약 19일 동안 비행업무를 일시 정지시키는 인사처분을 하였습니다.

이후 B씨는 자신이 비행정지를 당한 것이 부당한 인사처분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위 비행정지가 부당한 처분임을 인정하는 판정을 하자, 이에 불복한 A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피고)의 위 재심판정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2. 법원의 판단

가. 판결요지

대법원은, A회사가 헌법상 영업의 자유 등에 근거하여 제정한 위 취업규칙 용모규정 조항은 B씨의 ‘헌법상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므로 근로기준법 제96조 제1항, 민법 제103조 등에 따라서 무효라고 판단하였고, 이와 같이 위헌·위법인 용모규정 조항을 준수하지 않았음을 전제로 이루어진 이 사건 비행정지 또한 위법하다고 판단하며, 재판은 결국 A회사의 패소로 끝이 났습니다.

나. 이유

이하에서 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7두38560 판결 이유 중 본 칼럼의 쟁점사항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사기업인 항공사는 고객의 신뢰와 만족도 향상, 직원들의 책임의식 고취와 근무기강 확립 등 필요에 따라 합리적 범위 내에서 취업규칙을 통하여 소속 직원들을 상대로 용모와 복장 등을 제한할 수도 있는데, 다만 이러한 취업규칙은 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헌법을 포함한 상위법령 등에 위반될 수는 없다는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한편, A항공사의 취업규칙은 일부 외국인 직원의 콧수염 이외에는 참가인을 포함한 원고 소속 직원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함으로써 B씨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으로 인하여 A항공사의 영업의 자유와 B씨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충돌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A사의 취업규칙 중 용모단정 조항은 회사의 영업의 자유와 근로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에 대한 이익형량이나 조화로운 조정 없이 일부 외국인의 콧수염에 관한 예외를 제외하고는 회사 소속 모든 직원들이 수염을 기르는 것 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이처럼 영업의 자유와 관련한 필요성과 합리성의 범위를 넘어서 일률적으로 그 소속 직원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기본권 충돌에 관한 형량과 기본권의 상호조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오늘날 개인 용모의 다양성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항공사 소속 직원들이 수염을 기른다고 하여 반드시 고객에게 부정적인 인식과 영향을 끼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해당 직원이 타인에게 혐오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외모 및 업무 성격에 맞게 깔끔하고 단정하게 수염을 기른다면 그것이 고객의 신뢰나 만족도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사건에서 회사가 직원들에게 수염을 기르지 못하도록 한 결과 직원들의 책임의식이나 고객의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고 볼 합리적 이유와 자료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수염 자체로 인하여 언제나 영업의 자유에 미치는 위해나 제약이 있게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B씨는 항공기의 조종을 책임지는 기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기장의 업무 범위에 항공기에 탑승하는 고객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다. B씨가 자신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지키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원고 회사에서 퇴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처럼 수염을 일률적·전면적으로 기르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어, 참가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볼 수 있다.

A사는 항공운항의 안전을 위하여 항공기 기장의 턱수염을 전면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별다른 합리적 이유와 근거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A사는 항공기 기장을 포함한 원고 소속 외국인 직원들에게는 수염을 기르는 것을 부분적으로 허용하여 왔고, 다른 항공사들도 운항승무원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다. 아울러 A사가 취업규칙을 개정하여 개별적인 업무의 특성과 필요성을 고려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수염의 형태를 포함하여 용모와 복장 등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사건 조항은 A사가 보유하는 영업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 참가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B씨 등 근로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

3. 판결의 의의

1) 들어가며

법원은 A회사가 B씨에게 내린 비행정지 조치가 부당한 인사처분인지를 판단하기에 앞서, A회사의 용모규정이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반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회사는 ‘비행정지 조치’가 사내 용모규정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였지만, 애초에 용모규정의 내용이 위법하게 정하여져 있다면, 근로자가 이를 준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업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한민국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사기업이 정한 취업규칙의 내용에 대하여 법원이 법률 위반 여부를 판단하여도 되는 것일까요?

2) 법원의 판단 근거 : 헌법의 ‘근로권’과 ‘인간존엄성’ 보장

대한민국 헌법의 각 기본권 규정은 사법관계인 기업과 근로자와의 관계를 해석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인데, 헌법 제15조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헌법 제10조는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32조 제3항 및 제33조 제1항은 근로권을 인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조항들에는, “기업의 의사결정은 그와 관계되는 또 다른 기본권 주체인 근로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 존엄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조화롭게 조정되어야 함”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해당 사안은 기업의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의 자유 등 영업의 자유와 근로자들이 누리는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이 충돌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근로조건’의 설정을 둘러싸고 양자가 충돌하는 경우에 대법원 판례는 “근로조건과 인간의 존엄성 보장 사이의 헌법적 관련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사안에서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과 함께 기본권들 사이의 실제적인 조화를 꾀하는 해석 등을 통하여 이를 해결하여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정해지는 두 기본권 행사의 한계 등을 감안하여 두 기본권의 침해 여부를 살피면서 근로조건의 최종적인 효력 유무 판단과 관련한 법령 조항을 해석·적용하여야(위 2008다38288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한다”는 입장입니다.

3) A회사의 용모규정의 유효성에 관하여

위와 같은 전제에서 이 사건을 살펴보면, A항공사의 취업규칙은 B씨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고 있는바, A항공사의 영업의 자유와 B씨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이 충돌하는 상황이라 할 것입니다.

그 중 용모단정 조항은 회사의 영업의 자유와 근로자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에 대한 이익형량이나 조화로운 조정 없이 일률적으로 그 소속 직원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용모규정은 기본권 충돌에 관한 형량과 기본권의 상호조화 측면에서, 결국 B씨의‘일반적 자유행동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법원은 B씨가 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A회사는 B씨에게 인사처분을 내릴 수는 없으며, 비행업무 조치는 부당한 인사처분이 맞다고 판단한 원심에 위법이 없다고 판시한 것입니다.

4. 결론

최근 ‘막말 회장님’, ‘재벌 갑질’사건은, 기업의 경영의 자유에는 제한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표적 사례였는바, B씨의 사례에서 우리나라 기업 경영 방식 및 서비스직 특유의 고충을 새삼 엿볼 수 있었습니다. B씨는 항공기의 조종을 책임지는 기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기장의 업무 범위에 항공기에 탑승하는 고객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A회사는 B씨에게 고객의 항공 안전을 책임지라는 주문과 함께,“항시 면도가 된 청결된 상태를 유지할 것”을 요구하여 왔습니다.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와 일반 행동의 자유를 가지나, B씨가 그러한 기본적 권리인 비행기 기장으로서 일하며 수염을 기르는 자유를 누리려면, B씨의 대안으로는 A회사에서 퇴사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제한 및 이를 근거로 한 인사처분은 결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법원은 “직원들에게 수염을 기르지 못하도록 한 결과 직원들의 책임의식이나 고객 의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고 볼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식의 판시를 하였습니다. 현재와 같은 분위기에서 이와 같은 대법원 판결이 기업과 근로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법무법인 성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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