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산책] 소송보다 중요한 임차권등기명령

  • '임대인이 보증금 안 돌려주는데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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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변호사
입력 : 2018-11-30 06:00
수정 : 2022-06-0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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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계약이 끝나서 방을 빼야 되는데, 집주인이 지금 살고 있는 방이 나가야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하네. 일단 이사를 나가도 될까?”

변호사로서, 주변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어오는 상담이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을 안 돌려주는데 어떻게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소송을 해야만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지를 많이 물어봅니다.

임대인이 끝까지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소송을 해서라도 보증금을 회수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소송의 결과물은 ‘판결문 한 장’일 뿐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서 내 통장에 보증금이 자동으로 입금되는 것은 아닙니다.

긴 소송을 거쳐 겨우 판결문을 받아들었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이죠. 다시 임대인의 재산을 찾고 강제집행을 신청하는 수고를 한 번 더 하여야 비로소 임대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 임대인이 자신의 재산을 이미 다 처분해버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방법이 없어집니다. 즉,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얻은 판결문은 그저 종잇조각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따라서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때에는 무턱대고 소송에 돌입하기보다는 ‘임차권등기명령’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우리나라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만들어서 임차인을 보호하고 있는데요. 주택임대차보호법에서 임차인을 보호하는 강력한 장치가 바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입니다.

‘대항력’이란 임대차계약을 한 ‘집’에 대해서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즉,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은 집 주인이 바뀌더라도 새로운 주인에게 내가 임차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대항력은 실제로 이사를 하고 주민등록을 마친 그 다음 날부터 발생합니다. 전입신고를 하면 주민등록을 마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사하고 전입신고하면 대항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사 하면 전입신고부터 챙기는 것이 바로 대항력 때문이지요.

또한 ‘우선변제권’이란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간 경우에 그 경매대금에서 후순위권리자나 그 밖의 채권자보다 우선하여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우선변제권은 이사, 전입신고, 확정일자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전입시고 하고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까지 받으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우선변제권 때문입니다.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임차권등기명령을 해야 합니다.

위에 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에 대해서는 많이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이사를 나가면 즉시 사라져 버립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데요. 이 때문에 ‘집이 나가면 보증금을 돌려 줄테니 우선 방을 빼라’는 집주인의 말만 믿고 이사를 나갔다가 보증금을 회수할 방법이 없어 낭패를 당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임차권등기명령’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임대차가 끝난 후에도 보증금이 반환되지 않은 경우 임차인이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신청을 하면 해당 건물의 등기부에 임차인의 이름으로 임차권이 기재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임차권이 등기되면 임차인이 이사를 나가더라도 이미 취득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유지됩니다.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취득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면 등기된 때로부터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취득하게 되는 것이고요. 즉,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건물의 소유자가 바뀌거나 경매에 넘어가도 보호받을 수단이 생긴 것이지요.

임차권등기명령신청 결과도 꼼꼼히 확인하고 이사해야 안전합니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임차권등기명령신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임대차계약기간이 만료되거나 중도에 해지된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대인이 보증금을 일부라도 돌려주지 않는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청을 한 후 바로 이사를 가도 될까요? 그래서는 절대 안 됩니다. 계약서에 쓴 계약기간이 종료하였더라도 임대인과 임차인이 별다른 통지 없이 계속 살고 있었다면 임대차계약이 이전과 동일한 조건으로 갱신되는 ‘묵시적 갱신’이 되어서 계약이 유지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구요,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계약을 해지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낸 경우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계약해지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위와 같이 임대차계약이 아직 종료하지 않은 경우라면 임차권등기명령신청을 하였더라도 법원이 이를 기각할 수 있습니다. 즉, 임차권등기명령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에는 아무런 대책 없이 이사를 나가버리는 것과 똑같아서 매우 위험합니다.

따라서 임차권등기명령신청을 하였더라도 반드시 법원의 결정을 확인하고 임차권등기가 된 것까지 확인하고 이사를 나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임차권등기가 등기부에 떡하니 올라가면 당장 건물에 ‘하자’가 생긴 임대인은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마련해서 보증금을 돌려주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즉, 임차권등기명령은 소송을 하기 앞서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소송보다 효과적일 때도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이 이사를 가실 때, 아직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나갈 경우가 생기신다면 반드시 임차권등기명령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진=김지원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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