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대법 “‘종북·주사파’ 표현, 명예훼손 아니다”

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61654 전원합의체 판결

이정희 전 의원 명예훼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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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개요

이 사건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그의 남편이 보수적 정치 평론가인 변희재 및 언론사 기자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불법행위 책임을 물어 민사소송을 제기한 사안이다. 변씨는 2012년 자신의 트위터에 원고들에 대하여 “종북”, “주사파”, “경기동부연합” 등으로 지칭하는 다양한 글을 게시하였고, 나머지 피고들은 이러한 변씨의 게시글을 바탕으로 관련 기사를 작성하였다.

2. 판결의 내용

가. 사실의 적시와 의견 표현의 구별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한다. 사실의 적시란 단순한 의견 표현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한계를 설정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현대사회에서 단순한 의견 표명에 대한 제한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은 “종북”이라는 단어의 연혁까지 장황하게 설시하면서 현재의 경우 해당 단어는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자”라는 의미에서부터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대하여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는 자”까지 다양한 의미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대목은 “종북”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회적 평가 역시 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하는 부분이다. 이 점은 최근의 남북 긴장 완화 분위기를 반영한 내용으로 보인다. 즉 “종북”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다의적인 단어일 뿐 아니라 그 사회적 평가 역시 매우 가변적이어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기 보다는 변씨의 원고들에 대한 가치 평가에 가깝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대법원은 “주사파”라는 용어 역시 원고들의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의 원고들의 행위를 비판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비록 “주사파”라는 단어를 명예훼손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0다14613 판결)가 있으나 대법원은 해당 판결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이 지난 판례로서 현재는 당시와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다르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주사파” 역시 “종북”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의미 및 평가가 가변적이라고 본 것이다.

나. 공인에 대한 허용범위 내의 의혹제기

한편,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의 경우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점, 그의 남편의 경우에도 다양한 사회활동을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은 공인 또는 이에 준하는 지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공인에 대해서는 다소 광범위한 의혹제기가 허용되어야 하는데 변씨 등이 당시 제기된 사상적·이념적 의혹과 관련해서 다양한 언론보도가 있었던 만큼 변씨가 이를 진실로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3. 판결에 대한 분석

이 사건이 명예훼손과 관련하여 새로운 법리를 제시하거나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의 적시”와 “의견이 표현”의 구별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쟁점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의 경우 “종북” 또는 “주사파”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다의적으로 사용된다는 점 및 정치 상황의 변동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주사파”라는 용어는, 기존에 사실의 적시로 판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사건에서는 달리 판단함으로서 동일한 단어에 대해서도 다양한 사회적 맥락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판결은 전체적으로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는 환영할 만한 판결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예컨대 변씨의 게시물들을 살펴보면, 문제의 단어들은 단순히 “수사적”으로 사용됐다기 보다는 이를 구체적인 사실관계(원고들이 “경기동부연합”의 수장들이거나 적어도 소속이라는 사실관계)와 결부하여 게시돼 있다.

“의견이나 논평을 표명하는 형식의 표현행위도 그 전체적 취지에 비추어 의견의 근거가 되는 숨겨진 기초 사실에 대한 주장이 묵시적으로 포함되어 있거나 그 의견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따로 밝히고 있는 표현행위는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기존 입장이다.

이번 판결에서도 위 판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경우 기존 사례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이를 소수의견이 지적하고 있다). 결국 현실 사회에서 매우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사실의 적시와 의견 표현이 혼재된 형태의 표현행위”에 대한 법적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아쉽다.

4. 판결의 의의

이 사건의 경우 다소 정치적인 사건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명예훼손의 법리는 국민과 기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현재 온라인 공간에서 기업이나 연예인 등 어느 정도 공적 지위를 가지는 주체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 게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 행위의 경우 대부분 이 사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실관계의 적시를 다소 수사적이거나 과장된 표현과 혼재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명예훼손 사건에 있어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전정환 변호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