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해외선 허용되는 도박, 국내법에선 처벌

  • 해외서 도박장 운영해도 국내 경제에 해악 초래한다면 처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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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호 변호사
입력 : 2018-07-22 09:00
수정 : 2022-05-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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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18년 여름에도 휴가철을 맞이하여 많은 한국인이 해외여행을 갈 것으로 보인다. 외국에 가면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체험을 시도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불법이지만 해외에선 합법이라는 도박, 마약, 성매매 등 검은 유혹에 노출될 수 있다. 해외에서는 합법이라니깐 적발될 위험도 없고, 처벌될 가능성도 없다. 이렇게 해외에서는 허용되는 행위가 한국에서는 처벌받는 행위(범죄)가 되는 경우 한국법에 따라 처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인, 폭행, 절도 등 일반적인 형사범죄는 해외에서도 동일하게 금지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나라 법에 따라 외국인이라도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속지주의). 그러나 도박, 마약, 성매매 등 피해자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 나라가 추구하는 사회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금지될 수 있는 범죄의 경우에는 나라마다 금지·허용·침묵하는 경우가 다르다.

대한민국은 도박, 마약, 성매매가 모두 법으로 금지되고 범죄로 처벌된다. 해외에서 이러한 행위를 하였다면 "본법은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에게 적용한다"는 형법 제3조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국내법에 의하여 금지되는 행위도 외국법(행위지법)에서는 허용되는 행위라고 주장해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형법 제20조(정당행위)를 활용하면서 말이다. 이에 관하여 최근에 판시된 법원 판결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형법 제3조와 속인주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형법 제3조는 "본법은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에게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 대하여는 내국인이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국내법에 위반되는 죄를 범한 경우에는 그 행위가 행위지에서 죄가 되지 않더라도 당연히 국내법 위반으로 처벌된다는 이른바 절대적·적극적 ‘속인주의’를 규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은 자국민의 국외범을 처벌하는 헌법적 근거에 관하여 “자국민의 국외범죄는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와 동일하게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적정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법익균형성의 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볼 수도 없으므로 형법 제3조는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내국인의 국외범을 처벌하는 헌법적 근거를 그 행위가 우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내국인의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의 행위에 대하여는 비록 그 행위가 행위지에서 허용되는 것으로서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국내법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다.

3. 형법 제20조에 따라 해외에서의 범죄가 처벌되지 않는 경우

세계 각국은 자국 영역 내에서 적용되는 형사법을 가지고 있고, 자국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 내의 행위에 대하여 거의 예외 없이 내·외국인 모두에 대하여 자국의 법을 적용하는 ‘속지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내국인이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행동하는 경우에는 국내법 뿐 아니라 행위지법도 적용받게 된다.

그런데 세계 각국은 자국의 필요와 그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형사법의 내용을 달리 정하고 있다. 국내법으로는 죄가 되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행위지에서는 그곳의 법령 또는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거나 법적으로 강제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내국인은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행위를 함에 있어 어느 나라 법령과 사회상규에 따라 행동하여야 위법을 피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혼란에 빠지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도로교통법 제13조 제3항은 차량의 운전자로 하여금 도로 우측 통행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동법 제156조 제1호에서 위 통행의무를 위반한 운전자에 대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기계적으로 해석하면 내국인으로서는 외국이 지정한 도로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특정 다수가 통행할 수 있는 공개된 장소라면 차량을 우측으로 운전하여야만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 의하여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반면, 영국이나 일본의 경우 차량은 도로 좌측을 통행하도록 되어있다. 내국인이 영국이나 일본에서 차량의 통행방법에 있어 국내법과 행위지법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국인에 대하여 국내법의 준수를 요구하고 이를 위반하면 위법한 것으로 볼 경우, 내국인이 국내법을 준수하지 아니하고 행위지법에 따라 차량을 운전하더라도 그는 국내법에 의하여 처벌하게 된다.
위 도로교통법 규정이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에서의 도로교통의 안전 확보라는 법익이 전혀 침해될 여지가 없음에도 말이다.

한편, 형법 제21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항은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요건으로 ‘침해의 현재성’과 ‘방위행위의 상당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Castle-doctrine Law나 Stand-your-ground Law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적극적인 유형력의 행사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 형법과 달리 ‘침해의 현재성’과 ‘방위행위의 상당성’을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으로 요구하지 않거나 대폭 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을 달리 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국인이 미국에서 그 지역민으로부터 생명이나 신체의 위협을 받거나 받을 위험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완화된 미국법이 아닌 요건이 엄격한 국내법에 따라 방위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면, 내국인으로서는 적절한 방위행위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내국인이 대한민국 영역 외에서 한 행위가 국내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행위지에서 법령이나 사회상규에 의하여 당연히 허용되는 행위로서 국내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을 침해하지 아니하여 대한민국의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와는 무관한 경우에는, 형법 제20조의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관한 규정을 유추 적용하여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해석이다.

4. 그럼에도 해외에서의 도박·마약·성매매 등을 범한 경우, 국내법에 따라 처벌된다.

최근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2017노2802 사건에서 문제된 범죄는 ‘도박개장죄’였다. 형법 제246조는 도박죄와 상습도박죄를 규정하고, 제247조은 도박장소 등 개설죄를 규정하고 있다. 형법이 도박 관련 범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정당한 근로에 의하지 아니한 재물의 취득을 처벌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경제에 관한 건전한 도덕법칙을 보호하는 데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에 도박장소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경우에도 그 운영이 우리 사회의 경제에 관한 건전한 도덕법칙을 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도록 운영된다면, 이는 도박 관련 범죄를 처벌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을 침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금지와 처벌은 우리나라의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는, 비록 그 행위가 행위지 법령이나 사회상규에 의하여 허용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형법 제20조가 정한 ‘법령에 정한 행위’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수는 없다.

도박개장죄에서 내국인의 국외범과 형법 제20조에 관한 판단방법은 다른 유형의 범죄(마약·성매매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등의 사용은 내성과 의존성 때문에 과태료 같은 행정벌로는 그 규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더 강력한 마약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환각상태에서 다른 강력 범죄로 나아갈 위험성도 있으므로, 그와 같은 사회적 위험성을 예방 또는 제거할 필요가 있다. 대마의 사용이 오래전부터 사회 전반에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어 있던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을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대마사용을 비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은 역사적·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주장으로 타당하지 않다. 마약범죄에서도 행위지법에 따른 항변은 받아들여지기 곤란하다.

또한 ‘성매매’의 경우, 외관상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인 성매매행위도 인간의 성을 상품화함으로써 성판매자의 인격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고, 성매매산업이 번창하는 것은 자금과 노동력의 정상적인 흐름을 왜곡하여 산업구조를 기형화시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매우 유해한 것이다. 성매매는 그 자체로 폭력적, 착취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경제적 대가를 매개로 하여 경제적 약자인 성판매자의 신체와 인격을 지배하는 형태를 띠므로 사회 전반의 성풍속과 성도덕을 허물어뜨린다. 역시 행위지법에 따른 항변은 받아들여지기 곤란하다.

5. 나가며

서울고등법원 2017노2802 사건에서 피고인은 도박개장죄가 영업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음에 착안하여, 베트남 법령에 따라 허가를 받았으며 해외관광객을 대상으로 적법하게 영업하였다고 항변하였으나, ① 재판과정에서 1990년부터 한국에서 사행성 오락실을 운영해오다가 적발되어 처벌받은 전과가 있고, ② 주로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카지노를 영업하여 실질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었으며, ③ 제출된 허가증 역시 카지노 영업허가증이 아닌 전자오락실 영업허가증이었다는 이유로 이러한 항변은 모두 배척되었다.

이번 판결은 내국인의 국외범에 관하여 이를 비범죄화 하고 있는 행위지법과 충돌되는 경우에 그 처벌에 관한 기준을 제시한 판결로서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사진=You In La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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