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치] 지성우교수의 헌법으로 읽는 정치와 인권-문재인대통령의 개헌 승부수: 본인 임기 3년으로 단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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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며

2018년 새해 벽두에 문재인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다시 한 달 후인 지난 2월 13일 대통령 자문기구로 헌법개정자문위원회를 구성하면서, 3월 13일까지는 대통령에게 개헌안을 보고한다고 발표하였다.

이하에서는 그동안 국회 차원에서만 논의되던 개헌의 문제가 대통령이 정부안을 제출하는 시기에 과연 어떠한 헌법적·정치적 문제가 야기될 지에 관해 전망해본다. 우선 개헌절차에 대한 헌법 규정을 살펴보고, 문재인정부의 개헌안 발표일(4월 13일)을 예상해 본 후, 개헌이 성사될 가능성이 큰 이유에 대해 논의해 본다.

II. 개헌절차에 대한 헌법 규정

현행 헌법 제128조 제1항에 의하면 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국회에서의 논의가 지지부진하면 대통령도 독자적인 헌법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다만 헌법 제128조 제2항에 의하면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

국회 또는 대통령에 의하여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이 20일 이상 공고하여야 한다(헌법 제129조). 국회는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하여야 하며, 국회의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헌법 제130조 제1항). 헌법개정안은 국회가 의결한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헌법 제130조 제2항).

헌법개정안이 제2항의 찬성을 얻은 때에는 헌법개정은 확정되며, 대통령은 즉시 이를 공포하여야 한다(헌법 제130조 제3항).
이러한 헌법개정절차에 따르면 겉으로 보기에는 최장 90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간을 단축하면 국회의 통과절차와 국민투표까지 2개월이면 넉넉할 수도 있다.

III. 문대통령의 정부개헌안 발표일은 2018년 4월 13일?

2018년 설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 13일 문대통령은 정부안 마련을 위해 대통령 직속 개헌자문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하였다. 기사에 따르면 정해구위원장을 비롯해 32명으로 구성된 대통령의 개헌자문위원들은 앞으로 한 달 동안 개헌안을 마련한 후, 2018년 3월 13일 대통령에게 자문결과를 보고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대통령은 개헌안을 언제 국민들에게 발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개헌안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하기에 적합할까? 개헌자문위원회 구성은 2월 13일, 대통령에게의 보고는 3월 13일 한 달이다. 그러면 여론수렴 기간을 다시 한 달로 잡고 한 달 후인 4월 13일에 발표하는 것은 어떨까? 마침 금요일이라서 중요한 기사를 발표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하다.

하지만 만일 대통령의 참모가 역사의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4월 13일에 개헌안을 발표하는 게 좋겠다. 개헌안 발표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국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 (중략) ~ 오늘은 지난 31년 전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전대통령 등 반민주적인 호헌세력들에 의해 민주적인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거부된 날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헌선언은 결국 6·10민주화 운동을 유발시켰고, 이 6·10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30년 후 촛불혁명으로 승화되었습니다. 본인은 이렇게 뜻깊은 오늘 30여년 만에 민주화를 보다 진전시킬 수 있는 개헌안을 발표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후략) ~"

흔히 현재 20·30세대들은 1987년 6월 10일이 6·10항쟁이 시작된 날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그 해 4월 13일이 어떤 날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전두환 대통령 당시인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국민 직선제가 아니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전대미문의 독재적인 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선출되었다.

제5공화국 헌법 제정 당시부터 국민들의 직선제 요구가 거세게 제기되자 집권 말기 전두환 전대통령은 국회에서 논의해서 통일된 안을 달라고 하면서 슬쩍 국회로 공을 넘겨버렸다. 그런데 청와대가 직선제를 거북해한다는 것을 뻔히 아는 당시 집권당 민정당은 당연히 이런 저런 이유로 차일피일하면서 직선제 개헌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를 기화로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4월 13일에 소위 "호헌조치(흔히 역사가들은 '4·13호헌조치'라고 한다)"를 선언한다. 요지는 당시의 5공화국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당시 헌법에 따라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그냥 전전대통령이 임명하는 후보를 간접선거를 통해 차기대통령으로 선출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하면서 전국적으로 직선제 개헌을 위한 집회가 확산되었다(당시 87학번 신입생이었던 필자와 친구들도 중간고사 거부투쟁에 동참하면서 대학에서의 첫 시험은 최루가스가 난무한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6월 10일을 기점으로 도저히 경찰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정도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마침내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호헌철폐와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하는 6·29선언을 발표하였다.

그 후 1987년 12월 직선제로 개헌한 헌법 하의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소위 3김은 노태우 민정당후보에게 패배한다. 1988년 집권한 노태우대통령의 민정당은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27명의 현역 국회의원을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강수를 두며 과반수 의석 확보에 전력투구했다.

하지만 민정당에 대한 반감과 5공 청산 열망으로 인해 호남 지역의 전멸을 비롯해 125석(지역구 87석, 전국구 38석)을 확보하는데 그쳤고, 이 후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안 부결 등 야당에게 정국주도권을 빼앗기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놀란 노태우 정부는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내각제 개헌 밀약을 조건으로 이른바 ‘보수대연합(3당 합당)’을 비밀리에 추진하여 1990년 1월 22일, 당시 집권 여당 민주정의당(약칭 ‘민정당’)과 제2야당 통일민주당(약칭 ‘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약칭 ‘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약칭 ‘민자당’)을 출범시켰다. 이를 두고 3당 합당에 비판적인 입장에서는 ‘3당 야합’이라고도 한다.

그 후 김영삼총재는 노태우대통령 측근들과의 권력투쟁 등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993년 열망했던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이때부터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박정희·전두환 시절까지 그동안 전통적으로 줄곧 '반독재, 민주화 세력'의 선봉이었던 부산·경남(PK)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에서 졸지에 '보수 대 진보'로 재편된 정치계에서 김영삼대통령을 따라 대구·경북(TK)과 함께 '주류이자 보수'를 대표하는 지역 중의 하나로 변신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노무현 등 부산·경남을 대표하는 몇몇 정치인들은 김영삼의 길이 민주화 세력을 욕보였다고 비판하면서 종국에는 김대중대표 진영으로 합류한다.

이로써 이승만, 박정희 치하에서의 '민주 대 반민주'의 정치세력판도는 '보수 대 진보' 또는 '호남 대 반호남'으로 재편된다.

지역감정이 본격적이고 노골적으로 정치에 활용되기 시작하였고, 김영삼을 대표로 만들기 위한 모임에서 '우리가 남이가'하는 구호가 제창되기도 했다. 김영삼과 이회창으로 이어지는 보수세력은 영남을,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진보세력은 호남과 수도권을 배경으로 성장하였다. 반대로 호남에서는 보수세력, 영남에서는 진보세력이 지역감정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대통령과 진보진영 인사들은 집권하기 전 이미 영남, 특히 부산·경남을 '보수에서 다시 민주화 세력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보수 대 진보' 또는 '영남 대 호남'의 구도로 선거를 치르면 어떤 선거에서도 진보 또는 호남과 관계가 있는 정치세력은 영남에서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반대로 영남과 관계 있는 보수정당은 호남에 발도 못 붙이게 되었다. 참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기이한 정치구도이다. 1개 선거구에서 1인만 선출하는 현재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이 구도가 더 공고화된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정치판을 교체하고 본인이 민주화 세력의 편에 서려면 상대편은 확실하게 '반민주세력'이어야 한다. 또는 '반민주세력화'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일부 보수 정치평론가들은 '1987', '택시' 등의 영화나 박정희정권에서의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한 일련의 보도, 이명박대통령의 부정비리 등에 대한 수사 등이 모두 보수전체를 '반민주세력'으로 내몰기 위한 상징성을 형성·확대·각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민주 대 반민주'를 구분하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개헌 대 반개헌(또는 '호헌')'이 '민주 대 반민주'로 치환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개헌에 반대하려던 정치세력은 멈칫하게 된다. 개헌안에 반대하자니 반개헌, 나아가 자칫 반민주세력의 멍에를 짊어질 수 있고, 찬성하자니 6월 13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지방선거에서의 승리 또는 최소한의 수성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헌안을 발표하기에 가장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을 선택하라면 필자는 망설이지 않고 4월 13일, 그것도 전두환 전대통령이 호헌조치를 발표했던 바로 그 시각을 택할 것이다.

지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과거 민정당처럼 수구보수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에서 야당 당대표인 홍준표대표를 일컬어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는 아주 귀하신 분"이라고 평가하고 있을 만큼 연일 SNS를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가 독단적이라면 개헌이라는 메시지의 타이밍과 상대방이 최적의 조합이 될 것이다.

IV. 문재인대통령의 개헌승부수는 대통령 임기 단축?

1. 개헌을 둘러싼 정치현황 분석

문제는 아무리 이렇게 적합한 상황에서라도 국가적으로 가장 중대한 사안인 개헌의 문제를 국회의 합의가 아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데 아직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국민들은 지금 본인들의 삶에 너무 바빠 개헌의 중요성이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개헌? 들어는 봤지만 … 아! 몰랑!" 정도의 반응이다.

다수가 법조인으로 구성된 법대 동창모임에서조차 헌법학자인 필자가 아무리 개헌을 부르짖어도 귀를 기울이는 동료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9차에 걸친 개헌은 1960년 4·19직후에 부정선거사범을 처벌하기 위해 소급입법을 합법화한 제4차 개헌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적인 격변기 직전, 또는 직후에 실행되었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이번처럼 평온한 시기에 개헌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즉 한국에서의 개헌은 독일처럼 평상시에도 수십 차례 필요에 따라 조금씩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나라가 뒤집힐 정도의 정치적 변고'가 있은 후에야 비로소 한 번씩 개헌이 되었던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난 1월의 국회 시정연설, 2월 13일 개헌자문위원회 출범, 3월 13일 개헌자문위원회의 대통령 보고(여기까지는 이미 발생했거나 향후 예정된 일정임), 4월 13일 문대통령의 정부측 개헌안 발표(예상), 6월 13일 전국 지방자치선거와 동시에 개헌 찬반투표 및 그 결과 영남(적어도 이번에는 일단 부산·경남에서만이라도)에서의 선거승리를 통한 '보수 대 진보'의 정치판을 '민주 대 반민주'세력으로 재편하기 위해서는 6월 13일에 반드시 개헌투표가 실행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에게는 그다지 개헌문제를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쳐야한다는 절박함이 없다. 5년 단임이든 4년 중임이든 국민 직선제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아무리 역사적인 4월 13일 호헌조치일을 택해 개헌안을 발표한다고 해서 국민들의 관심과 야당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도 문대통령은 6월 13일 동시선거를 향해 한걸음씩 전진하면서 흔들리지 않고 정치일정을 제시하고 있다.

도대체 문대통령에게는 국민들의 무관심과 야당의 반대를 뚫을 수 있는 회심의 반전카드가 있는 것일까? 없다면 무모하고 허망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문대통령은 아마 "본인은 선거공약을 지키려 했는데 야당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정도의 선언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결과를 예상하기에는 요즈음 개헌문제를 둘러싼 대통령과 주변 핵심참모들의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결연하다.
만일 히든카드가 있다면 국민들의 관심과 야당의 찬성을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결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2. 문대통령 임기단축 헌법적으로 가능할까?

해답은 아마도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한다(또는 단축할 수도 있다)"는 선언을 개헌안과 함께 발표하는 것이라고 예상된다. 궁금하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헌법과 정치학 case문제를 풀어보면 된다.

"문제 1 : 대통령 M은 국가의 권력구조개편, 그 중에서도 특히 4년 중임제로 개편하면서 현행과 같은 제왕적인 대통령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미래 한국의 장래와 국민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이에 대통령은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발표하면서 “만일 이 개헌안이 통과된다면 본인의 임기를 2020년 6월까지만으로 하겠다. 즉 5년의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할 수도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대통령의 선언은 헌법에 합치되는가?"

"문제 2 : 위의 사례에서 현재의 야당들은 대통령 M의 개헌선언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 중 어느 쪽의 입장을 선택할 것이라고 판단하는가? 자신의 의견과 그 근거를 제시하시오."

1번 문제는 전형적인 헌법문제이고, 2번은 정치학 문제의 영역에 속한다.

위 두 문제에 대한 결론은 아직 누구도 예단할 수 없다. 본래 헌법은 규정자체가 매우 추상적이다. 이는 대립하는 정치세력들이 모두 헌법을 각자의 논리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사상의 자유시장'을 국민들이 마음껏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정답은 없다. 다만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는 있다. 따라서 어떤 결론도 가능하다.

이하의 결론은 필자의 견해일 뿐이다. 얼마든지 다른 해석과 예상도 가능하다.

먼저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적용할 수 있을까?

개헌은 중요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일단 이 헌법 72조를 적용할 수는 없다. '임기를 축소하겠다'는 것은 국가 중요사안이기는 하지만, 임기축소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국민투표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임기축소를 이유로 개헌안 통과를 읍소하더라도 헌법에 위반하는 행위는 아니다.

둘째, 혹시 대통령이 개헌안 통과를 전제로 자신의 임기를 축소할 수 있다고 발표하는 것은 헌법상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한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한 개헌사항에 관해서는 특별한 금지규정이 있다. 바로 헌법 제128조 제2항이다.

여기에서는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만일 대통령이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안을 제출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중대한 헌법 위반행위로서 탄핵사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2022년 6월까지로 예정된 문대통령의 임기를 2020년 6월까지로 단축해서 3년만 대통령직을 유지할테니 개헌안을 통과시켜달라고 한다면 헌법위반일까? 정답은 아마 '헌법위반이 아니다'일 것이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만을 금지하고 있다. 임기단축은 헌법위반사항이 아니다.

헌법의 명문규정과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겠다(또는 ‘단축하는 것을 포함해서 모든 사항을 고려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매우 큰 정치적 파장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로 헌법위반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3. 대통령의 임기단축과 야당(들)의 입장예측

위에서 문제 1에 대한 해답 즉,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개헌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하는 것이 헌법위반이 아니라는 결론은 매우 큰 논쟁의 대상이 된다. 필자의 견해와는 반대로 위헌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위헌인지 합헌인지는 결국 국민들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러한 헌법상의 논쟁과는 별개로 과연 정치학적 측면에서 보면 야당(들)은 문대통령의 임기단축선언을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극한 정치투쟁으로 나설 것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야당에서 약간의 논란은 있겠지만 결국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수용하여 개헌안을 압도적으로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대통령 임기를 2020년 6월까지로 단축하면 현재 당대표급 정치인 본인들이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한국의 정치성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2016년 4월 총선 때만 해도 박근혜전대통령의 이름을 부적처럼 앞세워야만 당선될 것처럼 하던 소위 '친박', '뼈박', '진박'들은 어느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통령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총선 후 불과 1년 반도 채 되지 않아 탄핵을 받아 영어의 몸이 되었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대권주자들에게 향후 4년 반이라는 기간은 너무 길다. 지방선거, 총선 등 대형선거와 정치적 격랑이 본인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2020년 6월에 대선을 치른다면 현재 대부분 50대 후반이거나 60대인 야당의 대권주자들에게는 조기에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유리하다.

둘째, 2020년 6월에 조기 대선을 치른다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권을 현재의 대권주자들이 그대로 행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간단한 수학적 계산법이 적용된다. 2020년 4월에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시행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차기 대통령 선거는 2022년 6월이다. 당내에서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당내에 우호세력들을 형성해 놓아야 한다. 따라서 대권주자로 가는 길목에서 치러지는 2020년 4월 총선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자기와 가까운 사람이 현역의원이 되도록 해야 하고, 각 당에서 총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계파별로 내분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자칫 총선과정에서 향후 자신을 지지할 유력한 의원후보가 낙선이라도 하는 날에는 대선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회의원직은 대선에서 중요하다.
만일 2020년 6월에 조기대선을 치른다면 2019년 12월~2020년 1월쯤 당대표가 되는 사람이 내분 없이 자기 당의 국회의원 후보들을 전원 공천할 수 있고, 이를 발판으로 대권후보가 될 것이다. 현재의 유력 대선후보자들이 비록 한 당에 있기는 하지만 그때쯤이 되어 대선후보로 선출되지 못한다면 또다시 다른 당을 창당할 수도 있겠다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당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본인이 대선후보로 선출되면 해당 정당의 대선후보인 동시에 모든 공천권을 전속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현재의 대선후보들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셋째, 2020년 6월 조기 대선이 되는 경우 정부·여당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

헌법적으로 5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데 2년이나 먼저 대통령직을 던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현행 헌법 하에서 선출된 모든 대통령들이 집권 4년차 때부터 권력의 기반이 붕괴되었다는 '집권 4년차 법칙'을 생각해보면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 있다.

'집권 4년차의 법칙'이란 5년 단임의 대통령제하에서 집권 4년차로 접어들면서 언론·학계·검찰 등이 현 정권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폭로하게 되고, 5년차로 접어들면 지지율 10% 대로 떨어지면서 친·인척비리, 측근비리 등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집권 4년차에 언론이 현정권에게는 마치 야수처럼 돌변하게 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행 헌법 하에서 선출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6명의 대통령들이 모두 예외 없이 '집권 4년차의 법칙'을 경험하였다. 만일 필자에게 3년차에 대통령직을 내려놓는 방법과 집권 4년차를 맞이하는 방법 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3년차에 몇 가지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 높은 지지도를 유지한 채 명예롭게 은퇴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사심을 버리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완성한 대통령'이라는 역사의 평가는 당연한 일이다.

혹시 3년차에 그만둔다고 선언하더라도 너무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아서 한 번 더 출마하라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다면 그때 가서 재출마를 고려해볼 수도 있겠다. 물론 이때는 4년 중임을 할 수 있지만 4년 단임으로만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미처 끝내지 못한 국정과제들을 챙기고 통일의 기초도 닦겠다고 하면 재당선가능성도 매우 높다.

집권 여당 측에서 보면 3년 차에 현직 대통령의 지지도가 유지될 때에 대선을 치르게 될 테니 차기 정권을 창출하는 데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더욱이 여당의 차기 대선후보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V. 글을 맺으며

역사는 가정을 허락하지 않지만 미래는 상상과 예측의 영역이다. 위에서 살펴본 헌법과 정치, 그리고 개헌, 총선 및 대선의 상호관계는 어디까지나 수많은 가능성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천재지변이나 인위적인 변화에 의해 정치일정 전체가 흐트러질 수도 있다.

일찍이 김대중대통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현안을 풀어가야 한다고 설파하였다. 정치적 술수로만 정국을 풀어나갈 수 없고, 반대로 면밀한 계산과 혜안이 없으면 올바른 정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명심보감에 “미래를 알고 싶으면 먼저 과거를 성찰하라(欲知未來, 先察已然)”고 했다. 개헌을 통해 달성하려는 다양한 목표가 있겠지만 역사가 단지 그 방향으로만 흘러간다고 호헌장담한다면 역사에 무지하거나 최소한 지나치게 용감한 사람이다.

어쩌면 한국사회를 '보수 대 진보'에서 '민주 대 반민주'로 재편하려는 시도 역시 이미 흘러간 옛노래를 읊조리는 것과 같이 허무한 일일지도 모른다.

일부 또는 단기간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1987년 이후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몇몇 경세가의 힘과 지략으로 이리 저리 돌리기에는 그동안 한국사회가 너무 성장하고 개화되었다. 적어도 한국 역사는 이제 결코 몇몇 전략가들에 의해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역사는 자기가 갈 길로 뚜벅뚜벅 전진하고 있을 뿐이다.

1987년에 독재자에 맞서 온갖 전략을 계획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략 때문에 한국이 바뀌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본인들의 전략 때문이 아니고 독재세력에 대한 온 국민의 저항으로 인해 변화된 것이다.

그 사람들은 아직도 현재가 혹시 1987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더 이상 1987년 전두환과 같은 무지막지한 독재자는 없다. 그저 국민들의 절절한 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도 못하고 헛소리를 하고 누가 봐도 창피할 정도로 품격 없는 언어들을 SNS에 쏟아내는 몇몇 이상하고 불쌍한 사람들로 구성된 야당만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국민들은 ‘민주 대 반민주’ 같은 추상적인 구호보다는 현실적으로 자신의 삶이 좀 더 나아지고, 윤택하고, 평등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미 한국국민들은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민주화의 정점을 맛보았다.

구호화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보다는 매일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민초들의 고달픈 삶을 어루만지는 정책들이 더 절실하다. 이러한 민심의 흐름과 방향을 잘 파악하는 것이 도식적인 전략을 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것이 제대로 된 정치의 시작이다.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역사의 흐름을 타야 한다.

본인이 역사라고 생각하고 덤비는 사람에게 역사는 결코 주인공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락으로 떨어질까 두려움에 떨면서 한 발자국씩 조심스럽게 앞서 나가는 사람만이 먼 훗날 뒤를 돌아보면 자신 스스로가 역사의 일부였던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역사와 국민여론 앞에 겸손해야 하는 까닭이다.

과거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반성을 바탕으로, 선한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더 나은 한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정치를 기대한다. 다만 현대 한국헌정사는 우리에게 "개헌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가는 것이다"라고 가르쳐주고 있다는 점만은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