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없이 형사공탁 가능...부작용 대비해야

  • 내달 9일 '형사공탁특례' 시행
  • "벌써부터 합의 종용"...부작용 조심 필요
  • 법조계, '꼼수감형' 막기 위해 보완책 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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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18 17:08
수정 : 2022-11-1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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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아주로앤피]
#1. 피고인 A씨와 피해자 B씨는 평소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러던 중 함께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A씨가 B씨를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피고인은 법원에 공탁을 요청하려 했다. 아는 사이였기에 A씨는 B씨의 이름과 연락처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몰라 공탁을 하지 못했다. 피해자 B씨는 수차례 A씨와의 합의를 거부했다. 결국 형사공탁이 이뤄지지 않아 A씨는 1심 실형을 선고받았다.
 
올해 12월 9일부터 피해자의 동의와 무관하게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법원에 공탁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성범죄 등 형사 사건에서 피해자가 접촉을 거부해 합의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가해자가 합의금 상당액을 공탁하면 반성의 뜻을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피해자의 동의가 없어도 형사공탁을 할 수 있다는 개정 공탁법(형사공탁 특례제도)이 다음달 9일부터 시행된다.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법원에 공탁금을 맡겨 두면 피해자가 추후 이를 수령해 피해 회복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양형 참작을 받기 위해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을 막자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취지다.
 
기존엔 피해자의 성명, 주소 등 인적 사항을 알지 못하면 형사공탁을 할 수 없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 등으로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선 법원을 통해 피해자 동의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합의를 원치 않으면 공탁이 어렵다.

형사변제공탁사건의 신청 및 지급 현황 [사진='사법보좌관 제도와 형사공탁 특례 제도의 현안과 쟁점' 자료집 갈무리]

사법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형사공탁사건 신청건수는 2017년 1만328건에서 지난해 9월 1639건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개정법이 시행되면 피해자 인적사항 대신 사건번호만 알아도 공탁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성폭력 같은 형사사건의 피해자가 용서할 의지가 없음에도 무작정 공탁금을 맡기는 일방적 공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판사가 선고 형량을 정할 때 통상의 합의 금액보다 훨씬 큰 금액이 피해회복금으로 공탁된 경우 감형 참작 사유로 고려할 수 있다.
 
최근 재판 현장에서는 최근 선고를 미뤄 달라거나 혹은 개정안을 빌미로 합의를 종용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법조계는 개정된 법을 악용할 수 있는 사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올해 11월 초 한 형사사건에서 피해자 C씨는 가해자 D씨의 지속적인 합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해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자 C씨는 “12월 9일부터 형사공탁 가능한 거 알고 있냐”며 피해자 측으로 연락을 해왔다.
 
이어 “어차피 합의 안 해주면 12월에 공탁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지금 합의하는 게 피해자한테도 이득 아니냐”고 합의를 강요했다.
 
이에 피해자 측 국선대리인은 “법 개정을 앞두고 꼼수를 부리며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공탁금이 피해회복금으로 쓰이는 사례 역시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금전을 맡기는 공탁의 성격상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법원별 공탁금 현황’(8월 말 기준)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에 2조7945억 7003만원, 서울남부지법 3563억6654만원 등 각 법원마다 상당한 금액의 공탁금이 쌓여 있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개정법 시행 이후라도 꼼수 감형 등을 막는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또한 피해자의 용서나 합의 의지 없이 형사 공탁이 이뤄질 경우 이를 법관이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기준이 규정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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