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문재인 정권에 '공무원의 영혼'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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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8 17:11
수정 : 2022-10-1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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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형인 이래진씨(왼쪽)가 지난 7일 오전 문재인 전 대통령,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감사원 관련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내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월 22일 새 정부 첫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는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은 새로운 공직자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공직자는 정권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지난 13일 발표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권이야말로 공무원을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존재로 전락시킨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해양수산부 소속인 이 공무원은 2020년 9월 서해에서 근무 중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발견돼 총살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졌다. 당시 국방부는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발표했다. 해경은 세 차례 수사 브리핑을 했는데 브리핑이 거듭될수록 자진 월북이 확정적인 것처럼 말했다. 1차 브리핑 때는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더니 2차에서는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3차 때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월북 동기까지 설명했다. 당사자를 조사하지도 않고 어떻게 그 사람 속마음인 동기를 판단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영혼 없는 존재' 되지 말라더니


그런데 국방부와 해경이 왜 그런 발표를 하게 됐는지가 이번 감사원 감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감사원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지시에 따라 국방부와 해경 등이 공무원 실종을 ‘자진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국방부는 처음에는 합참 측에서 북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조류 방향 등으로 볼 때 월북 가능성이 낮다는 보고를 받았다. 국정원도 월북 또는 표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등 월북 가능성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던 중 국방부는 사건 다음 날 이 공무원이 북한군에  월북 의사를 표명했다는 첩보를 보고받았다. 국방부는 공무원이 자진 월북한 것으로 보이며 북한군에 의해 사살되고 시신도 소각된 것으로 보인다고 청와대 안보실에 보고했다. 안보실이 적극 나선 것은 이때부터다. 안보실은 이 보고를 받고는 자진 월북 내용을 기초로 종합분석 결과를 작성해 보고하고 언론에도 발표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 또한 해경에도 자진 월북에 맞춰 수사 방향을 잡고 언론에 대응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안보실은 해경에서 월북 여부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도 월북으로 판단된다는 ‘주요 쟁점·대응 요지’를 작성해 국방부 등 관계기관에 4차례 전달하며 자진 월북으로 ‘한목소리로’ 대응하도록 방침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와 해경은  실제 정보 내용이 아닌 안보실 방침에 따라 지진 월북으로 결론을 정한 뒤 이 결론과 맞지 않는 정보는 분석과 검토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대신 ‘다른 승선원과 달리 혼자 구명조끼 착용’ ‘선박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발견’ 등 안보실이 알려준 내용을 근거로 ‘자진 월북 시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는 종합분석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런 내용들은 당시 국방부나 해경이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해경은 선박 구명조끼 수량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고, 국방부 자료에는 선박 CCTV에  사각지대가 있다는 내용은 없었다. 국방부 장관은  월북으로 몰기 위해 MIMS 등 군 첩보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당시 MIMS를 운영하던 실무자가  퇴근했지만 장관 지시 이후 실무자가 다시 사무실로 나와 오전 3시쯤부터 군 첩보 보고서 60건을 삭제했다. 


해경이 세 차례 수사 브리핑을 하면서 자진 월북으로 방향을 몰아간 것도 안보실 지시와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해경은 이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 안 된 내용을 월북 근거나 동기로 삼고 확인된 증거는 은폐했다. 2차 브리핑을 앞두고는 해경 수사팀이 수사가 진행된 내용이 없어 발표를 거부하고, 브리핑을 맡은 간부는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해경에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의견은 무시되고 안보실 지시와 지침대로 발표됐다. 
 

'정권 뜻 맞추는 존재'로 전락시켜


안보실 지시에 따라 국방부와 해경 등 관계 기관이 조직적으로 ‘월북 몰이’를 해갈 때 자진 월북 결론에 맞춰 관련 자료를 작성하는 작업을 했을 사람은 국방부와 해경 등 실무팀 공무원들이다. 이 공무원들은  상부 지시에 따라 자료를 은폐도 하고 무시도 하고 삭제도 하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증거로 삼았다. 이 공무원들이 이런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과연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라고 자부심을 가졌을까, 아니면 ‘그저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존재’라고 자괴감을 느꼈을까? 물어보나 마나다. 문재인 정권이야말로 공무원을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존재로 전락시킨 게 아니고 뭔가. 


공무원 피살 사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북한 어민 2명을 강제 북송할 당시 “귀순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통일부가 지난 6월 공개한 사진을 보면 판문점 군사분계선상에서 북송되는 어민이 북한군에게 두 팔을 잡히자 엉덩이를 뒤로 최대한 빼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이 귀순 의사가 없었다면 왜 저리 몸부림치며 끌려가지 않으려고 했을까? 통일부는 진짜 귀순 의사가 없어 북송된 북한 주민들이 북송되는 장면도 공개했다. 이들은 안 끌려가려고 몸부림을 치는 게 아니라 순순히 자발적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어떤 주민은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이들 어민 2명은 나포된 직후 합동 조사 과정에서 한국에 귀순하고 싶다는 의사를 자필로 적은 ‘보호 신청서’를 당국에 제출했다. 국정원은 이 문건에 ‘귀순자 확인 자료’란 제목을 붙여 청와대 국가안보실에 보고했다. 그런데 안보실은 문건 제목을 ‘선원 송환 보고서’로 바꿨다. 처음부터 귀순을 받아들이지 않고 북한에 송환하려고 그랬다고 볼 수밖에 없다.


통일부, 안기부 등 관련 공무원들이 귀순 의사가 없다고 허위서류를 작성하고 강제 북송에 가담했다면 정권 압력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영혼 없는 존재’가 돼 버린  셈이 된다. 문재인 정권이 겉으로는 정권보다 국가에 충성하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정권 뜻에 맞출 것을 강압함으로써 영혼 없는 존재로 몰아갔다는 얘기가 된다.


산업부가 2018년 4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결과를 조작하도록 한국수력원자력에 지시했고 한국수력원자력은 경제성이 없는 것처럼 평가 결과를 조작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라고 한마디했다. 이 한마디가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으로 이어졌고 이에 맞추려고 경제성까지 조작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9년 11월 탈원전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자 산업부 공무원은 상부 지시에 따라 일요일 한밤중에 사무실로 나와 관련 자료들을 무더기 삭제했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에게서 유래됐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에서 관료를 ‘정치 관료’와 ‘전문 관료’로 나눴다. 정치 관료란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과 정치적으로 임명된 장관 같은 정무직 공무원을 말하고, 전문 관료는 직업 공무원을 말한다. 


베버는 근대 국가는 전문 관료제를 특징으로 한다면서 전문 관료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행정’만 해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자기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했다. 베버가 말한 정치란 ‘투쟁’ ‘당파성’ 등을 뜻한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말했다. “관료는 개인 감정을 갖지 않는다. 이상적인 관료는 영혼이 없다”고 했다. 


'공무원에겐 영혼 없다' 원래 뜻 되새겨야​
 

베버가 ‘영혼 없는 관료’를 언급한 것은 관료제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관료제의 특성은 각자에게 주어진 업무를 엄격한 규칙과 절차에 따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공무원은 법과 규정만 따를 뿐 자기의 신념이나 소신을 내세우면 안 된다. 국민 선출로 구성된 정부가 결정한 정책은 자기 신념과 다르더라도 군말 없이 시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영업자의 영업을 제한하기로 했을 때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자기 신념과 맞지 않는다고 영업 제한 집행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대출을 규제하기로 한 정책을 담당 공무원이 자기 철학과 다르다고 해서 거부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관료는 정부 정책이 자기 신념과 다르더라도 그대로 정확히 집행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베버는 그런 점에서 관료는 영혼이 없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관료는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신 정책 잘못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 책임은 오로지 정치 관료들이 진다. 정치 관료가 선거를 통해 심판받는 게 바로 책임지는 것이다. 


여기서 보듯 공무원의 영혼은 당파를 초월한 정치적 중립의 입장에서 ‘정치’가 아닌 ‘행정’에 전념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월북 몰이, 북한 어민 강제 북송,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사건에서 공무원을 행정이 아닌 정치 속으로 몰아넣었다. 정권 뜻에 맞춰 사실을 숨기고 왜곡하고 삭제하도록 했다. 공무원을 영혼 없는 존재가 아니라 '영혼이 가득 찬' 존재로  만들었다. 정권 뜻에 맞춰 행동하는 정치성과 당파성이라는 가짜 영혼으로 말이다. 문재인 정권에 공무원의 영혼이란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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