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쟁점] "심신 미약" 주장한 이용구 전 차관... 외국 법원이었다면

  • 주취감경 인정하지 않거나 '가중처벌'
info
입력 : 2022-01-27 15:37
수정 : 2022-02-04 09:09
프린트
글자 크기 작게
글자 크기 크게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지난 2020년 11월 6일 술에 취한 상태로 택시에 탑승해 운전 중인 택시 기사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이 “심신미약 상태였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 제32부(재판장 윤종섭)는 27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운전자 폭행, 이하 ‘특가법’)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차관에 대한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공판준비기일이란 첫 공판을 열기 전에 검사와 변호인이 쟁점과 증거를 정리하는 절차를 말한다. 향후 공판(형사재판)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공판준비기일은 재판의 중요성이나 규모에 따라 여러 번 개최될 수 있다. 횟수는 법원이 정한다. 이날 이 전 차관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은 공판이 아니기 때문에 피고인 출석을 강제하지는 않는다. 

이 전 차관은 2020년 11월 6일 서울 서초구 아파트 자택 앞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 기사 A씨의 멱살을 잡고 밀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운전자 폭행) 등으로 지난해 9월 기소됐다. 당초 이 사건은 발생 직후 경찰에서 내사 종결했으나 이 전 차관이 2020년 말 차관직에 임명된 뒤 세간에 알려지며 재수사가 이뤄졌다. 이 전 차관은 지난해 5월 사의를 표했다.

이 전 차관의 변호인은 이날 "특가법 위반 혐의에 대한 공소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건 발생 당시 이 전 차관은 만취 상태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미약했다", "이 전 차관이 술에 취해 운행 중인 택시에 탑승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했다. 

‘주취감형’을 주장해 특가법 적용을 최대한 피해가려는 전략을 세웠다는 분석이다. ‘주취감형’ 제도는 만취 상태로 범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하는 것을 말한다.
 
개정 전 형법 제10조 제2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규정해 심신미약이 인정되면 형법 제55조에 따라 사형과 무기징역형을 선고할 수 없고, 해당 범죄의 법정형을 의무적으로 1/2 감경한 범위 내에서 선고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12월 당시 만 8세 여아를 납치해 성폭한 혐의로 법원에 넘겨진 조두순이 주장한 ‘주취감경’을 담당 재판부가 받아들여 조씨의 형량을 무기징역에서 징역 12년으로 감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취감경’ 제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현재는 ‘주취감경’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형법 제10조 제2항을 ‘형을 감경할 수 있다’로 개정해 시행 중이다. 만취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고의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있어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일선 현장에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이 의례적으로 “술에 취해 범행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감형을 받으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성공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15년 10월 술에 취해 흉기로 아내를 협박하고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재판부는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바 있다. 또 같은 해 6월 옛 직장동료의 여자 친구를 성폭행한 남성에 대해서도 담당 법원은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후회하고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하기도 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주취감경을 인정하지 않거나, 도리어 주취 정황이 가중처벌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주취는 감형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이 확고하다. 프랑스는 음주 또는 마약복용 후 일어나는 범죄 중 폭행과 성범죄 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형을 가중하고 있다. 중국도 주취감경을 애초에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 형법 제18조 4항은 “주취자가 죄를 범한 경우라도 마땅히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한국과 같이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경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심신상실 상태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많은 증명이 필요하고 절차상으로도 엄격하다. 설사 심신미약이 인정되더라도 피고인이 사회로 나올 수 있는 경우는 없다. 형기를 마쳐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치료감호 등 보안처분(교육이나 보호 등 형벌 이외의 형사제재)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독일의 치료감호는 기간제한이 없어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가능하다. 이 전 차관이 외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가중처벌' 대상도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담당 재판부는 2월 24일 첫 공판 기일을 열고 검사의 증거 신청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공판 기일에는 이 전 차관이 반드시 참석해 법원의 유무죄 판단을 받아야 한다.
후원계좌안내
입금은행 : 신한은행
예금주 : 주식회사 아주로앤피
계좌번호 : 140-013-521460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