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이슈와 논점 제1867호 규제영향분석과 입법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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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30 09:45:31
제387회 국회(임시회) 제2차 본회의 심의안건요지.hwp
규제영향분석과 입법과정

전 진 영
 
1. 서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 각국의 정부는 규제정책을 입안할 때, 새로운 규제정책의 사회·경제적 영향을 사전에 분석하고 평가하는 절차를 제도화하고 있다. 규제정책은 불가피하게 국민이나 기업 등 규제대상에 대해서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기 때문에, 규제로 인한 편익이 비용보다 클 때 ‘좋은 규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규제정책을 입안할때는 사전적인 ‘규제영향분석’을 통해 규제의 품질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그런데 정부안과 행정입법에 대해서는 규제영향분석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의원안에 대해서 사전 규제영향분석이 제도화되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OECD 회원국의 경우에도 규제영향분석은 대부분 정부안에 대해서만 의무절차로 제도화되어 있다. OECD 회원국의 대부분은 내각이 입법을 주도하는 의원내각제 국가여서, 가결되는 법안의 80% 정도가 정부안이다. 따라서 정부안에 대해서만 규제영향분석이 의무화되어 있다고 해도,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대부분의 규제법률이 규제영향분석을 거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의원안 발의가 급증하면서 의원안에 대해서도 규제영향분석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규제의 신설이나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정부안은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심사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지만, 의원안은 별도의 규제심사절차가 없다 보니 규제가 양산된다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된 「국회법」 개정안이 의원안이 급증하기 시작한 제17대 국회 이후로 발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이 글은 의원입법 개선방안의 일환으로 규제영향분석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규제영향분석을 살펴보고, 우리 국회에 대한 시사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2. 정부안에 대한 규제영향분석

우리나라에서 정부안에 대한 규제영향분석제도는 1997년 「행정규제기본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동법의 목적은 ‘불필요한 행정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행정규제의 신설을 억제함으로써 사회·경제활동의 자율과 창의를 촉진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제1조). 또한 동법은 ‘규제 법정주의’를 명시함으로써, 행정기관이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규제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제4조).

중앙행정기관(정부 부처)이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려면 규제영향분석을 실시하고 규제영향분석서를 작성해야 한다. 규제영향분석에는 규제의 신설 또는 강화 필요성, 규제 이외 대체수단의 존재여부 및 기존규제와의 중복여부, 규제대상 집단과 국민이 부담하는 비용과 편익의 비교분석, 규제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각 부처가 작성한 규제영향분석서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사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한다.

규제영향분석은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이전에 정부안의 성안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될 때 규제영향분석서가 첨부서류로 함께 제출되는 것은 아니다. 즉,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심사를 거친 이후에 각 부처의 원안이 성안되는 것이며, 이후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서 정부안은 국회에 제출된다.

한편 OECD 규제정책위원회는 세계 각국 정부의 규제정책을 분석·평가하고 있는데, 2017년 한국 정부의 규제정책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의원안에 대해서도 규제영향분석을 실시하거나 국회 내에 규제품질관리를 위한 상설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OECD는 한국의 경우 국회에서 가결된 법안 중에서 의원안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 규제정책 품질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제21대 국회에서 의원안 발의시에 규제영향분석서를 첨부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는 상황이다.

3. 주요국 사례

주요국들도 규제영향분석(입법영향분석)을 정부안이나 행정입법에 대해서만 실시하고 있으며, 의원안에 대한 사전적인 규제영향분석이 의무화되어 있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1) 영국
영국은 1980년대 중반 마가렛 대처 정부에서 처음으로 신설 규제의 행정비용을 분석하는 영향분석제도를 도입하였다. 이후 1998년에 토니 블레어 정부는 본격적으로 규제영향평가제도를 도입하고, 모든 규제정책에 대해 비용편익을 분석하는 규제영향평가(Regulatory Impact Assessment: RIA) 지침을 마련하였다. 규제영향평가는 「입법 및 규제개혁법」(Legislative and Regulatory Reform Act of 2006)에 따라 ‘영향평가(Impact Assessment:IA)’로 확대 개편되었다. 영향평가는 정부 개입이 필요한 이유, 정부가 고려한 대안의 내용과 선호순위,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영향, 비용과 편익에 대한 분석을 포함한다.

영향평가의 대상은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의 수단인 법률, 하위 법령 등 정부의 모든 규제적 조치이다. 공공부문이나 사적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의 신설뿐만 아니라 규제강화나 규제폐지도 영향평가의 대상이다. 영향평가서는 정부의 소관부처가 작성하고, 규제정책위원회(RPC: Regulatory Policy Committee)의 타당성 검토를 거친 후 법안과 함께 의회에 제출된다. 영향평가서는 의회의 법안심사과정에서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된다. 입법과정에서 정부안이 수정되면, 정부는 수정된 내용에 따라 영향평가서를 수정해서 다시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영국 의회는 의원이 법안심사에 정부의 영향평가서를 많이 활용할수록 입법의 품질이 개선될 것으로 보고, 영향평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2) 미국
미국이 규제영향분석(RIA: Regulatory Impact Analysis)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은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에서 비용편익분석이 의무화되면서부터이다. 현행 규제영향분석은 1993년 클린턴 행정부가 발표한 ‘행정명령 제12866호: 규제개혁과 심사’(Executive Order 12866: Regulatory Planning and Review)와, 이를 계승하여 2011년 오바마 행정부가 발표한 ‘행정명령 제13563호’에 근거하여 실시되고 있다. 규제영향분석의 대상은 행정부의 규칙 등 행정입법을 대상으로 하며, 의회에 제출되는 법안(의원만 법안발의 가능)에 대해서도 의무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입법을 통해서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려면 해당 부처는 규제영향분석서를 정부의 규제감독기관인 백악관 관리예산처(OMB: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산하 정보규제국(OIRA: Office of Information and Regulatory Affairs)에 제출해야 한다. 규제영향분석은 모든 규제적 조치에 대해서가 아니라, ‘중대 규제’(significant regulatory action)에 대해서만 실시된다. 중대 규제에는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경제적 영향을 미치는 규제, 보조금·공공요금 등과 관련된 예산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규제 대상의 권리나 의무를 변경하는 규제 등이 포함된다. 의회에 제출된 법안(의원안)은 규제영향분석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특정 법률이 해당 분야의 행정입법이나 규제조치에 대해서 규제영향분석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포함할 경우에는 의원안도 규제영향분석을 실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규제유연성법」(Regulatory Flexibility Act)은 규제가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국가환경정책법」(National Environmental Policy Act)이나 「중소기업규제공정화법」(Small Business Regulatory Enforcement Fairness Act), 「개인정보영향평가법」(Privacy Impact Assessment Act) 등의 법률은 관련 분야에 대한 규제영향분석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3)독일
독일은 2000년에 행정규칙인 ‘연방정부 공동직무규칙’(Geminsame Geschäfsordnung des Bundesministerien, GGO)을 개정하여 입법평가(Gesetzfolgenabschätzung)를 의무화하였다. 입법평가는 정부(내각)의 각 부처가 담당하며, 2006년 설립된 독립기구인 국가규범통제위원회(NKR)가 입법평가서를 심사한다.

입법평가의 주된 방법은 비용·편익분석이라는 점에서 독일의 입법평가는 다른 국가의 규제영향분석에 해당된다. 입법평가의 대상은 정부안을 비롯한 행정입법이지만, 의회(의원 또는 원내교섭단체)가 요구할 경우에는 의원안에 대해서도 국가규범통제위원회가 입법평가를 실시할 수는 있다.

(4)프랑스
프랑스에서 규제영향분석에 준하는 제도는 ‘영향연구’(étude d’impact)이다. 프랑스는 2008년 개헌을 통해서 영향연구의 헌법적 근거(제39조제3항)를 마련하였고, 2009년 조직법률에서 영향연구의 대상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였다. 영향연구는 정부안을 대상으로 하며, 의원안은 제외된다. 정부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때 법 제·개정의 필요성, 법안이 입법될 경우 어떤 영향이 있을지에 대한 분석결과를 법률안에 첨부해야 한다.영향연구서를 첨부한 정부안이 의회에 제출되면, 의장단회의(Conférence des Présidents)는 법안 제출일로부터 10일 이내에 영향연구서가 조직법률이 정한 제출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를 검토한다. 의장단회의의 검토 결과 제출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헌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 이 경우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정부안의 의사일정 등록은 일시 중단된다(「하원의사규칙」 제47-1조제2항).

프랑스는 주요국 중에서 입법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의사규칙에서 영향연구서 검토를 명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는 영향연구서가 의회의 법안심사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 결론

민주화 이후로 의원안 발의가 급증할 뿐만 아니라 가결법안 중 의원안의 비중이 높아지는 등 국회의 입법주도권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의원안이 양적으로 팽창하는 동안 과연 의원안의 형식과 내용 등 질적인 측면의 완성도 역시 향상되었는지에 대한 반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의원안에 대해서도 규제영향분석, 또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인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하자는 제안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제안들은 결국 ‘좋은 법률’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모색된 것이며, 법안의 입안단계에서부터 이해당사자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이나 비용·편익분석 등이 반영된다면 국민들의 실생활에 필요한 더 좋은 법률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들이 정부안에 대한 규제영향분석을 의무화하고 있는 이유도 규제로 인한 편익이 비용을 상회할 경우에만 ‘합리적 규제’로 입법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정부안에 대해서만 규제영향분석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17대 국회 이후로 의원안에 대해 규제영향분석을 실시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발의되었지만, 모두 임기만료로 폐기되어 왔다. 해당 법안에 대한 상임위원회 논의과정에서 쟁점이 된 것은 ‘의원입법에 대한 사전 절차가 강화될 경우 의원의 입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방대한 규모의 의원안에 대한 규제영향심사를 담당할 조직과 인력의 문제도 지적되었다. 이런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의원안에 대해서도 규제영향분석을 제도화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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