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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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변호사)
입력 : 2021-08-28 06:00
수정 : 2021-08-2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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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뉴스 화면에 카불공항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보인다. 어떻게 하든 떠나려는 미군 수송기에 올라타려는 사람들, 이륙하는 비행기에 아등바등 매달려 있다가 추락하는 사람들, 공항으로 들어갈 수 없자 안고 있는 아기만이라도 공항 안으로 밀어넣으려는 사람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울부짖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보면서 내 눈가도 뿌예진다. 그러면서 70년 전 흥남부두에서 철수하는 미군 배에 타려던 수많은 피란민들, 또 끊어진 대동강 철교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강을 건너던 피란민들 모습이 오버랩된다. 대동강 철교에서도 혹한의 추위에 곱은 손으로 차디찬 철교를 부여잡고 건너다가 강물로 떨어져 이름 없이 숨져간 피란민들은 또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의 비극은 70년 전의 비극이지만, 아프간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얼마나 허약하고 부패한 정권이길래 미군이 채 떠나기도 전에 탈레반에 먹혀버렸나? 그리고 국민을 이런 지옥에 몰아넣고 자기 혼자 살겠다고 현금을 챙겨 해외로 도망가는 대통령은 또 뭔가? 비록 나와 상관이 없는 먼 나라의 비극이지만 그들의 비극에 가슴 아프고, 그런 비극을 초래한 아프가니스탄의 부패한 정권과 도망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면서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한 나라가 내전으로 치안 공백 상태가 되면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죽거나 난민이 되어 삶의 근거지를 상실한 채 떠돌아다녀야 한다. 요즘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모가디슈>의 소말리아가 그렇고, 한때 공고한 독재체제를 유지하던 시리아가 그렇다. 내전이 아니더라도 한때 석유부국이던 베네수엘라는 대책 없는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다가 경제가 거덜나며 많은 국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이웃 나라에서 떠돌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갱단이 무고한 시민들을 살해하고 납치하며 활개 쳐도 갱단 하나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엘살바도르 같은 나라도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국민이 살 길을 찾아 떠돌게 하는 국가. 그게 국가인가? 그런 국가라면 없어져야 한다. 아니지. 국가는 그대로 있되, 그 국가를 경영하던 집권세력이 없어져야 하겠지.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은 그런 집권세력이 없어져도 그보다 더 국민을 옥죌 탈레반이 들어선다. 특히 여성의 인권은 다시 암흑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무정부 상태의 혼란 상황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나?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미얀마에서도 이를 거부하는 민주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지만, 군사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시위자들은 밀림으로 숨어들어 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시리아에서도 2011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퇴출을 요구하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지만, 지금은 내전으로 확대되어 전 국민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난민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면 ‘결국 트라시마코스의 말처럼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란 말인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어찌해야 할 것인가? 결국 정의는 강자의 이익일 뿐이니, 그러려니 하면서 지나가야 할 것인가? 그러나 나는 역사의 진보를 믿고 싶다. 그런 믿음, 그런 희망마저 없다면 그들 나라의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이 어떻게 이를 이겨낼 것인가? 우리나라도 자유당 독재정권의 행태를 본 영국의 어느 외신기자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했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장미꽃을 피워내지 않았는가? 비록 당장 눈앞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들에게 이런 막연한 얘기를 하는 것이 답답하긴 하지만, 결국 이는 시간의 흐름에 해법을 맡길 수밖에 없다. 나치 죽음의 수용소를 몸으로 이겨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그래도 희망을 갖고 매일매일의 삶에서 의미를 찾은 사람들은 죽음을 이겨냈다고 한다. 견디시라! 지금의 모진 세월을 희망을 갖고 묵묵히 의미를 찾는 매일매일의 삶으로 견디어 내다보면 희망은 보인다. 아!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비통하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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